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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연대보증’ 폐지 수순 … 의료계 미수금 걱정 ‘기우’일까

권익위 “진료비 미납·보증인 작성 연관성 미미” … 병원계 “제도적 안전장치 사라져” 우려

입력 2017-12-27 18:13   수정 2017-12-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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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입원약정서에 연대 보증인을 기재할 의무는 없으며, 연대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의료법 제15조 위반에 해당된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희귀질환인 다발성근육염과 류마티스질환을 앓던 L 씨는 지난해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입원거부를 당했다. 두 차례의 외래진료와 혈액검사 후 담당의사로부터 입원을 권유받아 입원수속을 밟던 중 원무과로부터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수급권자로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는 독거인이었다. 법적보호자인 가족은 물론 입원 보호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지인이 없는 상태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병원에서 진료비를 연체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소용 없었다.


최근 몇년 간 일부 대학병원들이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인 의료급여 환자의 입원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병원 입원약정서의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5일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폐지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고, 앞서 지난 1일엔 국회 보건복지위원 최도자 의원(국민의당)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환자·보호자에게 진료비를 이유로 연대보증인을 세울 수 없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연대보증인제도 폐지가 가시화되자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일선 의료기관들은 미수금이 발생할 경우 이를 회수할 제도적 장치가 사라져 모든 부담을 의료인이 지게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병원 입원시 작성하는 입원약정서엔 연대보증인이 입원 등과 관련해 발생하는 진료비 등 일체의 채무를 입원환자와 연대해 지불할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에 환자단체 등은 입원시 연대보증인 요구가 사회적 취약계층의 치료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해왔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수술동의서나 입원약정서에 연대보증인을 요구할 수 없도록 표준약관을 개정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여전히 상당수 병원이 연대보증인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공공병원 55곳과 민간 종합병원 63곳 등 총 118개 병원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85개 병원(72%)에서 입원약정서에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둔 34개 공공병원 중 33곳이 실제 입원환자로부터 연대보증인 인적사항을 제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병원표준약관’에 따르면 환자가 입원약정서에 연대 보증인을 기재할 의무는 없다. 또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연대보증인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당한 진료거부행위’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연대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의료법 제15조 위반에 해당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대보증인 제도는 내년 하반기가 되면 실질적인 폐지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제도의 폐지를 보건복지부에 권고한 데다 현 정부의 정책기조상 관철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공공병원은 내년 3월까지 입원약정서에서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삭제하고, 민간병원은 내년 6월까지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자율적으로 삭제하거나 선택사항임을 명시해야 한다.


연대보증인 작성 폐지를 찬성하는 측은 연대보증인 작성으로 미수금이 줄었다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작성란 삭제 후 미납률이 감소한 곳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등 13개 병원의 공공병원의 병원비 미납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연대보증인 작성란 삭제 전후 미납률에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감소한 곳이 많았다. 미납률이 증가한 경우에도 증가율이 1% 미만에 그쳐 연대보증인과 미납률간 상관관계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충북대병원은 작성란 삭제 전 3개월간 병원비 미납률이 5.19%였는데, 삭제 후 3개월간 4.28%로 오히려 감소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권익위에 힘을 보탰다. 이달 초 연대보증인을 세울 수 없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최도자 의원은 “병원이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행위는 환자의 정당한 진료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환자의 권리가 강화되고 부당한 진료계약 체결 관행이 근절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병원들은 연대보증인 작성 폐지에 조금씩 동참하는 분위기다. 삼성서울병원이 지난 1월 병원 최초로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없앤 새로운 입퇴원동의서를 도입했고, 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보라매병원 등 공공병원들도 지난 3월부터 연대보증인 작성란을 없앴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은 중소병원과 의원급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동네의원 중 일부는 미수금이 한두 건만 발생해도 인건비 부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금고 사정이 열악하다”며 “경기 침체로 병원비를 내지 않고 버티거나 자취를 감추는 환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체납된 치료비를 정당하게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연대보증마저 사라진다면 의료기관의 부담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일부 병원은 10만원 이하 소액 진료비조차 못내는 환자의 비율이 20∼30%에 달한다”며 “보증인 제도가 없다면 입원시 연락처를 허위 기재하거나, 환자가 야간에 사라질 경우 미수금을 받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수금 발생을 막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무조건 제거하기보다는 정부예산으로 의료급여 환자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검토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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