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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정국 지위 ‘흔들’ … 사람 물어뜯는 ‘좀비마약’ 공포

서울 주택가서 환각 상태서 사람 물어뜯는 사고 … 배스솔트·플래카 등 신종마약 출현

입력 2017-12-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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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마약’으로도 불리는 배스솔트는 목욕용 소금과 생김새가 비슷한데 코카인이나 엑스터시보다 환각효과가 10배 높고 효과가 수 일간 지속된다.

지난달 10일 새벽 3시경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서 한 괴한이 유리창을 깨고 가정집에 침입해 입으로 네 가족의 목과 다리 등을 물어뜯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한 남자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서 있었는데 눈을 딱 째려 보더니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해 내 목덜미를 물었다”며 “영화 부산행에 나오닌 좀비의 모습과 같은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들은 살점이 뜯겨 나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집 밖으로 겨우 탈출한 8세 아들이 구조요청을 해 경찰이 출동했고, 경찰은 난동을 부리는 남성을 제압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체포 과정을 지켜본 목격자들은 “가해자가 옷을 벗고 괴성을 지르며 발악하는 모습이 마치 약이나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고 했다.
경찰 조사결과 가해자는 베트남에서 여행 온 관광객으로 확인됐다. 베트남 국적의 A 씨는 경찰 수사에서 “누군가 머릿속에서 시켰다. 들어가면 죄를 사하여 준다고 했다” 등 이상한 말들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좀비마약’ 또는 ‘배스솔트(bath salt)’로 불리는 신종마약을 투약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경찰은 범인은 조현병일 뿐 마약을 복용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며 부인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마약류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SBS ‘그것이 알고싶다’ 게시판엔 좀비마약에 대해 방송해달라는 요청글이 쇄도하기도 했다.


목욕용 소금과 생김새가 비슷해 배스솔트로 불리는 이 마약은 환각물질인 ‘메틸렌디옥시피로발레론’(Methylenedioxypyrovalerone, MDPV)이 주성분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따르면 환각 효과가 코카인이나 엑스터시보다 10배 높고 효과가 수 일간 지속된다. 미국에선 마취제로 일부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2012년 6월 정식 마약류로 지정돼 소지·소유·사용·관리·수출입·제조·매매·알선·수수 행위가 전면 금지된 상태다.


베스솔트를 과다 투약하면 환각 증상과 함께 몸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폭력적 행동이 나타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환각 상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눈이 풀린 채 사지가 뒤틀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주변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이 서양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좀비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좀비마약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중독되면 신부전, 과다편집증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이 마약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선 좀비마약에 취한 남성이 노숙자의 눈, 코, 입 등을 뜯어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다른 중독 여성은 자신의 아들을 때리고 강아지를 목 졸라 죽인 뒤 발가벗은 채 거리를 뛰어다니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보였다.


또 미국에선 작년부터 ‘악마의 마약’으로 불리는 ‘플래카(Flakka)’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국에서 주로 제조되는 플래카는 중동 지역에서 애용되는 흥분제인 ‘카트(Khat)’와 동물마취제를 합성해 만든 신종마약으로 환각성이 매우 강하다. 혈압이 260까지 치솟을 만큼 자극이 강하고 며칠 동안 환각상태가 지속되는데 한번 중독되면 치료가 어렵다.
플래카 한 봉지는 5달러(6000원) 정도에 불과해 노숙자나 빈민층이 많이 구입한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선 플래카를 유통 및 복용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2011년 1건에 그쳤지만 2015년에는 2000건이 보고될 정도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에선 합성대마초 ‘스파이스(Spice)’로 인한 사건·사고가 증가하는 추세다. 스파이스의 정식 명칭은 ‘JWH-018’로 마른 건초에 방향제 원료를 혼합해 담배 형태로 제조한 흡연용 환각제다. 대마초보다 환각 효과가 5배 강하고 심하면 의식불명에 이를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09년 7월 마약류로 지정됐다. 올해 초에는 스파이스를 피운 불법체류자와 이들에게 마약류를 공급한 외국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마약 같은 향정신성물질은 화학구조가 뇌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과 비슷한 모양새를 띠어 뇌 신경세포인 뉴런에 쉽게 달라붙는다. 이럴 경우 뉴런이 정상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뇌에 ‘비정상적인 메시지’가 전달됨으로써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고 환각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가로 분류돼왔지만 최근 마약사범 검거 건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최근 대검찰청이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 수는 1만4214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약사범은 2012년 9255명에서 2013년 9764명, 2014년 9742명, 2015년 1만1916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엔 상반기인 6월까지만 7554명이 마약 관련 혐의로 적발돼 전체 검거 건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필로폰(메트암페타민) 등 주요 마약류 압수량도 지난해 117㎏로 전년 대비 41.8%나 늘었다.


지역별로는 5년 반 동안 적발된 마약사범 6만2445명 중 인천·경기지역이 1만7784명(28.5%)으로 비율이 가장 높았고 서울이 1만2316명(19.7%), 부산이 6647명(10.6%)으로 뒤를 이었다.
밀수입처는 중국이 243건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54건, 네덜란드 49건 순이었다. 밀수입하다가 적발된 마약 중에는 필로폰(167㎏)과 대마초(23㎏)가 전체의 86.7%를 차지했다.


국내 마약 유입이 급증한 것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활성화로 개인간 마약 밀매가 용이해진 데 따른 결과다.  인터넷·모바일(SNS 기타) 등 신종 유통경로를 통한 마약범죄 연루자 수는 2012년 86명에서 지난해 1120명으로 13배 증가했다. 올해는 8월까지 적발된 인원도 902명으로 나타났다. 오프라인에선 서울 용산 이태원지구대 뒤쪽 나이지리아 거리가 마약 거래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윤상직 의원은 “마약사범 검거 인원이 6만명을 넘었고 밀수입 양과 건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어 ‘마약 청정국’ 지위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며 “유관기관과 공조를 강화하고 고도화된 마약 거래방식에 대한 다양한 수사기법을 연구해 범죄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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