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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2심 돌아보니…차고 넘친다던 증거가 "뭐 였더라", "그거 있잖아"

특검, 정황보면 '독대', 만났으니 '청탁'
이 부회장 측 '청탁 대가' 증거는 없고 '정경유착' 프레임만 있다

입력 2018-01-12 13:41   수정 2018-01-12 13:44

법정 향하는 이재용<YONHAP NO-083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박영수 특별검사의 말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건 재판은 수많은 화제와 사회적 논란을 낳고 다음달 5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만 남았다.

쟁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승마 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이 대가성인지 여부다. 특검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하며 삼성물산 합병을 비롯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지원하는 대가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제공 등에 합의했다고 본다. 특검이 주장하는 건 경영권 승계의 대가로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뇌물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검의 추정일뿐이다. 이번 재판은 형사소송법의 잣대로 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와 증언이 충분하냐 아니냐는 것이지,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사건 등 과거의 경영권 승계 논란이나 가족 승계와 전문경영인 체제중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이냐를 판단하는 재판이 아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입증 책임은 피고인이 아닌 검사에게 있다. 대법원 판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을 근거로 이 부회장 항소심의 결정적 장면들을 다시 살펴본다.

◇ 정황보면 ‘독대’, 만났으니 ‘청탁’?

특검팀은 항소심 막판 공소장 변경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이른바 ‘0차 독대’를 추가했다. 첫 번째 독대로 알려졌던 2014년 9월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이 열리기 사흘 전인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 근거는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의 증언이었다. 지난달 18일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비서관은 “2014년 11월 말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가 터지기 이전인 그해 하반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기업 총수들과의 독대가 이어졌고 이때 이 부회장도 한 번 있었다”고 진술했다. 날짜를 못박지는 않았지만 1심의 증거였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보좌관이었던 김건훈 전 청와대 행정관의 메모가 근거가 돼 2014년 9월12일이 이른바 0차 독대일이 됐다. 다음은 ’0차 독대‘에 관해 특검 측 주장과 이 부회장 측 반론을 정리한 내용이다.



▷특검 측 주장
=2014년 9월12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있었다는 김건훈의 메모가 있다. 이날 안봉근은 피고인에게 명함을 받아 휴대폰 번호를 저장했다.

▷정황증거① 김건훈 메모
=2016년 10월 작성한 일지에 기록된 2014년 9월12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일자.

▶1심 증인신문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메모에는 등장하지 않는 두산그룹이 김 전 비서관의 메모에 등장하는데.”
“독대 이후 2년여가 지난 후 문서를 작성해 시점 등에 대해 일부 오류가 있다.”


▷정황증거② 안봉근 증언
=2014년 11월 말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박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독대가 이어졌고 이때 이 부회장도 만났다.

▶2심 증인신문
“검찰이 메모나 휴대전화 내용 등을 보여주자 삼성도 단독 면담을 했나보다 추측성 진술을 한 것 아닌가.”
“날짜 기억 못하지만 안내한 기억은 있다.”
“당시 명함에 전화번호가 기재돼 있었던 게 맞나.”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 주장
=내 명함엔 휴대폰 번호가 없다. 청와대 안가에 가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건 두 번뿐이다. 그걸 기억 못하면 적절치 못한 표현이지만 내가 치매다. 

 

[브릿지포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선고 재판  TV시청
25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선고 재판에서 징역5년을 선고한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2017.08.25. 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이처럼 특검이 제시한 정황증거의 핵심은 모두 증인들의 기억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증인들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과 공방은 증거에 의한 판단을 흐려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순환출자·금융지주회사 등 개별적 현안에 대해선 청탁을 인정하지 않고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해선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부분으로 보면 청탁과 대가의 증거가 없지만 ’큰 그림‘을 보면 뇌물이 성립한다는 논리다. 특검이 제시한 ’승계작업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특검은 범행 동기와 관련해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뒤 경영권 공백과 3세 승계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한 가운데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3차례 단독 면담에서 모두 경영권 승계 논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증인들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현장을 함께 했던 목격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그의 비서관인 김건훈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실 행정관,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모두 독대 자리에는 배석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당시 이들이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첩에 메모한 내용이 곧 대화 내용이라고 동일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안종범 수첩을 특검에 넘긴 김건훈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실 행정관 역시 1심 증인으로 나와 “독대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 내용은 알지 못한다”면서 “독대 이후 2년여가 지난 후 문서를 작성해 시점 등에 대해 일부 오류가 있다”고 털어놨다. 작성자 스스로도 메모의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이 부회장 측도 “김건훈은 2014년 10월15일에 두산그룹 총수와 면담한다고 적어놨지만 이 시기는 대통령이 이탈리아 순방을 간 시기라 청와대 안가에서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고, 롯데 독대 날짜 부분에는 물음표도 등장한다”며 메모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의심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결정적으로 특검 증인들 중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현장에 함께 있던 목격자는 단 한사람도 없다”며 “인간의 기억은 비디오 녹화와 달리 암시와 유도신문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특히 독대 이후 진술사이의 시간이 2년이나 지난점, 증인들 스스로 증언에 확신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의 진술 역시 재판부가 ’의심의 눈‘으로 봐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빙성이 의심되는 일부 확인되지 않은 증언을 토대로 이번 사건의 전체를 재단하는 건 단순화의 오류라는 의미다.

◇ ’청탁 대가‘ 증거는 없고 ’정경유착‘ 프레임만 있다

사실 특검은 애초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박 대통령이 대기업의 현안을 들어주는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을 약속받은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며 이 부회장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뇌물죄의 핵심은 ’대가성‘이다. 이 때문에 특검은 삼성의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지원의 대가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췄다. 특검이 의심하는 대가성 거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합병 찬성 압력을 가한 대가로 삼성 측이 최씨 일가를 지원했다는 것이 특검의 그림이었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특검은 정부 반대로 무산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 11개의 개별현안이 추가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만나 삼성의 개별현안 문제 해결을 부탁하고 대가로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과 재단 출연을 약속했다는 구체적 증거·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이 오고 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전력하지 않고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등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사건의 증인들을 찾았다. 그리고 이 부회장 측 주장대로 ‘경영권 승계’와 ‘정경유착’이라는 표면적인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으로 관점을 달리해 이번 사건을 수사했다.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바라보면 그가 한 다른 행동까지 옳지 않다고 보게 되는 심리를 이용해 편견과 선입견을 심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특검은 공소장에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기재해 이 부회장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기업사회에서 순조로운 경영권 이양을 위해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직무 책임이자 이사회의 최우선과제”라며 “하지만 특검팀은 동전을 위쪽으로 던지고 사람들의 눈이 동전을 향했을 때 아래쪽에서 물건을 바꿔치기 하는 마술사의 ‘미스디렉션’처럼 경영권 승계와 정경유착으로 재판부의 시선을 쏠리게 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감췄다”고 말했다.

법조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특검이 제시한 승계작업 프레임을 재판부가 아무런 의심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이 부회장을 유죄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쉽다”며 “하지만 이는 약간의 트릭 즉, ‘그래, 이재용은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려고 할 게 분명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총수 일가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한 조직이야. 과거에도 그랬잖아’ 등의 선입견이 더해진 결과로, 이런 편견이 없다면 대통령 독대와 경영권 승계 청탁을 바로 연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매끄럽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설사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당시 삼성의 경영권 승계 현안이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사실 때문에 곧바로 이 부회장이 청탁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봉철 기자 janu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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