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꼭 50년이다. 1964년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지 50년, 막장에서 광부로 산 3년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막장이죠. 매초 생사의 갈림길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며 전등 하나에 의지하고 유령인간처럼 일만 했죠.”
벌거벗은 상태에서도 장화 속에 땀이 흥건하게 고이는 지열 34~36도, 3m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돌가루와 먼지 속에서 파고 또 파고…. 언제 터져 밀려들지 모를 물벼락과 기계의 돌진, 곧 무너질듯한 천정 등 그야말로 사투였다. 파독광부 출신 교수이자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위원회(이하 ADRF) 회장인 권이종(75)씨의 지그시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린다.
지독히도 가난했다. 전라북도 장수군 지리산 산골에서 태어나 소나무를 벗겨 먹어야 했고 가출하다시피 전주로 나와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신문배달, 막노동, 짜장면 한 그릇을 위한 헌혈, 빈대가 우글거리는 흙토방, 늘 쉽지 않은 삶은 운명처럼 등장한 사람들로 인해 기적을 일으켰다.
가난 속에서도 대단한 교육열을 가진 어머니가 시작이었다. 서울 막노동판으로 이끈 육촌 조카와 그 현장에서 만나 함께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한양대 재학생.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독일에 남아 공부할 것을 설득한 독일인 수양엄마.
“무작정 남기는 했지만 돈도 머물 곳도 없었어요. 불법체류자로 걸리면 바로 추방이었죠. 수양엄마 도움으로 벨기에 군대 PX에 취직해 임시고용허가서가 나오면서야 두 다리 뻣고 잠들 수 있었죠.”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국립사범대학인 아헨대 입학을 가능케 한 학장과 그의 닥터 파더(지도교수)이자 평생교육, 청소년 운동에 매진하던 유스호스텔 창시자 오토 푀겔러(Otto Poggeler)의 가르침으로 대한민국 1호 교육학 박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간호사 출신 사회운동가 아내까지 그의 삶은 그렇게 사람이 곧 기적이었다.
“그 후로도 좋은 사람이 계속 만나졌습니다.”
1979년 한국에 돌아와 전북대 교수로 재직하고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평생교육, 청소년 교육 자문위원을 겸임했고 계몽사, 삼성복지재단, 故 정주영 회장 등 그를 찾는 이들은 늘어만 갔다. 한국 교원대학교 창립을 함께 하면서 교사의 꿈은 정점을 찍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파독광부 전시관, 양재동 파독광부·간호사 기념관, 남해 독일마을 등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틈새를 파고들어 이삭만 주웠어요. 한국 학자들이 10시간 자면 저는 4, 5시간 자고 올라가다 떨어지면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원 없이 살았고 일했죠.”
나무껍질을 벗기고 신문배달을 하고 공사장과 광산에 나가기 위해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버릇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어느 일터든 7시에는 책상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게 생활신조예요. 멈춤 없이 다이내믹하고 늘 흥분의 도가니죠.”
꿈 때문에 고민이 많은 거제도 소녀, 일본·필리핀 등지에서 보내오는 강연제안 이메일, 파독광부·평생교육·청소년 운동 등에 대한 문의 전화 등 5시 기상이 당연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의 뺨에 늘 홍조가 가시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파독광부는 차관을 위해 담보 아닌 담보로 외국에 나간 인력의 출발점이었어요. 그 후 간호사, 월남파병, 중동 건설인력 등 나라발전을 위한 종자돈 마련으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죠.”
현재 그는 ADRF 회장이다. 아프리카,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중국, 몽골 등 교육이 필요한 13개국에 희망학교 20군데를 운영 중인 교육지원단체다.
“한국은 물질적 선진국이지만 정신세계는 1960년대에서 변한 게 없어요. 매일 아침 TV나 신문이 부정부패, 싸움, 갈등 뿐이에요. 인성교육과 평생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봉사와 나눔 단체 중 ADRF는 유일하게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후진국 뿐 아니라 한국 인성교육을 위해 유치원용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여기 회장으로 꼭 1년이에요. 교직생활 40년 동안 잘한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매일이 칭찬이에요. 교육은 어느 시대나 희망입니다.”
교육을 통해 전세계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꿈꾸게 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이유다.
글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사진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