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다’리뷰]아름다운 가식과 지옥 같은 진실의 경계에서 ‘클릭’할 때까지! 모두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 문삼화 각색연출, 이호재, 이승주, 우정원, 이정미, 오민석, 김지원 출연
1958년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입력 2017-10-19 21:00

000_15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사진제공=예술의전당)

 

“거기가 사람 살 데냐?”



햇볕은 무섭게 내리쬐고 양철지붕은 뜨끈거린다. 모든 인물들이 단 한순간도 발을 디딜 수 없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0월 18~11월 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마냥 안절부절 안달복달이다.

오래도록 친구와 동성연인 사이 어디쯤을 서성이며 미묘한 감정을 나눴던 스키퍼의 죽음으로 술과 기행에 찌든 삶을 영위하고 있는 브릭(이승주)도, 그런 남편에 애걸복걸 애정을 갈구하는 마가렛(우정원)도 안절부절 좌불안석이다. 

 

000_16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중 브릭 이승주(왼쪽)와 마가렛 우정원.(사진제공=예술의전당)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울고 웃고 절규하는 빅대디(이호재)도, 그런 남편에 덩달아 희로애락하는 빅마마(이정미)도, 부모와 동생을 위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상처와 이득이 더 중요한 형 구퍼(오민석)·메이(김지원) 부부도 저마다 절실하게 안달복달이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1955년작으로 빅대디의 생일파티를 위해 모인 폴리트 가족의 욕망, 허위와 진실 그리고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1958년에는 폴 뉴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그 작품이다.

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 참석한 문삼화 연출은 “반드시 1950년대를 구현해야하는 작품이 아니어서 1990년대 어디쯤, 마지막 아날로그 시대 정도로 설정했다”며 “1950년대든 2017년이든 스스로 겪어 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시대적 배경은 아사무사하게 넘기고 싶었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시대를 제외하고는 원작에 가깝게 각색·연출·구현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는 비스듬한 무대, 황량한 세트, 그 황량함을 더 짙게 하는 파란 조명 등으로 등장인물들의 혼란과 고독, 음울한 기운을 배가한다.

솔직함과 막말, 쿨함과 이기, 거짓과 진실, 교양과 천박함…. 그 복잡한 경계에서 브릭과 마가렛, 마가렛과 빅마마, 빅마마와 메이·구퍼 부부, 그 부부와 마가렛 등은 서로를 상처주고 저도 모르는 새 스스로도 상처 입는다. 그렇게 층층이 쌓아올린 감정과 켜켜이 틈새를 파고든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았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가 사람 살 데냐?”

000_3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빅대디 이호재(왼쪽)와 브릭 이승주.(사진제공=예술의전당)

 

극 중 대사처럼 ‘아름다운 가식과 지옥 같은 진실’ 사이에서 전쟁과도 같은 신경전을 벌이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공격적이고 앙칼지다. 표면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이기와 배려, 저마다의 욕망 등으로 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진실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래도 얘기했어야지.”

부부, 부자, 모자, 형제, 동서지간 등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말해지는 거짓과 진실, 그리고 그 기로에서의 고민과 선택은 비단 극 중 인물들만의 것이 아니다. 무작정 편안해지는 순간, ‘클릭’이 걸릴 때까지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떠들어대는가 하면 누군가는 한없이 울어댄다. 

 

000_13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왼쪽부터 마가렛 우정원, 브릭 이승주, 빅마마 이정미.(사진제공=예술의전당)

 

“적어도 난 정직은 해.”
세월이 패대기쳐버리고 간 삶, 거짓을 빼면 남는 것이라곤 없는 허위 투성이의 세상에서 팔딱거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마가렛은 이렇게 외친다.

“임신했어요.”
세상을 가득 채운 허위가 역겹다면서 스스로 늘 도망치고 가장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던 브릭에 던지는 마가렛의 거짓말은 도발인 동시에 마지막 구원의 손길이다. 

 

지금까지처럼 욕실로 도망가고 술로 회피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본질과 자아를 올곧게 대면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브릭은 선택을 한다.

 

20171016Tc_Cat on a Hot Tin Roof_104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중 왼쪽부터 메이 김지원, 마가렛 우정원, 구퍼 오민석(사진제공=예술의전당)

 

마가렛의 항변처럼 “노력하면 가능한 거짓말.” 임신으로 표현됐지만 새 생명이 자라는 그 희망은 모두가 ‘뜨거운 양철지붕 위 고양이처럼’ 팔딱거리고 안달복달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 말이 진실이면 진짜 웃긴다.”

기울어져 덩그러니 떠 있는 듯한 집, 사랑을 말하는 빅마마와 마가렛에 빅대디와 브릭이 극 초반과 후반에 외치는 이 말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는 건 그 말이 진실이길 바라는 인물들의 조각같은 희망이 만져지기 때문이다. 술 취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아도 ‘클릭’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팔딱거리며 살아가는 ‘뜨거운 양철지붕 위 고양이’처럼.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