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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누군가에겐 '반드시' 취향저격! 관객과 결자해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입력 2017-04-20 18:00

공연사진1_이정수,김슬기,이영미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이정수(왼쪽부터), 김슬기, 이영미.(사진제공=아이엠컬처)

 

요즘 자주 쓰이는 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추임새로 장르와 제목, 협찬사가 정해지고 주인공의 이름이 정해지며 멜로디만 있는 넘버의 가사까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5월 14일 아트원씨어터 3관)이다. 그날의 뮤지컬은 어디서도 다시 볼 수 없는, 오롯이 그날 관객들만을 위한 무대다.



그 무대는 연출(김태형·민준호, 이하 가나다 순)을 비롯한 김슬기,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이정수, 정다희까지 6명의 배우와 매일 객석을 채우는 100명의 관객이 만들어간다. 표면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연의 상세설명 페이지의 ‘작/작사’에 ‘관객&공동창작’이라고 적혀 있는데다 창작진과 배우들은 집요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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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에 연출로 더블캐스팅된 김태형 연출(위)과 민준호 연출.(사진제공=아이엠컬처)

‘어드벤처 전문 극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 제작하고 20여개의 멜로디 넘버는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시작 장면인 배우들이 목을 풀 때 낼 문장 혹은 단어 결정도 관객들의 몫이다. 그렇게 관객들은 ‘결자’가 된다.

성악의 소프라노, 알토, 바리톤, 테너, 베이스 파트로 나뉜 5명의 배우들은 관객들이 정한 단어 혹은 문장에 맞춰 목과 몸을 푼다. 일종의 오버추어다.

그리고 연출이 뮤지컬 제작 의뢰 전화를 받으면서 극은 본격 시작된다. 소장르, 극의 제목, 주인공의 이름, 나이, 직업, 장단점, 꿈, 특이점, 시작장소, 명대사 등을 죄다 관객들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순식간에 진행되고 무대 중앙의 칠판에 빼곡하게 정리된다.

연출은 이미 산으로 가고 있는(?) 작품이 더 산으로 가려고 할 때마다 결단력을 발휘해 정리를 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물론 날에 따라, 연출의 성향에 따라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더 대단한 아무말 대잔치가 펼쳐지기도 한다.

연기력·가창력·능청스러움을 고루 갖춘 다섯 배우들은 순발력과 재기발랄함까지 갖췄다. 이야기와 가사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중간중간 검색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하고 벌떡 일어서 퇴장을 하기도 한다.

작품을 감상하며 자칫 진상이 될까 소리를 죽이고 옷깃 스치는 소리에도 흠칫거리는 관객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관객이 억지로 참여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극 완성에 적극 참여하든 그 과정을 보며 웃고 즐기든 모든 것은 관객 자신의 선택이다. 순전히 자기 의지로 자신의 방식대로 극에 기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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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칠판.(사진제공=아이엠컬처)

그래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줄거리 요약도 배우들의 감정표현도 연기도 평가나 리뷰가 어렵다. 사실 평가나 리뷰가 무의미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형식의 작품이다. 보는 내내 즐거웠으면 그걸로 됐다 싶을 정도다.

이 즈음에서 ‘뜬금없는’ 고백을 하자면 살아온 날 대부분이 주성치의 팬이었다. 최근 감독, 제작자로 전환하면서 특유의 병맛스러운 B급 유머, 그 깊은 데서 터져 나오는 인간에 대한 애잔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삶의 허무함 등을 볼 수 없어 우울하고도 고달픈 차였다.

그렇게 목말라하던 감성을 뮤지컬에서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김태형 연출과 다재다능하고 순발력이 넘치며 연기와 딕션, 노래에 실린 감성까지 정교한 배우들에게 몇번이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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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홍우진(앞)과 정다희.(사진제공=아이엠컬처)

 

꼭 한번 마셔보고 싶은 ‘로즈마리’酒, 순수한 마음으로 원샷해야하는 ‘나중처럼’, 늙게 하는 방구와 침 세례의 대결, 늙은 악당과 덜 늙은 악당을 둘러싼 이야기의 장르는 느와르다. 느와르의 주인공은 심각한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18세 플로리스트 김탱수, 그의 꿈은 어린왕자의 장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심각한 길치라는 단점으로 탱수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뽁~ 소리를 내면 피어나는 장미, 명대사 “살려는 드릴게”, 그의 비밀병기 수염가시, 꿈을 좇는 탱수의 앞날에는 매디슨 카운티의 앞다리·뒷다리·옆다리까지 험난한 고난이 도사리고 있다. 조력자가 있는가 하면 적도 등장한다. 그 악당에게까지 눈물겨운(?) 사연을 만들어주는 배우들의 재치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결혼했지”라고 외치면 등장하는 쇼스탑퍼, ‘장미’로 지은 이행시 “장 받으시오, 미안하오 한수만 물립시다” 그리고 ‘결자해지’를 외치며 관객들에게 엔딩선택권을 넘겼던 연출이 급조한 참으로 느와르다운(?) 마무리까지. 본 사람만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오늘 처음 만든 뮤지컬’은 반드시 누군가의 취향을 정조준할 작품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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