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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佛대선 마크롱 vs 르펜, 그리고 오이디푸스

[김수환의 whatsup] 佛대선후보 마크롱·르펜, '오이디푸스'와 오묘한 데자뷔

입력 2017-05-01 07:00
신문게재 2017-05-01 13면

佛대선 여론조사 마크롱 60%-르펜 40%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격돌한 중도신당 ‘앙 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후보와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오른쪽) 후보. (AP=연합)

 

우리나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간 TV토론이 진행되면서 각 진영과 인터넷상에서는 “OO후보에게 박근혜가 보인다”는 말이 들려온다. 과거 부정적인 리더십을 이번 대선 후보의 모습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어떨까. 프랑스 대선 결선에 진출해 현대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에게도 투영된 인물이 있으니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래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다.

 

 

◇ 마크롱과 르펜의 모습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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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신당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 작은 사진은 마크롱 후보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대선 1차투표가 발표된 뒤 부인 브리지트 여사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AP=연합)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바이 왕의 아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적인 주인공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신화속 이야기에 착안해 아버지에 대해 증오를, 어머니에 대해 애정을 느낀다는 심리학 이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창시했다.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과 르펜이 프랑스와 세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신분석학적인 시각으로 이번 프랑스대선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두 후보가 프로이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주장한다.

‘불안한제국(Fragile Empire)’ 등의 저서를 쓴 작가 ‘벤 유다’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계정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프랑스대선) 결선 투표. 한 사람은 아버지를 죽였고, 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프로이드는 모든 남자들에게는 잠재의식 속에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려는 욕망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여성들의 경우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와 결혼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이를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이름을 따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명명했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의도치 않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게 된다. 마크롱과 르펜 두 후보의 배경을 살펴보면 최소한 상징적으로는 두 후보가 프로이드의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뒤 대권에 도전한 정치신예 마크롱은 결선에서 승리할 경우 현대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자 서방 주요국 중에서도 가장 젊은 국가 지도자가 된다. 의사 부부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 투자은행 임원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승승장구해왔다. 하지만 정신분석학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뛰어난 마크롱의 경력이 아니라 고교 시절 그의 불어 교사였던, 어머니뻘 되는 24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에 골인한 로맨스다.

그렇다면 마린 르펜은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을까. 물론 르펜이 아버지를 문자적으로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파멸’시킨 것은 맞다.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은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창당한 ‘원조 극우’다. 르펜은 아버지에게 당대표를 물려받았으나, 당권을 거머쥔 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고 외국인 혐오 발언을 일삼아 온 아버지를 지난 2015년 당에서 축출했다. 이후 르펜은 인종차별 발언을 자제하면서 아버지와는 달리 다소 신중한 행보를 보여 소수정당에 머물렀던 국민전선을 어느 정도 대중 정당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후보의 이러한 배경은 프로이드학설을 따르는 정신분석가에게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대형 이벤트 프랑스 대선의 두 후보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는지 분석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크롱과 르펜에게 실제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실에서 실제로 입증을 할 수 있느냐와는 관계없이 오래된 그리스신화에서 착안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이처럼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강렬한 스토리와 함께 인간의 성적욕망, 살해에 대한 욕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오이디푸스와 오이디푸스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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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 작은 사진은 지난 2012년 3월 30일 프랑스 대선 유세중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마린 르펜 후보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

어쩌면 프랑스 정계의 이단아들인 두 후보가 결선에 올라가 격돌한 것은 운명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럽연합(EU) 잔류와 탈퇴, 세계화와 반(反)세계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문화적 다원주의와 프랑스 우선주의 등의 이슈를 놓고 격돌하고 있는 마크롱과 르펜은 프랑스를 동서로 양분시켰다. (프랑스 내부무가 공개한 대선 1차투표 지역별 최다득표자 분포현황에 따르면 마크롱은 프랑스 서쪽에서, 르펜은 프랑스 동쪽에서 우세를 보였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계 주요 지도자들도 프랑스 대선을 주목하며 응원전 또는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 마린 르펜을 사실상 지지 선언한 것이나 EU 맏형 격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마크롱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선진출에 실패한 대선후보들과 주요 정치인들이 극우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마크롱 지지로 결집하는 가운데 르펜은 노동자와 서민 계층의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 프랑스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는 르펜은 트럼프를, 자신의 고향에서 노동자층의 냉대를 받은 마크롱 후보는 트럼프에게 패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떠올리게도 한다.

극우 콘크리트 지지층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르펜과 결선 진출이 좌절된 후보 진영으로 부터 지지세력을 모으고 있는 마크롱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르펜)와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마크롱), 둘 중 누가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프랑스의 60년 기성 양당(사회당, 공화당) 정치는 몰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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