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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블랙’이 ‘레드’를 삼키는 공포, 난감하고 불안하게…‘미친키스’

입력 2017-04-20 07:00   수정 2017-04-2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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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친키스’ 장정 역의 조동혁(위)과 여동생 은정 이나경.(사진제공=프로스랩)

 

화가 마크 로스코가 말했던 ‘블랙이 레드를 삼키는 공포’는 연극 ‘미친키스’(4월 11~5월 21일 TOM 2관)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미친키스’는 뮤지컬 ‘베르테르’, 연극 ‘프랑켄슈타인’ 등의 조광화 연출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지난 2월부터 진행한 ‘조광화展’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감사콘서트 ‘리플라이’(Reply), 류승범·박해수의 연극 ‘남자충동’ 등에 이은 두 번째 연극이다.

‘미친키스’에는 ‘남자충동’에 이어 또 다른 장정(조동혁·이상이)이 등장한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연인 장정과 신희(전경수·김두희), 지저분하고 악취 풍기는 좁은 골목에서도 향기로운 사랑을 확인했던 인호(손병호·오상원)와 영애(정수영·김로사) 부부도 시작은 분명 붉은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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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친키스’ 장정 역의 이상이.(사진제공=프로스랩)

 

그 향기롭고 선명했던 ‘레드’ 위에 오해, 어긋남, 불신, 불안, 결핍, 오해 등이 덧칠되며 열정 가득했던 사랑은 ‘블랙’으로 침잠해버린다.

“너만 원해” “넌 항상 도망갈 궁리만 해” “나를 봐! 내 말을 좀 들어줘”…항상 같은 말. 하지만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장정에 신희는 이별을 선언한다.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한 장정의 여동생 은정(이나경)은 쇼핑과 원조교제로 허탈함을 채우려 애쓴다. 

 

그런 동생의 타락을 알면서도 제 연민과 감정에 휩싸여 휘청거리는 장정은 분명 좋은 연인도, 오빠도 아니다. 신희에게도 여동생 은정에게도 “너를, 우리를 위해서”라고 우겨대던 장정은 두 여자에 대한 집착으로 지질해질 대로 지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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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친키스’. 인호 역의 오상원(왼쪽)과 신희 전경수(사진제공=프로스랩)

남편 인호는 신희, 은정 등 어린 여자들을 만나고 아내 영애는 흥신소 직원인 장정을 비롯한 젊은 남자들을 불러들여 발에 키스를 해달라 애원하며 상실감을 달랜다.



“그렇지? 그렇지?”

목소리를 높여 반복적으로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관계, 그렇게 휘청거리는 남녀가 얽히고설켜 파국으로 치닫는다.

 

장정은 결혼해 달라 연인을 닦달하다 폭력까지 휘두르고 울며불며 매달리는가 하면 실연했으니 위로해 달라 영애의 방문을 두들겨 댄다.

‘겨우겨우 지켜낸 불씨’를 살려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영애의 말처럼 “큰 산불이라도 난 거 마냥” 장정은 깊은 자기연민과 원망, 억울함을 격하게, 두껍게도 덧칠해댄다.



그런 장정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의 ‘폭풍의 언덕’ 속 히스클리프를 연상시킨다. 집시 태생으로 캐서린에 대한 연정을 가졌다 노여움을 품고 떠났던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거듭하며 모두를 파국으로 내몬다. 결국 욕정만 남은 사랑의 말로는 모두의 파국이다. 그렇게 블랙은 레드를 삼킨다.

9년만의 귀환, 그 만큼 세상은 변화를 거듭했고 시대는 달라졌다. 조광화 연출이 “시대에 맞춰 변화”를 꾀했다고 했지만 대사는 미묘하게 올드하고 스타일은 강박처럼 덧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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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친키스’.왼쪽부터 인호 역의 오상원, 영애 정수영, 인호 손병호, 은정 이나경(사진제공=프로스랩)

 

이전처럼 불쾌할 정도의 노출이나 성적 묘사는 없다. 하지만 교수와 제자, 중년 남자에게 ‘만져달라’ 애원하는 어린 여자, 외로움에 휘청거리는 중년 여자의 능숙하면서도 갈급한 애무 등 남자들이 꿈꾸는 갖가지 성적 판타지들은 수위가 낮아졌을 뿐 여전히 재현된다.

 

배우들의 날리는 눈물과 튀어나올 듯 불거진 신경들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치솟는 감정들에도 감동이나 공감보다는 불편함이 앞선다. 그러니 그들의 격한 고민에 같이 진지해지기도 쉽지 않다.

미미의 아코디언 사운드는 극 분위기와는 잘 어우러진다. 아직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안무가로도 참여한 배우 심새인의 춤사위도 꽤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조광화 연출이 야심차게 준비한 스타일과 사운드, 춤사위 그리고 배우들의 에너지로 가득 찼어야할 무대는 묘하게 어긋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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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친키스’ 장정 역의 이상이와 영애 김로사.(사진제공=프로스랩)

 

특히 배우의 에너지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웠던 ‘남자충동’의 류승범 같은 장정을 기대하게 했던 조동혁은 덜 여문 감정표현과 불안한 발성, 불편한 움직임을 주변까지 전염시킨다. 

 

이같은 어설픔이나 불편함이 의도된 연출인지 아니면 배우 역량의 문제인지는 가늠이 어렵다. 하지만 요란한 감정표출에도 한껏 흐느적거리는 아코디언 멜로디는 배우들의 감정과 대사를 먹어치우고 무대 위를 공허하게도 떠다닌다.

그리고 마지막 스스로에게 키스를 해대는 장정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들어주지도 위로하듯 어루만져주지도 못한다. “그렇지? 그렇지?” 극 중 장정이 신희에게, 인호가 영애에게 끊임없이 확인하며 감정을 덧칠하는 과정들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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