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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90% 손상 ‘햄버거병’ … 설사 안하면 더 위험

용혈성요독증후군 치사율 7%, 덜익힌 분쇄육 원인 … 70도서 2분 이상 조리해야

입력 2017-07-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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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혈성요독증후군 환자의 약 10%가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돼 투석 또는 수혈치료가 필요하고, 2~7%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지난해 9월 25일 경기도 평택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은 A양(4)은 약 두 시간 후 복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상태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오자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고 용혈성요독증후군(Hemolytic uremic syndrome, HUS)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소와 돼지의 위 또는 대변에서 주로 발견되는 대장균의 일종인 O-157균이었다. 아이는 신장이 90% 가까이 손상돼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현재 배에 구멍을 뚫어 하루 10시간씩 복막투석을 하고 있다. A 양의 어머니는 지난 5일 덜 익은 햄버거 패티로 인해 딸이 병에 걸렸다며 한국맥도날드 유한회사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또 1주일 뒤인 지난 12일에는 서울 송파구 맥도날드 매장에서 맥모닝세트를 먹은 세 살 B양이 출혈성장염에 걸린 사건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 햄버거병 사태로 패스트푸드 업계에 ‘햄버거포비아(햄버거 공포증)’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절대 햄버거를 먹이지 않겠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선 분쇄육으로 만든 미트볼, 함박스테이크, 떡갈비 등을 다른 메뉴로 교체하고 고기를 확실히 익혀달라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장출혈성대장균에 의해 발병하는 혈전성 미세혈관질환의 일종으로 손상된 적혈구가 신장에 박혀 신장기능을 떨어뜨린다. 김현욱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발병 후 2~12일이 지나면 복통과 설사가 시작되고 곧이어 전체 환자의 3분의 2 이상에서 검붉은색 혈변, 오심, 구토 등이 나타난다”며 “환자의 약 10%가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돼 투석 또는 수혈치료가 필요하고, 2~7%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사 증상이 없으면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지는 게 특징이다. 미국 의학전문지 메드스케이프(Medscape)에 실린 연구내용에 따르면 설사 동반 시 사망률이 3∼5% 정도지만 설사가 없을 땐 26%로 5배 이상 급증한다. 제1군 법정감염병인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환자의 약 10%가 용혈성요독증후군으로 악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1982년 미국 오리건주와 미시간주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47명이 한꺼번에 걸리면서 ‘햄버거병(Hamburger disease)’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미국에서는 바비큐시즌에 자주 발병한다는 의미로 ‘바비큐시즌신드롬’으로도 불린다.
1993년엔 미국 패스트푸드업체인 잭인더박스(Jack in the Box)의 햄버거를 먹은 10세 미만의 아이 732명이 집단으로 햄버거병에 감염됐다. 이 중 4명이 사망하고 178명이 신장과 뇌가 손상되는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앓으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패스트푸드 매장이 늘면서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식중독의 일종인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에 걸렸다가 합병증으로 HUS을 확진받은 환자가 2011년부터 5년간 24명 발생했다. 이 기간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에 감염된 환자 수는 443명이었다. 장출혈성 대장균에 걸린 사람 100명 중 5명(5.4%)은 HUS걸렸다는 의미다.  특히 면역력이 취약한 아동의 발병률이 높아 전체 환자 24명 중 0~4세가 58.3%(14명)로 가장 많았다.
역학조사 결과 환자들은 발병 직전 우유,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먹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실제 이들 음식이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과 HUS를 유발했는지 구체적인 인과 관계는 규명되지 않았다.


원인균인 장출혈성대장균은 도축 과정에서 잘린 소고기의 겉면에 서식한다. 70도 이상에서 조리하면 고기 겉면에 있던 대장균은 대부분 열에 의해 쉽게 죽는다. 하지만 햄버거용 패티처럼 고기를 갈면 겉면에 있던 대장균이 안쪽으로 뒤섞여 들어가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체내에 전파될 수 있다. 햄버거 패티가 스테이크보다 위험한 이유다.


햄버거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소고기 패티의 안전성 논란이 종종 제기됐다. 미국에서 출간된 ‘패스트푸드의 제국’은 상당수 패티 공장들이 위생에 문제가 있고 살코기뿐만 아니라 소의 내장 등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번 햄버거병 사건에서 문제가 된 대장균도 패티 속에 들어간 소의 내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맥도날드 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발병 원인으로 지목된 패티는 쇠고기가 아닌 국산 돼지고기로 제조됐고, 내장을 섞어 만든 분쇄육은 사용하지 않았다”며 “사건 당일 해당 고객이 취식한 제품과 같은 제품이 300여개 판매됐으나 제품 이상이나 건강 이상 사례 보고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는 “돼지고기도 소고기처럼 HUS의 발병 원인이 되고, 꼭 분쇄육에 내장을 섞지 않았더라도 병원성 대장균이 다른 경로로 유입될 수 있다”며 “다만 이번 사건의 정확한 인과관계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햄버거병은 음식을 덜 익혀 먹었을 때 감염되는 질환 중 가장 위험한 것으로 꼽히므로 예방이 중요하다. 고기류는 70도 이상에서 최소 2분간 잘 가열해 먹어야 하고, 구운 고기를 생고기가 있던 접시나 그릇에 올려놓는 것을 삼가야 한다.
냉장고에 고기를 보관할 땐 다른 재료 아래쪽에 두는 게 좋다. 고기에서 나온 액체가 아래로 흘러 다른 재료를 오염시킬 수 있다. 음식을 먹기 전, 화장실 다녀온 후, 기저귀를 갈은 뒤에는 손을 반드시 씻고 살균되지 않은 우유, 주스, 사과식초 등은 피해야 한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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