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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그려진 도시, 멕시코 과나후아토

최대 은 생산지로 부 축적, 화려한 도시로 거듭나 … 110구 보존한 미라 박물관 눈길

입력 2017-05-0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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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나후아토 중심의 라파즈광장(Plaza de La Paz)은 알록달록한 골목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멕시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인 ‘과나후아토’(Guanajuato)로 향했다. 출발 전부터 익히 전해들은 과나후아토의 명성 덕분인지 여정의 시작부터 설렌다. 멕시코시티나 과달라하라에서 출발했다면 4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지만, 서쪽 끝인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출발한 탓에 9시간의 긴 여정이 됐다.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간식거리를 잔뜩 구입한 뒤 간이 이불과 침낭 등을 두툼히 챙겨 야간버스에 올랐다. 멕시코 버스의 편안함 덕분에 금방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과나후아토는 1548년 은광이 발견되면서 건설돼 18세기에는 세계 최대 은 생산지로 성장했다. 당시 전세계 은 생산의 60%를 점유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풍부한 은 덕분에 멕시코의 부자 동네로 거듭난 과나후아토는 축적된 부를 활용, 화려한 저택과 성당을 도시 곳곳에 지었다.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다양한 예술 활동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현재는 폐광됐지만 옛 명성에 걸맞은 건축물과 도심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버스 커튼 사이로 새어나온 햇살이 단잠을 깨웠다. 창밖엔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잠시 후 도착 안내가 나오고, 펼쳐 둔 짐을 추슬러 버스에서 내렸다. 오는 동안 움츠렸던 몸을 한껏 펴고 실어뒀던 짐을 찾았다. 생각보다 차가운 과나후아토의 새벽 공기가 몸을 감싼다.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따스함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기온차가 크게 느껴진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터미널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시켜 잠깐 몸을 녹였다. 


과나후아토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이름만 들어도 오싹함이 감도는 ‘미라박물관’(Museo de las Momias)이다. 흔히 볼 수 없는 ‘미라’라는 기이한 소재로 이뤄진 박물관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박물관은 과나후아토 센트로와는 조금 떨어진 산언덕에 위치해 있어 좁은 언덕길을 따라 약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곳곳에 적힌 ‘momias’ 표지판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성인 1명에 56페소(한화 약 3360원)지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선 사진비 21페소(한화 약 1260원)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입장료와 사진비를 더해도 5000원이 안 되는 저렴한 금액이다. 멕시코의 물가는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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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박물관에 전시된 미라들의 모습


박물관은 갓난아기부터 어른까지 총 110여개의 미라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작은 미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나후아토의 건조한 기후와 토양의 특성으로 매장된 시체들은 썩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라가 되는데,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미라 대부분은 묘지 관리비를 내지 못해 이전된 것이다.


유리벽 속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미라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손을 모은 채 편안한 표정의 미라부터 아이를 품에 품고 있는 미라,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절규하는 미라까지.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메인 거리를 따라 과나후아토의 센트로로 향했다. 걷는 동안 알록달록한 골목이 눈을 즐겁게 만들고, 거리의 악사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골목을 지나 과나후아토 중심의 라파즈광장(Plaza de La Paz)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 사이로 난 길은 잘 정돈된 공원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라파즈 광장 뒤에는 강렬한 노란색이 인상적인 과나후아토 성당이 우두커니 서 있다. 아기자기한 도시의 모습과 상반되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성당이 돋보인다.


센트로를 돌아보고 우니온정원(Jardin de la Union)의 벤치에 잠깐 앉았다. 거대한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여행 중 지친 피로를 녹여주는 쉼터다. 정원을 둘러싼 카페에서 달달한 모카 한잔을 시켜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입 안 가득 맴도는 모카의 달콤함은 매섭게 스치던 바람조차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과나후아토의 전경을 보기 위해 삐삘라전망대(Monumento al Pipila)로 향했다.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걷기보다는 ‘푸니쿨라’를 이용하기로 했다. 푸니쿨라 승강장은 우니온 정원과 가까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승강장 1층에서 편도 티켓을 구입하고 승하차장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높은 언덕은 푸니쿨라에게도 힘들어 보인다. 경사진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 푸니쿨라가 걱정되긴 했지만,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과나후아토의 모습에 불안감은 금세 사라진다.


푸니쿨라에서 내리면 역동적인 모습의 ‘삐삘라 동상’이 기다리고 있다. 광부였던 삐삘라는 독립전쟁 때 횃불을 들고 정부군에 돌격한 독립투사다. 멕시코 독립사에 나오는 영웅 중 한 명인 그는 마치 과나후아토의 수호신처럼 도시를 살피고 있다.


삐삘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과나후아토의 모습은 듣던 대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과 그 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파스텔 톤의 집, 시선을 빼앗는 근사한 건축물은 마치 한 폭의 명화를 보는 듯하다. 때마침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는 아련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해질녘 붉게 물든 하늘과 과나후아토의 모습을 수차례 카메라에 담은 뒤에야 삐삘라 전망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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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삘라전망대(Monumento al Pipila)에서 바라본 과나후아토의 빛나는 야경


어두워진 과나후아토의 밤엔 낭만이 넘친다. 우니온정원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은 음악과 풍류를 즐기고, 낮에 봤던 파스텔 톤의 집들은 잔잔한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또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매일이 축제라고 할 만큼 풍류를 즐기는 과나후아토는 단연 멕시코의 최고 여행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TIP] 과나후아토를 닮은 예술 도시, 산미겔 데 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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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나후아토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산미겔 데 아옌데라는 이름의 작은 소도시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1위’로 선정되었을 만큼 빼어난 장관을 자랑한다.


과나후아토가 은광으로 성장했다면 산미겔 데 아옌데는 은 수송로의 주요 거점이 되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거듭난 곳이다. 도심 광장을 중심으로 곳곳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과나후아토 못잖게 화려하고 근사하다. 도시가 가장 번창했던 18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멕시코에서 가장 피렌체와 흡사한 도시’라는 평을 듣고 있다.


또 골목골목에서 진귀한 예술작품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예술 교육기관들이 산미겔 데 아옌데에 설립되면서 멕시코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어디서든 다양한 유형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회화나 공예 등을 배울 수 있다.


산미겔 데 아옌데는 도심의 문화적 기반, 저렴한 물가, 고산지대의 쾌적한 기후로 인해 북아메리카 은퇴자들의 안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과나후아토에서 멕시코시티로, 혹은 멕시코시티에서 과나후아토로 이동할 계획이라면 중간에 산미겔 데 아옌데를 들러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담아 가는 것을 추천한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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