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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Talk] '공시족' 현실 다룬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목숨 끊은지 6개월

입력 2017-04-21 07:00   수정 2017-04-20 17:43
신문게재 2017-04-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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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혼술남녀'.(사진제공=CJ E&M)

 

 

지난해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출연진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다. 드라마 종영 이튿날 조연출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출연진과 제작진이 포상휴가를 앞두고 들떠있던 시점이었다. 포상휴가는 취소됐고 드라마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출신으로 CJ E&M에 입사한 지 9개월째인 촉망받던 신입PD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이PD 사망 6개월 뒤 이씨의 유족이 포함된 ‘이 PD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씨의 죽음이 제작진의 폭언 등 사내 괴롭힘과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년유니온,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대책위는 CJ E&M이 유가족의 요구에 소극적이었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이씨는 생전 청년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또래를 위로해주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CJ에 입사했다”며 “하지만 제작환경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고인이 고통스러운 현장을 견디기 어려워했는데도 회사는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며 그의 명예까지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돼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과 군대식 조직 문화에 의한 사회적 살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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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군복무 중인 이씨의 동생은 기자회견 하루 전날 자신의 SNS에 “CJ는 자체 진상조사에서 형의 근태 불량에 사고 원인이 있다고 결론지었다”며 “하지만 형이 생전 남긴 녹음파일과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엔 (제작진의) 욕과 비난이 가득했다”고 적었다. 이씨는 간담회를 마친 뒤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사옥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CJ 측은 대책위의 기자회견이 있던 오후 늦게 공식입장을 발표하고 “사망에 대한 경찰 조사 이후 유가족과 원인 규명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해왔지만 오늘 같은 상황이 생겨 매우 안타깝다”며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이한빛 PD가 제작에 참여했던 드라마 ‘혼술남녀’는 우리 사회에서 ‘을’로 분류되는 ‘공시족’의 현실을 묘사한 드라마다. 드라마는 5.8%(닐슨미디어 유료 플랫폼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시즌2 제작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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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혼술남녀'.(사진제공=CJ E&M)

 

대책위는 이PD의 사망사건 배경에는 일부 선임자들의 언어폭력과 권위적인 근무환경이 한몫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잘 아는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일상적 수준”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오히려 ‘혼술남녀’ 촬영현장은 분위기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며 “제작진은 오디션을 보러 온 신인들에게조차 쓴소리를 하지 못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그 정도 노동강도나 업무환경은 언론사에 재직하는 이들이라면 신입시절 겪고 올라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방송사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도제식 후배 양성 시스템이 문제지 사람을 탓해서는 안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이 피디의 죽음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쪽대본, 밤샘촬영은 기본, 몇 개월에 걸쳐 하루에 두 세 시간밖에 못자는 살인적인 노동환경에서 제작진은 오로지 드라마에 대한 열정만으로 강도 높은 ‘열정페이’를 바치는 게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말단 직원들은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 일쑤다. 

일례로 이PD는 8월 27일부터 그가 실종된 10월 20일까지 총 55일 가운데 단 이틀의 휴식만 취했다. 공개된 이 PD의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고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의 드라마는 ‘한류’라는 이름 하에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는 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의 노동탄압에 맞먹는 노동착취가 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청년 전태일과도 같은 이PD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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