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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뻔뻔할수록 더 fun fun… 놀이가 된 '섹드립'

[19禁 칼럼]

입력 2015-09-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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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금슬 좋은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이 부부는 자식 둘을 데리고 단칸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쉽게 가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르고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암호를 만들었다. 암호는 ‘세탁기 돌려야겠어’ 였다. 부부중 한 사람이 ‘여보, 세탁기 돌려야겠어’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서로 ‘세탁기를 돌리기’로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유독 이 날 따라 아이들이 잠도 안자고 엄마 품에서 칭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기다리다 지친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자 아들이 ‘아빠 어디가’ 하고 물었다. 이 때 돌아온 남편의 힘없는 대답, ‘응 손빨래 하러 가.’”



한 20년 전쯤 술 자리에서 여자들에게 해주면 ‘빵 터지던’ 야한 농담이다. 야한 농담, 이른바 음담패설(淫談悖說 ; 예전에는 줄여서 ‘EDPS’라고 불렀고, 요즘 누리꾼들은 ‘섹드립’이라고 한다.)은 말 그대로 ‘음탕하고 도덕을 벗어난 상스러운 이야기’를 뜻한다.

‘음탕하고 도덕을 벗어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음담패설은 섹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그 어떤 진지한 자리도 음담패설이 모습을 드러내면 한없이 가볍고 유쾌해진다.

그래서 필자는 사업상 술자리나 미팅이 잦은 친구들에게 누가 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음담패설 몇 개는 준비해 두라고 권하곤 한다. 긴장감이나 어색함을 풀어주는 데 술 못지 않게 효과적인 것이 음담패설이기 때문이다.

음담패설의 이 같은 특성은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말하는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위징아는 인간을 다른 생물과 특징 짓는 기준으로 놀이를 이야기한다. 동물들 또한 놀이를 하지만 인간처럼 놀이를 스포츠나 예술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지는 못했다.

과거 인류는 대개 놀이와 일, 생활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중첩돼 있었다. 근대 이전의 인류에게 노동과 놀이, 전쟁과 놀이는 모두 한몸이었다. 극히 일부 계층만 전문적인 놀이를 즐길 수 있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놀이는 스포츠 경기장, 예술공연, 도박장 등과 같은 형태로 일, 생활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근대 이전의 인류에게 섹스는 종족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의무와 본능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이 함께했지만, 이제 현대의 인류에게 섹스는 종족번식의 의무가 면제된 놀이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도시의 밤에 이뤄지는 수많은 ‘원 나잇 스탠드’와 섹스 산업이 바로 일상과 생물학적 의무에서 분리된 놀이로서의 성을 상징한다.

음담패설이 생겨나고 유통되는 과정 역시 비슷하다. 단지 상업화 되지 않았을 뿐 섹스를 놀이로 바라보고 대상화하는 것은 같다. 어쩌면 ‘놀이로서의 섹스’를 즐기는 첫 번째 단계가 음담패설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음담패설에 등장하는 섹스는 한없이 경박하고 또 그만큼 유쾌할 수 밖에 없다.

음담패설의 이런 속성은 코미디의 소재로 즐겨 사용됐다. 가까이는 ‘섹드립의 천재’라는 신동엽이 진행하는 케이블채널 tvN의 ‘SNL’부터 멀리는 패럴리 형제의 ‘킹핀’,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류의 화장실 유머 영화까지, 음담패설은 한바탕 웃고 떠들기에 최적의 소재다.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카메론 디아즈
패럴리 형제의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한 장면. 영화속에서 메리로 분한 카메론 디아즈가 정액을 헤어젤로 알고 잘못 바른 후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자 그녀의 머리캇이 한껏 발기했다.

 

1998년 여름이던가 IMF사태로 우울하고 뒤숭숭한 분위기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던 시기에 서울극장에서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봤다. 정액을 헤어젤로 알고 바른 카메론 디아즈의 머리칼이 예쁜 여자만 보면 말 그대로 ‘발딱 서는’ 모습을 보고 함께 실소를 짓고 영화가 끝난 뒤 공범들처럼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극장을 빠져 나오던 관객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또 30대 후반의 노총각 시절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에서 정자로 분장한 우디 알렌이 사정의 순간에 ‘만일 자위행위거나 콘돔이 있으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고등학교 때 학교 담벼락에서 친구들과 나누던 ‘속았다! 딸딸이다’류의 음담패설이 그대로 영화화된 것을 보고 놀라워 하는 경험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 2
우디 알렌의 1972년 영화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의 한 장면. 우디 알렌이 정자로 분해 사정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다. 놀이에 의무나 강제적 명령이 부여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무언가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놀이는 놀이 자체가 목적이다. 둘째, 놀이는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다. 놀이는 일상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놀이가 만들어낸 고유의 세계로 들어가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셋째, 놀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넷째, 모든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이 없는 놀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놀이에 참여한 어떤 사람이라도 그 규칙을 어기는 순간 놀이는 중단된다.

그리고 이 같은 놀이의 경험은 인간 생활의 가능케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음담패설, 나아가 코미디가 가진 놀이의 속성은 ‘5포세대’와 ‘폐지줍는 노인’을 양산해내는 괴롭고 힘든 이 시대를 통과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끝없는 노동의 고통을 민요가락이나 한바탕 놀이에 실어 날려 보냈듯이 우리도 일상이 주는 고통을 삼겹살집이나 카페 한 구석에서 나누는 음담패설로 털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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