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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군함도’, 배삼식의 ‘1945’ 그리고 놀란의 ‘덩케르크’…비슷한 시기의 결 다른 탈출극, 그들의 한결같은 메시지

입력 2017-07-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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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배삼식 작가의 ‘1945’,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국립극단,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수고했네.”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요.”
“그거면 충분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패배’라는 자괴에 시달리는 소년병과 그를 맞이한 노인의 대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신작 ‘덩케르크’(Dunkirk)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최근 개봉한 ‘덩케르크’를 비롯해 배삼식 작가와 류주연 연출이 의기투합한 연극 ‘1945’(7월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6일 개봉을 앞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비슷한 시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계층, 인물들의 집단 탈출기라는 데서 닮아있다.



◇그 무엇도 생존을 앞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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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 영국군과 연합군 탈출 작전을 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빗발칠지 모를 총알, 손 쓸 새도 없이 초토화시키는 비행기 포탄 공격, 영국군과 그 외 나라 군사들의 반목에 놀란 감독은 지극히 인간적인 이기와 감동을 적절하게 배합했다.

2015년 ‘먼 데서 오는 여자’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배삼식 작가의 신작 ‘1945’ 역시 그렇다.

 

해방직후 만주 장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를 장춘에서 2등 국민으로 살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조선인들의 웃고 울고 걱정하고 안도하는 구체적 일상을 담고 있다.

류승완 감독, 황정민·소지섭·송중기·이정현·김수안 등의 ‘군함도’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위안부로, 광부로 강제징용돼 착취당하고 죽어갔던 하지마 섬을 배경으로 한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고 또 누군가는 폭력을 휘두른다. 또 누군가는 일제의 만행에 가담해 같은 조선인들을 핍박한다. 일제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조선인들의 폭압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며 평범하고 연약했던 이들은 독해질대로 독해져 악다구니를 친다.

조선의 해방,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탈출기를 담고 있는 세 작품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생존’이다. 결을 달리하는 세 작품이 공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그 무엇도 ‘생존’을 앞지르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군함도’ 인물들의 다소 식상한 되뇜은 2017년 이 시대를 전쟁처럼 살아내고 있는 이들도 공감할만한 주문이 된다.


◇추상적인 집단의 역사 아닌 구체적 개인의 일상, 인상 깊은 ‘1945’ 명숙과 ‘군함도’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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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의 말년 이정현.(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세 작품은 추상적으로 회자되던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구체적으로 영상화하고 형상화했다는 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다. 선악, 정의로움, 국적 등 어느 것도 ‘생존’을 앞설 수 없는 상황에서 세 작품은 집요하게 개인의 행동을 따른다.

이같은 면에서 인상깊은 인물은 ‘군함도’의 위안부 박말년(이정현), 연극 ‘1945’의 위안소 동지 이명숙(김정민)과 미즈코(이애린), ‘덩케르크’의 프랑스 병사 깁슨(아뉴린 바나드)이다.

전쟁 막바지 군함도 탈출을 시도하는 말년과 치치하얼 위안소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해 기차를 기다리는 명숙은 비슷한 시기의 위안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제 착출로 끌려가 지옥을 경험했음에도 ‘왜놈들하고 붙어먹은 년’, ‘더러운 진창’을 빠져나와 ‘씻겨줘야 할 불쌍한 존재들’ 등으로 비난 받아야 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픈 역사의 일부로 남아있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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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945’의 미즈코 이애린과 이명숙 김정민(사진제공=국립극단)
말년과 명숙은 그간 측은지심 일변도로 그려지던 위안부와는 다르게 인간답게 사는 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선택을 하는 인물들이다.

“돈 벌게 해주겠다고 꼬드겨 팔아넘긴 것도, 위안소의 포주도 조선인”이라거나 “당신이 뭔데 우릴 데려가구, 버리구 한다는 거야? 씻어줘? 우리가 더럽다구? 아니, 우린 더럽지 않아…(중략)…더러운 건 우릴 보는 당신, 그 눈이지”라던 말년과 명숙의 일갈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어떤 지옥도 우리를 더럽히지는 못했어. 하지만 당신 앞에 서 있으면, 우리는 영영 더러울거야!”

당차게 외치고 울부짖으며 떨쳐 일어설 줄 아는 두 사람은 일제 만행의 산증인인 동시에 여전히 척결되지 않은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의지가 서린 인물이기도 하다.

2017년에도 여전히 ‘여혐’이 논란이 되곤 하는데 당시 여성의 삶이 지금보다 나을 리 없다. ‘절대악’ 일본 제국주의에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가 가진 비틀린 단면과 문제들을 이제는 정면으로 목도해야 한다고 결연하게 외치는 인물들이 명숙과 말년이다.


◇과거 적폐와 잔재 척결의 출발점은 부끄러움에 대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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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에서 배에 타기 위해 부상병을 들고 뛰는 피터와 깁슨.(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1945’의 미즈코와 ‘덩케르크’의 깁슨은 적국인 일본인이고 극 중 최우선 구조대상인 ‘영어 쓰는 사람, 영국군’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왜년과 독일놈 혹은 프랑스놈으로 분류된 이들은 해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던 이들의 선택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벙어리 행세를 하며 명숙의 여동생으로 위장해 조선인들 무리에서 지냈던 미즈코는 하나의 기차표로 묶인 운명 공동체에서 걸러내야만 할 ‘왜년’이었다. 함께 떡을 팔며 두달 간 신세지고 도움 받으며 단란한 한때를 보냈던 이들에 의해 결국 버림받는다.

‘덩케르크’의 주인공인 소년병사 토미(핀 화이트헤드)는 말이 없는 동료군인 깁슨과 구조선에 오르기 위해 부상병을 들고 뛰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오른 구조선이 폭격으로 좌초되고 물속에서 죽을 뻔한 병사들은 깁슨의 구조로 생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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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또 다시 오른 배, 폭격으로 구멍이 나면서 누군가 내려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토미와 깁슨의 구조로 생존한 알렉스(해리 스타일스)는 말을 않고 있는 깁슨을 독일군으로 몰아 하선을 강요한다.

 

결국 프랑스 병사라는 정체가 들통난 깁슨과 토미에게 “네 친구는 프랑스놈이잖아. 어차피 내릴 사람은 정해져 있어. 그 다음도 정해져 있어. 우린 다 같은 사단 소속이야”라고 경고한다.

적군의 총알이 빗발치는 배안, 바닷물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는 절박한 순간의 선택, 어떤 것도 ‘생존’을 앞설 수는 없다. 하지만 극은 그렇다고 모든 선택이 옳지만은 않음을 구사일생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한번 인식시킨다.

그 선택 끝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알렉스, 그 무리들의 “도대체 공군은 뭘 했어”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 공군병사, 덩케르크 해안 탈출 전략에 동원된 민간선박의 주인 도슨(마크 라이런스)에 의해 구조된 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다 소년 조지(베리 케오칸)를 죽게 한 병사(킬리언 머피), 그 병사에 의해 죽은 조지가 전쟁영웅이 되도록 눈감은 깁슨과 피터(톰 글린 카니) 등 누구 하나 말끔한 눈빛이 없다.

누구 하나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선택, 하지만 해리는 패잔병으로서의 부끄러움, 살기 위해서라지만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 데 대한 자괴감 등을 표출한다. 조지를 죽음으로 내몬 병사 역시 끊임없이 그의 상태를 물으며 자신 행동의 그릇됨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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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이 즈음에서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중 연옥(윤유선·진경)과 정민(성기윤·조한철)의 토론 주제였던 ‘비겁함’에 대한 정민의 대사가 떠오른다.

“진짜 용기는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거야.”

‘생존’을 앞지를 수 없는, 누구도 틀리지 않은 선택은 그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군함도’가 가까스로 탈출한 소희의 심중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마지막을 장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군함도 탈출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에서의 탈출이다. 이미 오래 전에 청산됐어야 할 과거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잡아먹고 있다”던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벌써 했어야할 과거의 적폐와 잔재 척결의 시작은 부끄러움에 대한 인정과 마땅한 댓가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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