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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정치의 계절 오기 전 해야 할 것

입력 2017-12-28 15:07
신문게재 2017-12-29 23면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적폐청산’이 시대의 화두가 됐음은 분명한 듯하다. 굳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송년회에서 사람들은 적폐청산을 얘기한다. 교수신문이 전국의 대학교수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이 꼽혔다.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라는 뜻이다. 적폐청산의 연장 선상이다. 적폐청산이란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언급한다. 권력에 의한 정치보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당분간 잦아들지 않을,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잠재력을 가진 의제다.


며칠 있으면 현 정권은 햇수로 집권 2년 차가 된다. 촛불의 힘으로 일찍 탄생하면서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준비가 부족한 정권의 혼란과 실수, 대중추수주의(Populism)와 칼춤추기식 개혁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현재까지는 대과가 없다는 것을 여론이 방증해주고 있고, 경제상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운이 좋은 정권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이다. 적당하게 호의적인 평가의 이면에는 ‘생각보다 뭔가를 한 게 없는 정권’이라는 평가도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마련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있다. 정치의 계절에는 정치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개헌이라는 국가지배구조 문제가 걸려있으니 그 흡입력이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겠다. 또한 정치권의 지방선거를 향한 각개약진과 이합집산은 이미 시작됐다. 이 블랙홀이 오기 전에 ‘적폐청산’의 생산적 결과물이 경제 분야에서 2~3개는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인적청산이 아니라 제도개혁이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개혁돼야 할 제도는 위계질서(Hierarchy)의 상층부를 보호하는 제도(기업지배구조 등), 위계질서의 하층부에게 소위 말해 빨대를 꽂는 제도(하도급, 기술탈취 등)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경제학계에는 ‘행운의 반전(Reversal of Fortune)’이란 제목의 논문이 유행했다. 1500년대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무굴, 아스텍, 잉카 등과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북미, 뉴질랜드, 호주 등의 현재를 비교해보면 정확히 역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일까. 저자들은 위의 나라들을 지배했던 유럽인들이 어떤 제도를 채택했는가에서 답을 찾았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곳은 정부와 지배 엘리트 등이 국민 대다수로부터 뭔가를 뽑아내기 위한 제도를 유지했고,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곳은 국민 대다수를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반전을 이끌어냈다.

한국은 18세기 말, 19세기 초 산업화 시대의 북미, 뉴질랜드, 호주가 아니다. 이미 근대화와 산업화를 경험한 나라다. 우리가 얻어야 할 지혜는 제도의 변화가 반전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직관이다. 우리는 우리에 맞는 반전과 재도약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다시 우리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시장질서의 확립이다. 청와대와 행정부가 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법무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공정위의 갑을 문제 개선을 위한 공정거래 관련 법률, 중소벤처부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 해결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다양한 계층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뛰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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