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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행 성추문으로 #미투 캠페인 동참한 공연계…생존, 상식과 인권에 대한 자각과 자정노력이 간절하다

입력 2018-02-13 14:00   수정 2018-02-1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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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킬빌’ ‘스모크’ ‘스크림’ ‘벨벳 골드마인’ ‘킹스 스피치’ 등의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이 저지른 30년 동안의 성추문 폭로, 그로 인한 스타들의 ‘미투’(나도 당했다 #MeToo) 캠페인 확산 등으로 할리우드가 먼저 술렁였다. 


주연배우 캐빈 스페이시 성추문으로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 제작을 전면 무효화했고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40여년간 이끌어 온 마에스트로 제임스 레바인은 성추문으로 정직 처분됐다.

서지현·임은정 검사, 최영미 시인, 전직기자 등의 폭로와 이현주 감독의 동성 유사강간행위 등으로 민낯을 드러낸 법조계, 문단, 언론계, 영화계 등 전방위적인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한민국 역시 들썩이고 있다.



대부분의 성(性) 관련 문제가 그렇지만 최근 불거진 이슈의 특징은 우월적 지위에 의한 가해라는 것이다. 인사 및 캐스팅 불이익, 지원 및 추천 배제 등으로 이어지는 보복성 후속 조치로 피해자임에도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오래도록 곪을 대로 곪았던 것들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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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명행은 성추행 문제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하차했다.(사진제공=악어컴퍼니)

그리고 11일 배우 이명행이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중도하차한 원인도 성추문이었다.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명행이 작품에서 하차한 직접적 원인이 됐고 사실확인이 가능한 것은 지난 9월 두산아트센터의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성기웅 작·연출의 ‘20세기 건담기 建談記’ 출연 당시의 성추행 사건이다.

이명행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연기과 출신으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홍도’ ‘아리랑’ 등 고선웅 작·연출의 극공작소 마방진 창단멤버기도 하다.

 

그간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 등의 역할을 주로 연기했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예술계의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항거해 광화문에 세웠던 광장극장 블랙텐트 극장장이자 극단 고래 대표 이해성 연출의 ‘불량청년’에도 출연하는 등 비교적 진보적인 행보를 보인 배우여서 이번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명행은 소속사 한엔터테인먼트 공식 페이스북에 “과거 제가 잘못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라며 “저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게 특히 성적 불쾌감과 고통을 느꼈을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잘못된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후회스럽고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라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거미여인의 키스’ 제작사인 악어컴퍼니 역시 공식 SNS를 통해 “캐스팅 진행과정에서 악어컴퍼니는 최근에 불거진 문제에 대한 어떤 사실도 사전에 알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단체로부터 그러한 사실에 대한 어떤 내용증명 자료나 연락도 일절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며 “일련의 모든 상황을 사전에 주의 깊게 파악하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이번 사건은 특정 극장의 내용증명, 해당 배우 출연 및 출입금지 조치를 통보한 극장, 또 다른 피해 사례 등까지 더해져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더불어 또 다른 성추문 배우, 연출 등에 대한 폭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관련해 소속사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고 언급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는 연락이 안되고 있는 상태다. ‘20세기 건담기’ 직후 출연작인 ‘발렌타인 데이’로 이명행과 처음 작업을 진행한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초 섭외 했고 두산아트센터에서의 문제는 연습 중이던 11월 말쯤 한 스태프를 통해 전해 들었다”며 “피해자나 극장 쪽에 확인할 수도, 진위여부를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배우에게 직접 전화를 해 사건 정황을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9월에 그런 일이 있었고 곧 두산아트센터 주최로 배우, 피해자 등의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밝히기 위한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후 피해자가 직접 만나는 것을 원치 않아 극장(두산아트센터) 측을 통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는 회의결과를 배우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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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발렌타인 데이’의 이명행(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 확인과정이나 성추문 사건에 대해 “내부에서도 최소한의 인원만 알고 있었다”고 전한 이 관계자는 “계약서에 ‘성폭력’이라는 용어 자체는 없지만 포괄적으로 심각하게 예술의전당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공연을 저해하는 경우 본인이 책임지고 공연을 취소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 “극장이나 제작사 간 확인전화는 없었으며 예술의전당에서 이명행 배우에 대해 출연금지 조치를 내렸다거나 반발하는 해당 작품(발렌타인 데이) 여배우들을 설득해 공연을 강행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이명행에 출연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알려진 또 다른 극장인 국립극단 관계자에 따르면 “출연 금지 리스트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계약서 상에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계약해지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배우나 연출에 대한 내부기록이나 방침이 존재한다.” 

 

이 계약서 조항에 대해 국립극단과 작업 중이던 한 연출가가 성추행 문제를 일으켜 연출금지 처분을 하면서 마련한 사후조치라고 전한 이 관계자는 “이명행 배우의 경우 사건으로 인한 내부기록이나 방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SNS를 통해 ‘미투’ 해시태그를 단 피해자들이 이명행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에 의한 피해 사실들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공연계도 할리우드나 영화계, 법조계, 문학계, 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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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가해자는 물론 암묵적 동의로 대응한 이들까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성폭력 사건은 여러 모로 다루기도, 판단하기도 까다로운 사안이다. 피해자 스스로가 나서지 않으면 함부로 언급조차 쉽지 않으며 나서지 않는 피해자를 비난할 수만도 없는 이슈이기도 하다. 가해자에게는 관대하면서 피해자를 다그치거나 자극적인 이슈거리로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견고하고 넘기 어려운 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막으면서 상습적으로 성범죄가 발생하고 폐습이 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사건들이 더욱 참담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면 또다시 덮고 넘어가는 관행이 적용됐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재경 변호사·건대교수는 “각 기관마다 성폭력에 대응할 센터가 전무하거나 있다 하더라도 그 역할이 유명무실할 정도로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작금의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했다”며 “피해자의 권익 및 보안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외부 감사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법적 소견을 밝혔다.

이어 “그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내부 감독자의 직무유기 및 방치로 수많은 성폭력 사범들이 조직적으로 은폐되던 과거 폐습을 고려할 때 내부의 철저한 감사는 물론 외부의 통합적 감사기관 신설 및 전략적 운용, 나아가 성폭력 대비 교육 및 홍보를 지속적으로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공연 관계자는 “작품 시작 전이나 공연 중에 배우들에게 성 관련 교육을 꼭 하려고 한다”는 특정 작가·연출의 사례를 들며 “이같은 자각과 자정 노력이 중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선배 샴푸냄새 좋네요”라는 말에 “내가 언제는 머리 안감고 다녔냐? 이것도 성추행이야 꺼져”라고 대꾸한 여자. “너 다리 예쁘다”라는 부장의 말에 민망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한 신입사원. 전자는 선배였기에 즉시 시정할 수 있었고 후자는 기분이 나빠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부장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이 두 사례의 차이에서 현재 불거진 어마무시한 성폭력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폭력은 남녀의 전쟁도, 다른 사람의 일도 아니다. 지난해 공연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이를 해결해 달라 독촉하면 캐스팅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는 임금체불과 맥을 같이 하는 생존의 문제다. 피해자가 사건 즉시 당당하게 도움이나 처벌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들의 피해에 제대로 대책을 함께 논의하고 공론화했다면 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상식 그리고 인권의 문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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