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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는’ 정신건강복지법, 졸속 입법에 현실성 떨어져

정신질환자 대부분 병 인정 안해, 거부시 치료 방법 없어 … 환자 50% 퇴원대란 우려도

입력 2017-05-14 23:21   수정 2017-05-1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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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강제입원 문제를 다룬 영화 ‘날 보러 와요’ 공식포스터
정신병원 강제입원 문제를 다룬 영화 ‘날 보러와요’ 공식포스터

그동안 정신질환 환자를 본인 동의 없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던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인권 보호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 졸속 개정으로 인력 부족 및 치료효과 저하는 물론 정신질환 환자의 퇴원 대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국공립병원 정신과의사로부터 입원 여부를 재심사를 받은 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퇴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는 30일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은 강제입원이 가벼운 증상의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하거나, 멀쩡한 사람을 가두는 범행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어 개선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와 헌법재판소 지적에 따라 20년만에 전면 개정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자신 혹은 남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중 하나만 해당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두 가지 요건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 현재는 의사 1명의 진단만으로 강제입원할 수 있었지만 해당 법 시행 후에는 각기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일치된 진단이 필요하다.

국내 정신질환자 강제입원과 장기수용의 문제는 심각하다. 정신과 입원 환자의 80%이상이 비자의 강제입원이며, 평균 입원일수는 평균 100일이 넘는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비자의 입원율은 30%이내, 평균 입원일수는 30일 이내에 그친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의무자 2명과 의사 1명의 동의가 있으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 2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철저한 준비와 전문가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은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비현실적인 강제입원 요건이다.

새 개정안은 자신이나 남을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에만 강제 치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강제입원의 대상이 되는 정신질환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망상과 환청이 있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본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 치료를 거부하면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런 정신질환은 발병 초기에 입원치료를 받아야 증상이 치료가 늦어질 경우 자해나 타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의사 1명이 아닌 ‘제2 전문의’가 추가된 강제입원 결정 방식이 ‘때우기식 행정 절차’에 머물 공산이 크다. 새 개정안이 시행되면 1년에 판정해야 하는 건수만 23만건이며 이는 하루 평균 900건에 육박한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 정신과 국공립 의사는 140여명에 불과하다. 즉 365일 24시간 일을 해도 시간과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다. 이에 신경정신학회는 “전문의 한 명이 자신이 속한 병원 환자 진료와 더불어 외부 병원에 나가 ’제2 전문의‘ 역할까지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퇴원 대란도 우려된다. 개정안대로 시행되면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 8만명 절반에 가까원 3만4000여명이 법 기준에 맞지 않아 퇴원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신질환자의 ‘퇴원 대란’과 관련해 정신질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문제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비정신질환자보다 훨씬 높을 것이란 편견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하지만 대검찰청의 2011년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과 비교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2010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전체 범죄 110만8307건 중 비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53만2929건,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4136건이었다.

수익 악화로 인한 정신과 축소 운영 등 경영 구조조정도 우려되는 대목 중 하나다. 정신과의 경우 건강보험 환자보다 의료급여 환자가 훨씬 많다. 하지만 다른 진료과와 달리 의료급여환자 수가가 ‘일당정액제’로 수년째 묶여 있다보니 운영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도인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만든 개정안까지 시행되면 환자 수가 자동 감소해 수익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강제입원 진단에 동원되는 인력까지 감안하면 추가 채용으로 인한 비용 증가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4명의 정신과 전문의를 두고 200여개 병상을 운영했던 한 정신병원은 지난해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

영국은 1960년대 수용병원 폐쇄정책에서 큰 실패를 맛봤다. 1962년 정신질환자의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보호를 위해 대규모 정신병원 폐쇄정책을 도입했지만 지역사회 지지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병원 폐쇄 정책이 선행되자 대도시에 노숙자가 급증했다. 한 차례 실패를 겪은 후 대형 정신병원의 단계적 폐쇄와 강제입원 및 장기입원 억제를 유도하고, 지역사회 내 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강화함으로써 탈시설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원칙도 준비도 없이 시행될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 환자가 치료받을 권리와 인권 등 두 가지 토끼 모두 놓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보건당국은 개정법의 무리한 시행을 자제하고 유관 단체 및 전문가들과 소통해 개정안을 손볼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조기진단을 통한 최적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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