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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성 영화는 안된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여성 원톱 영화, 중견여배우 전성시대!

데뷔 30년 이상의 여배우들 한국영화계 이끌어

입력 2017-10-16 07:00
신문게재 2017-10-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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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에 ‘여풍’이 불고 있다. 드라마와 판타지, 코미디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최근 10년 넘게 여배우 영화 기근에 허덕이고 있는 영화계에 단비같은 소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륜과 경험이다. 20년 이상 연기로 다져진 뚝심은 영화의 결을 달리한다. 특히 젊은 배우 못지 않은 도전정신과 그 안에서 펼쳐보이는 다양한 캐릭터의 변주는 절대적 흥행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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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아이캔 스피크’의 나문희.70대 여배우의 연기 내공이 흥행을 이끌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명필름)

◇나이는 숫자일뿐

 

최근 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아이 캔 스피그’의 성공은 그래서 더 값지다. 극중 나문희는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가 아니다. 혼자 시장에서 옷수선집을 하며 살아가는 캐릭터다. 

 

민원 건수만 8000건의 구청 블랙리스트지만 이제훈과 나이차를 뛰어넘는 케미를 발휘하며 극중 웃음과 눈물을 책임졌다.

남자 주인공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여자 주인공에 전면에 나서고 심지어 70대가 주인공인 경우는 흔치 않다. 

 

나문희는 기자간담회에서 “내 나이에도 주인공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알 거다. 사실 부담도 걱정도 많았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점에 뿌듯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바통은 ‘국민엄마’ 김해숙이 받았다. 영화 ‘희생부활자’에서 7년만에 아들 곁으로 살아 돌아온 명숙으로 분하며 희생과 복수를 넘나드는 감정연기를 보여준다. 

 

김해숙은 “최근 충무로에 여배우를 위한 영화가 없다는 위기의식은 나를 자극하는 요소다. 내가 더 열심히 할수록 후배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환경이 빨리 만들어질 것”이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60대 여배우의 기수인 김해숙은 올해만 ‘재심’, ‘희생부활자’, ‘신과 함께’ 세 편의 영화를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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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캐릭터 도전에 거침없는 배우 고두심.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오는 11월에는 고두심이 ‘채비’로 관객들을 공략할 채비를 마쳤다. 이 작품에서 고두심은 프로 잔소리꾼 엄마 애순을 연기한다. ‘채비’는 이별의 순간을 앞두고 홀로 남을 아들을 위해 특별한 체크리스트를 채워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로 또 한편의 여배우 원톱 영화로 하반기 흥행 공식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김혜수는 영화 ‘미옥’으로 은발 염색과 고난도 액션을 소화하며 한국영화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40대임에도 데뷔 30년차를 맞이한 김혜수는 전작 ‘차이나타운’을 통해 국내에서 전무했던 ‘여성 느와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미옥’에서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운 여인의 배포와 카리스마로 화면을 채운다.

‘미옥’의 희소성과 가치는 해외영화제 초청으로 증명되고 있다. 제50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부문 가운데 하나인 오르비타에 진출한 데 이어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와 문화를 런던에 소개하는 제2회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와 11월2일 개막하는 하와이국제영화제도 일찌감치 초대받았다. 

 

 

◇안된다는 편견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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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희생부활자’에서 광기와 모성을 오가는 연기력을 선보인 김해숙.(사진제공=쇼박스)

사실 ‘여배우 기근 현상’은 시대마다 변하는 인기장르와 세대별 취향과 맞물린다. 영화 ‘추격자’가 흥행에 성공한 후 한국영화는 범죄 스릴러 액션, 남성 위주의 캐릭터와 스토리의 영화들이 무한 반복되면서 대중들의 피로감을 높였다. 일각에서는 여배우들이 남자배우들보다 외모에 치중하고 비중에 까다롭기 때문이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 영화제작자는 “호흡이 빠른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흥행되지 않을 경우 배우 이미지에 타격이 크다. 이에 첫 영화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20대 여배우의 부재는 심각할 정도다. 그런 상황이 길어지면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3, 40대 여배우들이 영화계 허리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낼 때 20대 초반 여배우를 내세운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거의 사라졌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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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녀'(사진제공=NEW)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은 ‘악녀’는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든다. 영화는 어려서부터 살인병기로 길러진 숙희(김옥빈)가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비밀과 음모에 맞서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룬 시원한 액션이다.   

 

연출을 맡은 정병길 감독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안 된다는 말이 내 귀에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로 들리더라. 현재 우리나라는 여자 영화를 만들려는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한다. 어릴 적 액션영화에 대한 로망을 멋진 여배우를 통해 이루고 싶었다”며 여배우를 원톱으로 세운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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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흥행공식에 ‘여성느와르’라는 청사진을 제시한 김혜수. 영화 ‘미옥’의 한 장면.(사진제공=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곧 도래할 여성 캐릭터의 향연

  
중견 여배우들의 이런 활약은 영화제를 통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22회를 맞아 사상 최초로 여성감독의 영화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신수원 감독의 개막작 ‘유리정원’에 이어 폐막작 ‘상애상친’은 대만 출신 실비아 창 감독이 주연까지 맡았다. ‘상애상친’은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섬세하게 표현한 수작이다.

남성 위주에 여성혐오 논란까지 제기되는 한국 영화계의 척박한 현실을 무색하게 하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은 영역 파괴라는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픈토크 ‘여배우, 여배우를 만나다’를 진행한 문소리는 “왜 이렇게 여성 캐릭터들이 줄어들었는가에 대해 생각하니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연결돼 있더라.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럴수록 더 다양한 모습으로 여배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게 과제”라고 밝혔다. 문소리는 최근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감독데뷔를 마쳤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프로그래머 역시 영화제를 통한 변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주류 영화계에선 남성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많다면 주류 바깥에선 여성, 아이 등 주류 영화계에서 외면 받는 주체들을 조명받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는 한국 영화계 전체로 봤을 때 긍정적인 신호라 생각한다. 영화제가 이런 영화들을 돋보이게 하고 주목받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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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의 배우 문근영(왼쪽)과 신수원 감독.(연합)

 

‘채비’의 홍보를 맡은 더홀릭 컴퍼니의 최정선 실장은 “중견 여배우들의 캐릭터가 엄마로 국한된다는 것도 오산이다. 같은 엄마역할이라도 배우에 따라 완성되는 캐릭터가 틀리지 않나. 이들은 기존의 클리셰(흔히 쓰이는 소재나 습관적으로 재생 반복되는 표현)를 깨거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분명 배우로서의 큰 무기이자 장점이다. 영화의 흥행을 책임지는 개봉 후 입소문의 경우 재미와 함께 이런 배우들의 연기력이 8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여성영화가 안된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 단언한다. 심대표는 “여자가 주인공이면 ‘투자를 못 받겠지?’라는 것 자체가 선입견 아닐까. ‘아이 캔 스피크’도 여러 제작사가 힘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여배우만 나오는 ‘더 테이블’도 저예산 영화라는 한계를 딛고 10만명의 관객을 만났다”며 “시나리오 작가나 제작자 모두 용기를 더 많이 냈으면 좋겠다. 시도를 계속 한다면 수요와 공급이 맞물린 좋은 영화들이 나올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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