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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전인철 연출 "'목란언니' 보내고 '국부'에 새 시대에 대한 염원 담고 있죠!"

입력 2017-04-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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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사람들은 전혀 몰랐는데 저 혼자 콘셉트가 있었어요. 무대 중앙을 광장이라고 생각했죠.”



리딩공연을 빼고 세 번째 무대를 올렸던 ‘목란언니’에 대해 전인철 연출은 “광장의 의미”를 언급했다.

“대한민국의 2016, 2017년에는 광장이라는 공간이 의미가 있었잖아요. 어떤 빈 공간, 광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전 공연이 실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이번엔 도로변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느낌이죠.”

4면 무대에 마주 하고 있는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굴곡되고 일그러진 인물들의 얼굴 역시 2017년의 사람들이었다. 이 역시 “목란이의 노래하는 과정 중 얼굴 표정, 변화를 잡기 위해 썼던 건데 이것도 저만 아는 의도”였다.

“두달 정도 베를린에 있었는데 제가 떠날 때도, 돌아왔을 때도 시끄러웠어요.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지르는 게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혹여 그 의도가 읽히지 않더라도 저에게 ‘목란언니’는 2017년의 대한민국을 말하고자 하는 시도였죠.”

그의 표현대로 “지지고 볶는 좀 연극적인 가족들의 싸움”이 현실에 성큼 들어선 극의 변화는 대한민국의 상황과 더불어 전인철 연출의 개인사와도 맞닿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 사이에 싸움이 났었어요. 그걸 보면서 받은 느낌이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게 된 지점인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좀 과장되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은 인물을 보면서 관객들이 자기 현실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초재연과 2017년 ‘목란언니’ 사이에 겪은 일로 연극이 징글징글한 현실을 못따라온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오롯이 이야기와 배우 그리고 지금에 집중했던 2017 ‘목란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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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목란언니’는 조목란(김정민), 조대자(강지은), 허태산(안병식), 허태강(김주완), 허태양(이지혜) 등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쪼개졌던 사연과 장면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김은성 작가 특유의 이야기 방식과 중앙무대를 알차게 활용하며 그 쪼갠 이야기들을 구현하는 전인철 연출의 스타일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대본과 배우의 연기만으로 끌고 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배우들 대부분이 바뀌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무대 역시 대폭 수정됐다. 전인철 연출 스스로도 처음 극장을 찾았을 때 “이게 다 끝난 건 아니겠지?”라고 의심할 정도로 무대를 비웠다.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배우의 역할이 큰 장르다. 그런 장르에서 배우들을 새로 꾸리는 모험을 단행했다.

“무대 자체가 배우들의 뜨거움을 구현해야했고 ‘목란언니’는 더 그런 작품이었어요. 초연배우들 중 시간이 맞아서 할 수 있는 배우들이 있고 스케줄 문제로 못하는 배우들이 있으니 새 배우가 와야 하고 일정이 애매한 배우들은 더블캐스팅을 해야 하고…그렇게 ‘목란언니’에 대한 이력이 다른 배우들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했어요. 회의적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배우들로 꾸렸고 이에 대해 전인철 연출은 “잘한 선택”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목란을 중심으로 관계를 명확히 했다. 태산은 너무 가여운 아들, 태강은 연인이었다면 태양은 여자들 사이의 기싸움 상대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애다. 조대자 역시 배우가 자연스레 표출한 모성애를 좀더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극을 다진 초연배우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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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2012, 2013년 정운선 배우의 목란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면 김정민 배우의 새로운 목란이는 현실적인 인물이죠. 무대와 연결되는 지점인데 연극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인 존재로 그리고 싶었어요. 김정민 배우가 너무 잘했죠.”

배우와 무대를 모두 바꾸는 모험이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건 아니다.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전인철 연출은 “사실 제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들은 ‘목란언니’가 처음이니 초연인데 저 혼자만 삼연이었던 거죠. 예를 들어 김정민 배우가 목란이를 연기하는 걸 보는데 그 옆에 정운선이 따라다니는 느낌이었어요. 극장에 들어와서까지 그랬으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죠.”

그 고통스러운 과정에 늘 함께 했던 초연배우들에 전 연출은 “정말 뜨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좋은 순간들을 많이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고 밝혔다.

“초재연 ‘목란언니’ 공연 당시에 김은성 작가, 저, 정운선 배우가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초연에 함께 했던 10여명의 배우들이 없는 ‘목란언니’를 하면서 그들 모두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3연에서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깨닫는 시간을 보냈죠.”

전인철 연출의 말처럼 어느 창작공연이나 창작 초연의 배우들은 단순히 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목란언니’ 3연은 그에게 배우 뿐 아니라 음악, 무대감독 등 극의 토대를 다진 이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음악도 그랬어요. 초재연에서 라이브로 무대에 올렸던 음악의 자리를 채우는 게 상당히 힘들었죠.”

그렇게 전 연출은 무언가를 정리를 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깊이 깨달았다.


◇달라야 한다는 강박? 빈 공간을 채운 훌륭하고 고마운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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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목란언니’는 목란을 둘러싼 세 남매의 관계가 보다 명확해졌다.(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이전의 ‘목란언니’도 제가 만든 공연이니 제 느낌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데 거기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은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죠.”

고통에 가까운 고민 중이던 그가 새로운 ‘목란언니’를 만드는 데 온전히 집중하게 된 때는 극장 입성 즈음이었다.

“휑한 무대를 보곤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쓸 수 있는 조명도 별로 없었죠. 그 빈 부분을 배우들이 너무도 훌륭하게 채워줬죠. 같은 작품이지만 복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다른 색의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초재연에서도 등장했던 북한의 모습, 독립군들의 활약, 베트남전쟁 등 희화된 장면들은 3연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였다.

“장면전환용으로 배우와 관객들에게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어요. 예를 들어 조대자가 사업에 망해 도망을 가는 것과 목란이가 도망간 조대자를 찾으러 다니는 사이에 전환점이 있고 없고는 분명 다르거든요. 알게 모르게 극의 템포를 만들어가는 데도 중요하게 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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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목란언니’.(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전인철 연출의 말대로 “지극히 연극적이던 이전 공연과 달리 2017년 ‘목란언니’가 현실적으로 표현되다 보니 과장된 정서가 튀는” 느낌이기도 했다.

“사실 드라마 안에서도 필요 없는 장면이긴 해요. 현실적으로 개편하면서 뺄까도 생각했었죠. 하지만 초연에서 너무 의도적으로 멀어지려고 하거나 뭘 바꾸려고 하지 말자 마음먹었어요. 작품 자체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나이가 좀더 든 저의 생각과 급변한 세상이 작품에 들어오면 되지 싶었거든요.”


◇20년 지기 김은성 작가, “우리 제법 잘 어울려요”


“2010~2011년 개발단계에서는 평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북한학과 출신의 김은성 작가가 한참을 진행하다가 (평양에) 가본 적이 없어서 감이 안잡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평양생활 반, 서울생활 반을 그린 대본을 구성하자 했는데…그것도 잘 안되서 평양에서 살았던 사람(목란)이 서울을 바라보는 내용을 구성하게 된 거죠.”

전인철 연출과 김은성 작가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20년의 세월에는 친근함, 오해와 공감, 다툼과 화해 등 두 사람만 아는 감정들과 사건사고(?)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다소의 오해로 갈등을 빚었던 두 사람의 화해 역시 ‘목란언니’를 통해서였다.

“대사를 하나도 안빼고 작가님이 쓰신 대본 그대로 공연했어요. 그렇게 해도 공연의 형식, 템포 등을 다 만들어 갈 수 있었거든요. 작가님은 3번째 공연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본인의 몫이 아닌 연출의 몫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목란언니’를 비롯해 ‘시동라사’ ‘순우삼촌’ ‘아빠의 노래’ 등 두 사람이 함께 한 작품은 대부분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꽤 훌륭한 호흡에 대해 전인철 연출은 “둘 다 촌스러워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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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작가.(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저는 워낙 그 작가의 결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 역시도 촌스러운 구석이 많아요.”

 

첫사랑과의 이별에 병약해질 대로 병약해져 삶의 끈을 놓아버린 허태산이 목란을 만나 과거를 정리하며 등장한 박스에 대해 “김은성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극화시킨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내년쯤 새로운 작품을 하나 같이 하기로 얘기했어요.”


◇또 다른 목란이 살아갈 미래, “과연 행복할까요?”

“열린 결말이라기보다 설명을 많이 하지 않는 결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거짓말을 하고 결국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기도 했던 목란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다.

“그게 포인트였어요. 중국노래를 하고 있는 목란의 얼굴은 더 이상 깨끗하지 않아요. 깨끗했던 얼굴과 짙은 화장으로 변한 목란의 두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쟤는 어떻게 됐을까를 관객들이 생각해서 채워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 역시 2017년 ‘목란언니’에 새로 만든 장면이다. 이전까지는 술집 앞에서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해 전인철 연출은 “2017년의 엔딩이 좋다”고 털어놓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북한에서 온 또 다른 어린 목란에 대해서는 “김 작가님의 의도였다”며 “그 어린 목란이가 15~20년 후 성장해 주인공 목란이의 나이가 됐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행복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라고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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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지금은 우리 살기도 바빠서 통일문제나 탈북자들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어요. 탈북하신 분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사기를 당하고 현실에서 어떤 처우를 받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기를 바랐어요. 목란이가 조대자와 세 남매에게 준 모성, 연애감정 등은 우리 안에서 잠깐 잊혀졌던 소중한 것들, 고결하고 고귀한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새 시대에 대한 염원 담은 ‘국부’ “재밌을 거예요!”

“우리는 정말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지 싶었어요.”

‘목란언니’로 관심을 가지게 된 북쪽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오는 6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를 ‘국부’(國父, 6월 10~18일 남산예술센터)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지난해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에서 공연된 ‘해야된다’의 세 에피소드 중 하나였던 ‘초인’을 따로 떼어내 발전시킨 작품이다.

“‘목란언니’를 하면서 북한에서 오신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분들이 하나같이 김일성 세 부자를 엄청 욕하더라고요. 우리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정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변화에 대한 기운이 많잖아요.”

그렇게 남북한의 닮은 부분을 찾아낸 전인철 연출은 망령에 대한 찬양과 그들을 떠나 보내는 성대한 장례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북한은 김일성의 망령이 여전히 떠돌고 있어요. 이번에 정말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를 거예요. 그 동안 업적을 찬양하고 정말 보내드리는 거죠. 두분 다. 지금 대본정리 중인데 연극적으로는 찬양지점이 재밌을 것 같고 주제적으로는 떠나 보낸다는 사실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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