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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발상력의 5단계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2024-08-19 14:45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카톡에 제자의 안부 문자가 떴다. 올 초 끄라비 여행 때 찍은 사진에 동남아 여행이 필요없을 것 같다고 몇 줄 적어 보냈다. 순간 변덕스런 날씨가 떠올랐던 것이다. 끝도없이 물고뜯는 정쟁과 올림픽의 선전과 환호는 2024년의 공통된 여름이다. 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십인십색이다. 자신만의 상황이나 입장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을 해석하는 자기만의 안경이 있다. 피타고라스에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수학자답게 ‘직각처럼 반듯합니다’라고 했을거란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데카르트는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갈릴레이는 ‘잘 돌아갑니다’, 다윈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비발디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애거서 크리스티는 ‘맞춰보세요’, 깐트는 ‘비판적인 질문이군요’라고 했을거란다. 발상력은 자신의 안경을 갈고 닦아서 빛을 내는 자신만의 시선이다. 이런 특별한 시선은 어떤 단계를 거치며 얻게 되는걸까?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뉴욕에 갔을 때다. 일행과 함께 ‘블루노트(Blue note)’라는 재즈 클럽에 들렀다. 무대위에선 백인 제자의 트럼펫과 흑인 스승의 피아노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의 피날레 공연으로 제자가 구경 온 스승의 팔을 이끌어 즉흥 협연(Jam)을 벌인 것이다. 당연히 악보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쌓은 기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눈빛의 교감을 더해 연주를 이어나갔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연주는 무정형의 춤사위처럼 무대와 관객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연주가 끝났을 때 땀방울로 얼룩진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교차했고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합의되지 않은 이런 연주 방식이 놀라운 완성도의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은 단계적이면서 동시에 연속적이다. 연주내내 두 사람은 뜨거운 땀방울과 격정적 몸짓으로 근사한 공연을 선사하겠다는 무언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연주를 주고 받다 다시 합치며 온 몸의 감각으로 호흡을 맞추며 서로를 조율했고 상대를 배려했다. 멜로디와 박자의 고저장단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주제가 드러났고 말미에 이르며 드라마같은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완성됐다. 스승과 제자는 마지막까지 겸손하고 세련된 매너로 관객의 열띤 호응을 유도했다. 공연에서 보여준 그들의 유연한 발상과 태도는 숙달된 운전자의 자동차 드라이빙 같았다.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연료와 엔진(열정), 시야를 확보해줄 유리창와 와이퍼(관찰), 방향타인 핸들과 헤드라이트(발상), 운전의 편의장치(구성), 동승자를 태울 문과 좌석(참여)이 그것이다. 퍼포먼스의 승부처는 관찰과 연상의 단계다. 대상을 과학자의 렌즈로 분석하고 예술가의 영감으로 해석하는 단계로 자기만의 안경을 작동시키는 순간이다. 다시 돌아가보자. 여름이라고 했었던가? 개그맨 박명수의 여름은 ‘끝말잇기’다. 알다시피 그는 이행시 대가다. 끝말잇기에서 ‘여름’은 승부의 결정구다. 물론 ‘늠늠하다’는 변죽으로 웃음을 끌어올수도 있다겠지만. 가수 싸이의 여름은 ‘인생의 대박’이다. 그는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즐기는 야외 공연을 떠올렸다. ‘흠뻑쇼’는 이제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제 눈의 안경을 존중해라.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브릿지 칼럼] 공감의 문장력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2024-07-15 13:56

9년동안 칼럼을 이어왔고 다섯권의 책을 냈다. 요즈음엔 한달에 세곳에 칼럼을 쓰고 이름짓기를 주제로 여섯번째 책을 준비중이다. 마케팅과 대중문화에 관련된 내용이라 시의성있는 소재로 뼈대를 세우고 틀을 잡는다. 정보를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취지라 비유나 묘사는 지양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대책을 제시하는 기자의 리포트 방식을 취한다. 글쓰기는 늘 버겁다. 수많은 교정을 거쳐 신문사로 보낸뒤에도 매번 찜찜하다. 기록이나 메모와 달리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글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할까?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면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친다. 글도 그렇다. 아마추어는 한 마디를 열 마디로 늘리는 사람이다. 짧고 단순해야 전체의 골격이 뚜렷해져 주제나 관점이 선명해진다. 기름의 엑기스처럼 쥐어짜서 뼈대만 남겨라. 접속사, 형용사와 부사는 쳐내고 동의어는 삭제해라. 사건의 개요나 정황을 묘사하는 부분은 특히 그렇다. ‘엄청나게 우연한 일이었다’라고 하지말고 ‘우연한 일이었다’ 라고 그냥 전해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 확신에 찬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경제 체제,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어머니와 아버지, 희망 가득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 슈퍼스타와 지도자, 성인과 죄인, 군인과 황제, 햇빛에 떠다니는 먼지의 티끌,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조그만 무대인 지구’가 아니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한 마디다. 하지만 짧은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감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오무려 귀에 대고 조곤조곤 전하는 연인의 귀속말 같은 것이다. 독자의 감각과 감정을 끌어내려면 자상하고 농밀한 문장이 필요하다. 소설가 김연수는 ‘우리가 보낸 순간’에서 사랑의 감정은 ‘정말 사랑했었다’라고 개념을 전해선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걷던 거리, 그녀와 함께 먹던 음식, 그녀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이해된다는 것이다. 소설가 정유정도 ‘유퀴즈’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완전한 행복’을 쓸 때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라고 하지 않고 시체의 냄새, 시체의 모습, 시체의 느낌을 현미경으로 손금보듯 정밀하게 묘사해서 시체를 껴안고 자는 듯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단도직입적 문체의 대가 김훈도 냉이된장국의 맛에 대해 ‘냄비 속에서 끓여 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내는 평화를 이룬다’ 라며 문장에 오감을 총동원시켰다. 이들의 작문 비법은 뭘까? 정유정은 자신의 상상력을 현장에 적용시키려고 직접 쓰고 그린 사건 일지와 현장 노트를 공개했다. 범인과 형사의 역할을 번갈아 맡아가며 얼키고 설킨 가상의 시간과 장소와 정황을 빈틈없이 연출해서 실제의 사건을 만든 것이다. 소설가 김훈씨도 한 때 기자였다. 1학기 수업을 마치는 날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루의 흔적을 블로그에 꾸준히 남기라고 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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