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투기자본 놀이터, 이젠 안된다] 행동주의 단기 투자세력을 막아라

포이즌필·차등의결권 제도 필요…지금은 자사주밖에 없어

입력 2015-07-13 17:37

 

모두발언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이상일 새한진공열처리 대표, 박근혜 대통령, 이화경 인하국제의료센터 마케팅팀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연합)

 

 

브릿지경제 유혜진 기자 = 우리나라에는 행동주의 단기투자 세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으로부터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지키는 게 힘든 것이다. 그야말로 투기세력이 활개칠 수 있는 놀이터다.



17일 열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기업이 투기 세력에 맞설 방어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삼성물산과의 싸움에서 보듯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제재를 가하는 적대적 세력이 칼날을 들이대도 기업은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 제도로는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제도 등이 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값에 지분을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제도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생겼다. 이어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 자본시장에 퍼졌다.

차등의결권은 주식 1주에 여러 의결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글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글은 2004년 상장할 때 1주당 1개 의결권이 있는 Class 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Class B 주식을 발행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1994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차등의결권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경영권을 지키려면 장내 지분을 사들이거나 우호 세력에 자사주를 파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국회에는 모회사 지분을 1% 이상 가진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법안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지만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팔지 못하게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상장사가 자사주를 내다 팔려면 원칙적으로 미리 소각하거나 각 주주가 이미 가진 주식 수에 비례해 배분하자는 게 골자다.

한국형 포이즌 필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무부가 2009년 투기적이고 가치 파괴적인 M&A로부터 기업과 주주를 지키고자 한국형 포이즌 필을 내세운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2010년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소수의 지배주주 사익을 좇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야당과 시민단체, 학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정부는 국내 기업에 힘을 실어줄 방법을 찾고 있다. 재벌 편을 든다고 치부하기에는 엘리엇 사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게끔 제도적 마련을 해주겠다는 의미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만들기 전에 일반 주주의 권익을 높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기업 경영 문화가 주주 권익보호가 일반적인 나라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놓고 국내 기업 편을 들었다가는 세계화된 국제 자본시장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자국의 사업의 보호하기 위해 경영권 방어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재벌 편’을 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기업을 투기자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하다. 


유혜진 기자 langchemist@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