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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만하면 신나는 인생 아닌가요?" 일흔에 데뷔 가수 송화의 '인생 행복론'

72살의 나이에 지역행사와 봉사활동으로 가수 인생 펼쳐
소나무의 꽃처럼 귀하다는 예명 '송화'라 지어

입력 2017-11-10 07:00
신문게재 2017-11-10 13면

지난해 국민 예능 MBC ‘무한도전’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가수 김애란은 ‘~라고 전해라’라는 재치있는 후렴구로 ‘백세인생’을 논했다. 가수 송화로 활동 중인 김정자(72)씨 역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프로가수에 도전해 올해로 데뷔 3년차를 맞았다. 여대에서 약학과를 전공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4남매를 출가시키며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왔던 그에게 가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인생을 사는 기쁨이자 원동력이다.


◇평생 무뚝뚝했던 남편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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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무대에서 공연중인 가수 송화.(사진=본인제공)

서울 사대문 안에서 곱게만 자란 김씨의 어린시절은 풍족함 그 자체였다. 온실 속 화초로 자라서일까. 거침없고 생활력 강한 경상도 남자에 반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내리 1남 3녀를 낳았다.


신혼시절의 고생을 제외하고 남편은 수십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으로 ‘사모님’ 소리를 듣게 해줬다. 무뚝뚝하고 잔정은 없었지만 듬직한 남편이었다. 아이들 역시 부족함 없이 키우고 이제 막 성인이 되어 가던 찰나 시대를 앞선 눈으로 해외 사업을 추진하던 남편의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생애 첫 빈곤의 시작이었다. 

“사채업자부터 온갖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남편은 옆에 없었어요. 큰애가 대학 들어가고 이제 곧 줄줄이 돈 들어갈 일만 남았는데 막막했죠. 애들 앞으로 집이 한채씩 있었는데 순식간에 다 날아가더라고요. 분노와 원망을 넘어 우울함이 극심했는데 어디 아플 겨를이나 있나요. 그때 막내가 중학생이어서 일단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세월은 흘러 IMF가 터지고 리먼 브러더스 사태부터 전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라 제 밥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돈이 풍족하진 않았어도 떳떳하게 빚도 조금씩 갚으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호사스런 취미활동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조금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노래교실에 가 한 시간씩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김씨는 “어느날 남편이 ‘한평생 고생만 시켰는데 좋아하는 노래 실컷 불러라. 이 참에 가수 데뷔를 하자’더라”면서 “처음엔 웃고 넘겼는데 진지하게 가수 등록 협회도 알아보고 조건이나 부가 서류까지 준비하는 걸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고 고백했다. 젊은 시절부터 뭐든 자기 위주였던 남편의 마음을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가수가 됐다.


◇험난하고 힘든 길, 나이 많다고 포기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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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쉬는 시간 동료들과 즐거운 한 때. (사진=본인제공)

 

지금은 어엿한 사단법인 한국대중예술진흥협회의 가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1차 심사를 거쳐 2차로 가요제 상을 받아야 정식 가수로 인정받을 수 있기에 젊은 세대와의 경쟁은 필수였다. 기본 발성과 가창력을 보는 1차와 달리 가요제가 많이 열리는 가을 시즌을 위해서는 당장 전문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스로 해보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준비기간이 길지 않았어요. 처음 준비한 게 여름이어서 길어야 3개월이었죠. 남들이 10번을 부를 때 저는 100번 부른다는 생각으로 도전했어요. 분명 쉬울 거란 생각은 안했기에 힘들고 고단해도 버텼죠. 사실 무대 위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면 제 주름도 서글퍼지고 위축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기죽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렸어요. 데뷔곡인 김연자의 ‘사랑님’은 1000번은 부른 것 같아요.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고 지금은 지역 축제에도 초청받고 있답니다.”

예명 송화도 가수협회단장이 직접 붙여준 이름이다. 60년마다 피는 소나무 꽃처럼 귀한 존재가 되라는 뜻이란다. 그렇다고 우아하게 가수활동만 즐긴 것은 아니다. 김씨 역시 맞벌이 딸을 대신해 낮에는 손자를 봐주기도 하고 틈틈히 집안일을 하며 평범한 노년의 삶을 병행 중이다. 하지만 격주로 정해져 있는 봉사활동과 가수들끼리의 정기모임, 각종 지역 행사들은 빠뜨리지 않는 프로근성을 자랑한다. 

“부모님이 물려준 건강 체력과 체형이 나이가 들수록 감사하죠. 아직 드레스를 소화할 만큼 근육도 있어요.(웃음) 사실 노래 암기나 정열, 무대 포퍼먼스는 노력하면 다 돼요.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죠. 데뷔 후 무대에 안 세워주는 사람도 많은데 지금처럼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건 이 일을 즐기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덕분입니다.”


◇무대위의 환희, 봉사로 갚으며 살아갈 터

가수 송화
가수협회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위해 연습중인 모습.(사진=본인제공)

유튜브에 ‘가수 송화’를 치면 데뷔 무대부터 최근의 활동까지 영상이 제법 된다. 배호 가요제를 비롯해 각종 행사를 배경으로 한 영상들을 보면 한 가수의 성장기를 보듯 생생함에 웃음이 먼저 나온다. 그는 “3년 정도 지난 지금부터 올렸으면 저런 흑역사는 없었을텐데 말이죠”라며 젊은 세대들의 언어구사까지 자유자재다. 자신과 다르다고 틀렸다 훈계하지 않고 어울리려고 마음을 여는 모습에서 세월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격주로 가는 양로원에 위문공연을 가면 제가 유명한 가수가 아니어도 손잡아주고 좋아해주세요. 제 미래를 보는 것 같고 남일 같지 않으니 저 역시 그냥 노래만 부르게 되지는 않거든요. 근황도 묻고 취향도 공유하며 친구로 지내요. 봉사하러 갔지만 제가 얻는 게 더 많죠. 얼마전 축제에서는 후배들이 무대가 끝나니 꽃다발을 주더라고요. 그때의 감동이란….”

송화는 여태까지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을 항상 해 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가수가 되고부터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도 길지만 앞으로 잘 살아야 겠다는 느낌이 부쩍 든단다. 그래서 가수로서의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가창력은 기본이지만 무대매너야말로 가수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며 연신 강조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타고난 예술가의 모습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니 성공해서 행복하고 아니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게 성공이더라고요. 이만하면 신나는 인생 아닌가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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