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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은퇴농장사람들 김영철 대표 "한국형 신토불이 실버타운 자부심"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한국식 실버타운 '은퇴농장사람들' 김영철 대표

입력 2016-10-31 07:00   수정 2016-10-30 16:40

열정사
자료제공=은퇴농장

 

충남 홍성군 흥동면 산자락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꿈의 보금자리가 존재한다. 60세 이상 정년퇴직자들이 낮에는 유기농산물의 수확과 포장 등 소일거리로 생활비를 벌고, 마을식구들과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곳.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가꾸는 이곳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들어맞는 ‘신토불이형 실버타운’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을 위한 ‘한국식 실버타운’

“어르신들을 위한 일종의 하숙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김영철 은퇴농장사람들 대표(64)는 자신이 운영하는 한국식 실버타운인 은퇴농장을 이같이 설명했다.



지난 1995년 8월 문을 연 은퇴농장은 정년퇴직자들이 제2인생을 가꾸는 보금자리다. 현재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13명. 부부 1쌍을 포함한 남자 10명, 여자 3명이 TV·전화기·욕실·싱크대가 갖춰진 7~10평형 원룸식 독채에서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

60대 중반부터 9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어르신들이 7000평 밭에서 생산되는 고추, 마늘, 깻잎, 두릅 등 유기농산물을 하루 두세시간씩 직접 재배·가공해 유기농 전문매장에 판매하고 있다. 업무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매달 평균 30만원가량을 손에 쥔다.

이 돈으로 노인들은 은퇴농장 생활비에 보태거나 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등 사비로 사용한다. 입주비는 7평 기준으로 보증금 300만원에 매달 식대 등이 포함된 생활비 83만원이다.

“입주 어르신들을 보면 연금으로 생활하는 분들도 있고 농사일에 능숙한 분들은 그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하죠. 다만 월 생활비 납입이 어려운 분들은 자녀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김 대표의 말처럼 어르신들은 매달 받는 연금 등 금융소득에 소일거리로 벌어들이는 30만원가량을 보태면 자녀들로부터 경제적인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입주민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정년퇴직 후 연령대에 알맞은 소일거리가 소득으로 연결되고 삼시세끼가 제공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외롭지 않은 황혼,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서다.

“평생 의지하고 살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르신들이 아주 좋아해요. 한번은 7년 가까이 우리와 생활한 어르신께서 식도암이 발견돼 수술을 했어요.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하는데도 그냥 여기서 살겠다며 한사코 거부하더라고요. 우리와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또래들도 많고 여기선 소일거리도 있으니까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귀농에 대한 부담감 줄여주고파”


새로운 은퇴모델로 떠오르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김 대표가 은퇴농장을 설립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어느 날 낚시터를 갔는데 옆자리 앉은 분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경찰관 하다 정년퇴직 했다면서 저에게 시골에 내려가 사는 것이 어떠하냐고 묻더라고요. 귀향하고 싶지만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는데 번득 생각이 스쳤죠. 내가 갖고 있는 땅이나 시설을 활용해 은퇴농장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때 생각이 났어요. 제 아내가 결혼하기 전, 자기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삶을 꾸리고 싶다고 했던 게요. 그 약속을 지키게 된 셈이죠.”

하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도시에서 온 이들이 농촌 일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 이에 사업초기에는 수억원을 잃기도 하는 등 은퇴농장에 먹구름이 끼는 일이 잦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도시에서 은퇴농장으로 온 분들이 6개월 만에 나가더라고요. 처음 하는 농사 일이 손에 익지 않으니까요. 처음에는 가축도 키우고 농사도 지었는데 시골에서 사는 80세 어르신이 2시간 만에 하는 일을 도시에 사는 60대 분들은 곱절의 시간을 투자해도 못 끝내더라고요. 끝내 경매도 들어오고 사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김 대표가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유기농산물의 수확과 포장. 농촌 일에 익숙지 않은 도시민들도 빠르게 배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 대표의 생각은 적중했다. 6개월을 못 버티고 은퇴농장을 떠났던 이들이 일이 손에 익자 1년, 10년, 길게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농장에서의 공동체 삶을 영위했다.

입주민들의 변화는 김 대표의 헌신적인 마음 씀씀이도 영향을 미쳤다. 보증금 300만원을 어르신들의 긴급의료비로 사용하는 등 때로는 친자식처럼 그들을 대했던 것이다.

“20년간 운영하다 보니 치료만 하면 완치할 수 있는데 자녀에게 전화하고 비용처리 문제로 시간을 끌다가 어르신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계약서에 명시를 해놨죠.”

이제 그는 은퇴농장의 전국적인 확산을 바라고 있다. 아들을 통해 은퇴농장학교를 설립해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농촌생활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지도하고 노하우를 제공해 농촌생활의 실패확률을 줄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은퇴 후에는 어떤 목적과 소일거리가 없다보니 무료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가정과 사회도 우리 부모님을 소모적인 재원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죠. 부모님들이 편한 마음과 소일거리로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고 핵가족화 사회구조 속에서 홀로서기 할 수 있는 곳이 은퇴농장이라고 자부합니다.”

한영훈 기자 han00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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