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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그런 사랑이 있었다…멈춰버린 회중시계처럼 ‘나라타주’

[히든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영화 '나라타주', 마츠모토 준, 아리무라 카스미, 사카구치 켄타로 주연

입력 2018-03-12 07:00   수정 2018-03-12 08:50
신문게재 2018-03-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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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당신과 함께 있으면 너무 괴롭지만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새삼 지리멸렬하다. 함께할 수도 그렇다고 밀어낼 수도 없는 사랑은. 그 사랑은 오래도록 서로의 삶을 지배하고 시간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고’ ‘리버스 엣지’ 등을 연출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나라타주’(ナラタ―ジュ)는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고교 연극부 교사 하야마 타카시(마츠모토 준), 깊은 절망과 고독 속에서 자신을 건져 올린 그를 오래도록 올곧게 사랑하는 제자 이즈미 쿠도(아리무라 카스미), 그런 그녀가 잡힐 듯 잡히지 않아 괴로운 오노 레이지(사카구치 켄타로)의 모든 것이 망가져도 좋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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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2014년 드라마 ‘실연 쇼콜라티에’에서 호흡을 맞췄던 그룹 아라시(오노 사토시·사쿠라이 쇼·아이바 마사키·니노미야 카즈나리·마츠모토 준) 멤버 마츠모토 준과 아리무라 카스미, ‘골든 오케스트라’ ‘너와 100번째 사랑’, 일본판 ‘시그널’ 등으로 급부상한 사카구치 켄타로가 엮어 가는 이야기는 일본 내 누적판매량 60만부를 기록한 시마모토 리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한다. 


‘나라타주’는 제목이 곧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나라타주’는 내레이션(Narration)과 몽타주(Montage)의 합성어로 장면 밖 목소리를 따라 시간, 장소, 시점 등이 전환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기법이다. 

 

함께해도, 함께하지 못해도 괴롭고 힘겨운, 그런데도 도무지 포기가 되지 않는 사랑을 이어가는 쿠도와 그 대상 하야마. 알 듯 모를 듯, 이해할 듯 그렇지 못할 듯한 감정이나 사연은 오래된 나라타주 기법 영화들에 빗댄다.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감독의 1981년작 ‘이웃집 여인’(La Femme D‘A Cote), 상처 많은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따르는 사춘기 딸의 여정을 담은 빅토르 에리세(Victor Erice)의 ‘남쪽’(El Sur, 1982),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부운’(한국 개봉명 흐트러진 구름, 1967), ‘흐르다’(한국 개봉명 흐트러지다, 1964),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등 쿠도와 하야마가 함께 관람하는 영화는 저마다의 힘겹고 폭풍 같은 감정을 절제해 담담하게 풀어내는 형식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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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남자의 옆집에 이사 온 옛 연인(이웃집 여인),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 유가족(부운), 남편을 잃은 지 오래된 여인과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동생(흐르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바의 마담과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등 금기시된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극 중 하야마, 쿠도, 오노를 닮았다.

 

오마주한 작품들처럼 ‘나라타주’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선뜻 사랑이라,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관계들로 인해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더구나 한없이 가라앉는 분위기의 영화는 2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으로 그 지루함과 답답함을 배가시키는 모험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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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극 중 영화 ‘남쪽’에 대해 “딸이 아버지와의 기억을 더듬는 얘기 속 침묵이 좋았다”고 했던 하야마는 어린 제자에게 사랑한다 말하지도, 온전히 밀어내지도 못하고 여지를 준다. 

 

마음의 병이 깊어진 아내에 무심했던 자책과 당시 아내의 눈빛을 닮은 제자 하야마에 대한 감정이 그를 침묵으로 내몰면서도 자꾸만 그녀 쪽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쿠도는 그런 하야마에 대한 사랑을 끊어내지도, 새로 다가온 오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런 쿠도에 오노는 어떻게든 붙잡으려 집착하고 감시하는가 하면 마음과는 다르게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마냥 답답하기만 한 세 사람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차근차근 설명하거나 개연성을 만들어가기 보다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장면들로 꾸리는 데 공을 들인 기법 역시 극 중 등장하는 영화들을 닮았다.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과 잔잔하다 못해 지루하고 답답한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자꾸만 발길을 붙잡는 그림처럼 장면들을 곱씹고 또 곱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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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나만 계속 멈춰 있었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려야만 끝날 것 같은, 깨지기 쉬워 뚜껑이 있는 옛날 회중시계를 닮은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래도록 멈춘 줄 알았던 쿠도의, 원래는 하야마의 것이었던 회중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 사랑은 추억이 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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