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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현대와 과거, 예술과 자본의 공존 … 화려한 두오모와 에마누엘레 갤러리

오페라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 … 6월엔 아레나서 오페라 페스티벌 향연

입력 2017-10-16 14:49   수정 2017-10-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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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스칼라극장 전면

패키지여행의 특성 상 베네치아 관광을 마치고 오전 11시까지 마치고 당일 오후 2시께 베로나(Verona)에 도착했다. 스위스에 가까운 밀라노와 베네치아의 중간 쯤에 위치한 곳이다.


거리엔 여유와 낭만이 느껴진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다는 선입견도 작용하겠지만 베로나는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베네토주(Veneto Region)에서 베네치아 다음으로 크고,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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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의 원형경기장


버스를 내려 아디제강(Fiume Adige)의 이름 모를 다리를 건너 카스텔 베키오(Castel vecchio) 성벽을 따라 20여 분 걷다보니 베로나에서 가장 튀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아레나’가 눈앞에 서 있다. 서기 30년경에 세워졌고 로마의 콜로세움과 나폴리 원형경기장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검투사들이 싸우는 경기장이었고, 중세에는 법원으로 사용됐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마상경기장으로, 18세기에는 코미디 공연 극장으로 쓰였다.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오페라 공연장으로서 해마다 6월이면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가면무도회(베르디), 투란도트(푸치니), 카르멘(비제),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시니) 등 스케일 큰 거장의 오페라 작품이 공연된다.


아레나 동편으로 구시가지 진입로가 나 있다. 몇 분 걸어올라가다가 왼쪽에 보이는 곳이 에르베광장이다. 우측으로 꺾으면 카펠로 거리의 ‘줄리엣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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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에르베광장의 람베르티탑


에르베광장(Piazza delle Erbe)은 베로나의 중심이다. 에르베(라틴어 herba, 약초, 전초)라는 명칭은 옛날 베로나의 약초시장에서 유래했다. 에르베 광장은 중앙의 분수대와 람베르티탑(Torre dei Lamberti)이 상징한다. 좌우에 고풍스런 건물이 늘어서 있다. 14~16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유서 깊고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호화스러운 면이 겹친다. 베로나 시가 곳곳엔 분홍빛이 도는 베로나 석회암(로소, Rosso)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 화사한 느낌이 든다.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에 카푸레티(Capuleti) 가문의 줄리엣이 실제 살았다는 증거가 없다. 그저 15세기풍 이탈리아 귀족의 저택을 재현해놓은 것이다. 뜰에는 로미오가 세레나데를 불렀다는 테라스도 그럴 싸하게 만들어져 있고 자그마한 마당에는 줄리엣의 동상도 서 있다.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남성 관광객들이 사진을 남기려 한다. 그 탓에 오른쪽 가슴만 반질반질하다. 동상 옆 나무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채워져 있고, 집 입구에는 영원한 사랑을 염원하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그러고보면 세익스피어는 베네치아에서 ‘베니스의 상인’, 베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로마에서 ‘줄리어스 시저’ 같은 자신의 대표 희곡을 착안했다. 이탈리아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을까.


패키지 여행의 특성상 필자가 베로나에서 본 것은 여기까지다. 베로나 두오모성당, 산타 아나스타시아성당, 시뇨리광장은 에르베광장 지척에 있는 데도 미처 둘러보지 못했다. 아레나 옆 브라광장 분수도 놓쳤다. 촉박한 일정을 핑계로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필수코스를 생략하는 여행사의 관성이 원망스럽다. 차라리 다음날 일정인 친 퀘테레(5개 해안마을)를 생략하고 베로나 일정을 충분히 늘렸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친 퀘테레는 지중해라면 흔한 풍경의 하나일 뿐이란 생각이다.


베로나 구도심지를 감아 흐르는 아디제강엔 7개의 다리가 있다. 그 중 로마극장 및 산 피에트로성(Teatro Romano & Castel san Pietro)과 구도심지를 잇는 피에트라다리(Ponte Pietra), 그 남쪽의 줄리엣의 집과 가까운 누오보다리(Ponte Nuovo)가 아름답다고 한다. 산 피에트로성에선 강 너머로 베로나 시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붉은 벽돌과 지붕으로 지어진 오래된 가옥과 건물이 따듯한 인상을 준다.


카스텔 베키오(Castel vecchio)는 베로나 대공인 칸그란데 Ⅱ 델라 스칼라의 요새 궁전으로 1356년에 지어졌다. 붉은 벽돌을 사용한 고딕양식이다. 구도심의 서쪽, 아디제강이 굽어지는 포인트에 위치한다. 강은 이곳을 기점으로 구도심을 감싸며 동쪽으로 흐르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간다. 칸그란데는 베로나를 지배하는 요충지에 머물면서 변란이 일어나면 스칼리게로다리(Ponte Scaligero)를 통해 안전하게 대피하려 했다. 그러나 칸그란데는 시민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물려 부를 쌓고는 이 돈을 모두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은행으로 빼돌렸다가 시민들의 증오를 사고 결국 동생의 손에 살해당하고 만다. 카스텔 베키오도 꼭 감상해야 할 위대한 건축물로 선정돼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다.


베로나 일정을 마치고 석양 무렵에 밀라노에서 내렸다. 밀라노(Milano)는 서로마제국의 수도였고 지금은 롬바르디아주(Lombardia Region)의 주도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태동해 밀라노에서 만개했다고 개념짓기도 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파리와 함께 패션의 산업화, 세계화를 추동하는 엔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예술과 자본이 동거하는 곳이기도 하다.


밀라노 관광은 스칼라극장(스칼라좌, Teatro alla Scala)이 있는 스칼라광장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스칼라극장은 베르디와 푸치니가 오페라를 초연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1176년 화재, 1943년 2차 세계대전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이내 다시 복원됐다. 내부에는 3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스칼라광장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이 있다. 다빈치 동상 하부엔 4명의 제자가 그를 떠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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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두오모대성당 전면


스칼라광장에서 밀라노 두오모대성당을 연결하는 아케이드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Ⅱ)다. 하늘을 덮은 거대한 유리지붕 아래 루이뷔통, 프라다, 베르사체 같은 명품점이 몰려 있다.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 1829~1877)는 이 아케이드가 완공되기 1년 전 공사감독을 하던 중 천장에서 추락해 사망하기도 했다. 이 거대한 쇼핑몰은 당시로는 유리와 철골만을 사용해 지어진 최초의 건물로 인식되고 있다. 밀라노가 오스트리아 지배에서 벗어나 신생독립국가인 이탈리아의 산업과 상업의 선두 도시임을 건축물로 웅변하려는 기세가 엿보인다.


이 갤러리는 통일 이탈리아왕국의 초대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395년 동로마 서로마로 분리된 이후 재통일된 1861년까지 근 1500년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슬람 등의 각축장이 됐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샤르데니아의 제2대 국왕(재위 1843~1861)으로 재위하다 통일 후 제1대 국왕(1861~1878)이 됐다. 일찍이 입헌군주제 체제로 행정·재정의 근대화를 추진했고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20~1878)의 남 이탈리아 원정을 지원해 오스트리아로부터 롬바르디아를 수복하고 시칠리아까지 통합하는 업적을 이뤘다. 이 때문에 그를 국부(國父), 성실왕(誠實王)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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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200m의 긴 회랑이 스칼라광장과 두오모 대성당을 잇고, 그와 수직으로 100m의 회랑이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한다.
에마누엘레 갤러리는 워낙 화려한 공간이라 ‘밀라노의 거실’이란 별칭이 붙었다. 십자로(200m, 100m의 회랑이 수직으로 교차)의 천장은 팔각형의 유리 돔으로 웅대하다. 그 아래 루넷(lunettte 둥근 지붕이 벽과 만나는 지점에 생기는 반원형의 공간)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는 여상주(女像柱)를 올린 발코니가 이어져 19세기 근대건축의 최상 면모를 과시하고 한다.


갤러리의 바닥은 타일로 장식돼 있다. 그 정중앙의 팔각형 모자이크엔 피렌체의 백합, 로마의 늑대, 밀라로의 십자가, 토리노의 황소 등 주요 4개 도시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는 샤르데니아 왕국의 일원인 사보이(Savoie) 가문을 상징한다.


두오모대성당은 로마시대의 도시구조인 메디올라눔(Mediolanum)에서 한 가운데를 점하고 있다. 모든 밀라노의 도로가 결국 이 지점에 모이고 여기서 방사된다. 첫번재 성당(basilica nuova)은 작은 규모로 355년경에 테클라 성인(St Thecla)에 봉헌됐다. 그 옆에 또다른 바실리카가 836년에 추가로 지어졌다. 화재로 이 두 건물은 1075년에 소실됐다. 다만 오래된 팔각형의 세례당(the Battistero Paleocristiano, 335년 건축 추정)은 지금도 남아 순례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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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두오모대성당 전면
지금의 대성당은 1386년 안토니오 다 살루초(Antonio da Saluzzo) 대주교가 이탈리아보다는 프랑스에서 보편적이었던 후기 고딕 양식인 라요낭(rayonnant)양식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대주교의 사촌인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가 밀라노에서 권력을 잡은 시기와 맞물렸다. 피렌체를 지배한 게 메디치 가문이라면 밀라노는 비스콘티 가문이 쥐고 흔들었다.


비스콘티 가문의 전임자였던 바르나보 비스콘티(Barnabo Visconti)의 폭정에 대한 귀족과 노동자의 원망과 불만을 간파한 갈레아초는 공사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대주교의 궁전, 오르디나리 궁전, 봄의 성 스테파노 세례당 등 세 개의 주요 건물이 철거하는 동시에 옛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 석재를 가져와 썼다.


시민들에게 훌륭한 새 건축물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갈레아초와 대주교가 힘을 모아 기부금을 모았다. 작업은 빠르게 진행돼 갈레아초가 1402년 사망할 무렵에는 대성당의 거의 절반이 완공됐다.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과 설계 수정으로 밀라노 두오모를 완성하는 데 거의 500년이 걸렸다.


밀라노 대주교였던 샤를 보로메오(Charles Borromeo 1538~1584)와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펠레그리노 티발디(Pellegrino Tibaldi(1527~1596)는 대성당에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외관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딕양식은 이탈리아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7세기 초 페데리코 보로메오(Federico Borromeo, 1564~1631)는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치니(Francesco Maria Richini 1584~1658)와 파비오 만고네(Fabio Mangone 1587~1629)에게 대성당의 새로운 외관을 기초하도록 지시했다. 다섯개의 입구와 두개의 중앙 창문을 건설하는 작업은 1638년까지 계속됐다. 잠시 고딕양식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1762년 대성당의 주요 포인트인 108.5m의 마돈니나 첨탑(Madonnina’s spire) 첨탑이 세워졌다. 밀라노의 유명한 습기차고 흐린 기후 탓에 먼거리에서도 이 첨탑이 잘 보이면 밀라노 사람들은 날씨가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1805년 5월 20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 나폴레옹 1세)는 이탈리아왕에 즉위할 무렵 건물의 외관을 완성하도록 지시했다. 의욕에 넘쳐 프랑스의 회계 담당자가 건축 공방에 모든 비용 부담을 보장토록 지시했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나폴레옹 조각상이 한 첨탑의 꼭대기에 설치됐다. 1829년~1858년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새 것으로 교체돼 미적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으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세부 장식이 완성됐다.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출입구는 1965년 1월 6일에 열렸다.


밀라노 두오모대성당은 135개의 첨탑(최고 높이 157m)과 3000개가 넘는 조각상으로 장식돼 있다. 아직도 조각이 끝나지 않은 돌 덩어리가 무수히 많다. 대성당의 주 정면은 2003년부터 2009년 2월까지 공사가 진행돼 칸돌리아 대리석(Candoglia marble, 붉고 검고 회색빛 줄이 층층이 섞여 있음)의 색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10만 유로 이상을 기부하면 첨탑의 외관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길 수 있다.


밀라노 두오모는 화려함, 도시적 세련미, 웅장함에서 단연 돋보였다. 너무 호사스러운 나머지 신에 대한 엄숙한 경배가 오히려 뒷전일 정도다.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가 인접해 있어 이런 측면이 더 부각돼 보이는지도 모른다.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비둘기가 많다. 관광객을 상대로 새 모이를 비싸게 팔거나, 행운을 주는 실 팔찌를 채워놓고는 돈을 내놓으라 트집잡는 협잡꾼도 많다. 시빗거리에 휘말리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정종호 기자 health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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