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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00세 시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답이다?!

입력 2017-04-11 15:00
신문게재 2017-04-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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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100세 시대다. 100세 시대를 이야기한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미지수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 물건을 팔아 자식을 건사하고 집까지 물려준 노파도, 가장으로 안주인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한 노부부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아들·며느리에게 물려준 집을 돌려 달라 생떼를 쓰다 복수를 계획하거나 치매에 걸린 배우자를 돌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최근 개막한 두 편의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와 ‘사랑해요 당신’은 결은 다르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노인, 더 나아가 사회의 혼란을 담고 있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이래도 되나 싶게 유쾌하다. 

멀쩡한데도 나이가 돼 은퇴한 아들은 막장드라마에 빠져 매일이 눈물바람이다. 그런 남편이 못미더운 며느리는 닥치는 대로 구호물품처럼 생필품들을 사들이며 악다구니다. 손녀는 벌써 10년째 취직을 못해 이불만 뒤집어 쓴 채 방구석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이 상태면 나도 100살은 넘어 살 것 같으니 집을 돌려 달라”는 광주리 할머니까지, 이 눈물이 나는 상황을 예리한 역설에 버무려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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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랑해요 당신’(사진제공=극단 사조)

 

이순재·장용·정영숙·오미연 주연의 ‘사랑해요 당신’은 치매로 인한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담고 있는 전형적인 휴먼 드라마다. 배우는 물론 창작진들까지 “2025년 100만명, 2050년이면 10명 중 한명꼴로 치매환자일 것”이라며 “이 연극을 통해 치매 환자 복지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를 바란다”고 토로했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가 지독히도 현실적이라면 ‘사랑해요 당신’은 훈훈한 가족애와 헌신적인 남편 등을 등장시킨 판타지다. 고시원에서 고독하게 살며 벽 너머 소리에 기대 위안을 얻는 할아버지, 할머니 분장을 하고는 “어차피 나중에는 이렇게 살 거니까”라며 교회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받아 들고는 생애 처음 번 돈이라고 감동하는 실업청년,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뜰하게 돌보지만 원망만 돌아오는 고독한 늙은 가장…. 경쾌한 블랙코미디든 희망을 담은 휴먼드라마든 극에서 그리는 100세 시대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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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사진제공=국립극단)

 

100세 시대에 맞게 국가 정책의 큰 틀을 바꾸자는 ‘100세 시대 프로젝트’, 일자리, 건강 등을 해결할 ‘100세 시대를 대비한 효도 5법’, 빅데이터를 활용한 의료 명품화 등이 추진되고 공약이 발표되지만 60세를 넘긴 이들은 여전히 한걱정이다. 

100세까지 잘 살려면 얼마의 현금을 쟁여두고 있어야 하는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를 위해 지금 얼마나 저금을 해야 하는지, 자녀 지원보다는 노후 자금 마련에 더 힘을 써야 한다는 경제전문가의 조언 등 그 대안은 결국 100세 시대의 부담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형국이다. 

젊어서는 실업, 결혼, 출산, 육아 등을 걱정해야하고 은퇴와 동시에 또 다시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가족은 해체되고 사회는 고독이 팽배한다. 진짜 이것이 100세 시대를 잘 사는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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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당’.(사진제공=CJ E&M)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리얼리티 예능 ‘윤식당’을 보자. 일흔의 식당 사장 윤여정은 요리에 여념이 없고 여든을 훌쩍 넘긴 신구는 성심껏 손님을 응대한다. 이서진과 정유미, 젊은 연기자들은 자신의 맡은 바를 다하고 능숙한 선배들을 살뜰하게도 보필한다. 제대로 된 100세 시대 정책은 실버세대만이 아닌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핵심을 논의할 때다.

벚꽃철이든 장미계절이든 대선을 향한 레이스도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사회와 개인의 참담함을 닮았다. 네거티브 공방과 추상적인 외침만 있을 뿐 공략이 없다. 바로 얼마 전까지 ‘정의의 사도’인양 정의를 외치던 이들은 거들먹거림을 재미라 포장하고 양손의 떡을 모두 지키기 위해 꼼수를 부리다 소금 세례를 맞는가 하면 서로의 약점을 물고 뜯느라 여념이 없다. 

모든 것을 책임져 달라는 것도 아니다. 오래도록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국가가 국가로 바로 서주기를 바랄 뿐이다. 단언컨대 지금 같은 선거전이라면 지난해 겨울부터 올봄까지 꿈꿨던 ‘장밋빛 미래’는 없다. 꽃들도 아는지 봄은 왔으나 좀체 꽃망울을 터뜨리는 데 인색하기만 하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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