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 페이스북
  • 검색
  • 전체메뉴

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데스크칼럼] 선거판으로 전락한 주총

입력 2018-03-13 15:17   수정 2018-03-13 15:17
신문게재 2018-03-14 23면

서영백 금융증권부장
서영백 금융증권부장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최근 불거진 영진약품 사태를 보며 든 생각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영진약품은 주총 개최 요건은 충족했지만 감사위원 선임 안건 통과에 필요한 ‘의결권 있는 주식의 25% 이상 찬성’을 충족하지 못했다.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 폐지 이후 의결정족수 미달로 주총에 차질이 생긴 첫 사례다. 시장은 의외로 덤덤했다. 예견된 사태였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은 주총에서 보통결의 요건(전체 주식의 25% 이상 참석, 참석주식의 50% 이상 찬성)을 갖춰야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재무제표를 승인받을 수 있다. 사외이사나 감사 선임이 무산되면 회사는 관리종목 지정에 이어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감사 선임의 경우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때문에 정족수 채우기가 더욱 힘들다. 당장 이번 주총에서 감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들은 초비상이다. 최근 만난 모 상장기업 임원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을 모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기업경영을 정치선거판과 동일시해 과도한 의결정족수를 강제함으로써 발생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주총이 선거판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들린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향후 3년간 516개 상장사가 감사 선임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사태가 매년 주총 때마다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식 보유기간이 짧은 일반 소액주주들은 대부분 시세차익을 위해 주식을 거래하는 만큼, 주주로서 주총에 참석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들 입장에선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 그 자체가 경영에 대한 의사표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식을 보유중인 기업의 경영이나 실적, 배당 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아버리면 된다. 소액주주들이 대주주 등 장기투자자와 비교해 주총 참석이 저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국회와 정부는 이같은 현실은 무시한 채 법적 요건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 놓고 말았다. 이런 법과 규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당장 자본시장법과 상법을 다시 개정하자는 소리가 나온다.

이번 사태는 충분한 보완대책과 여건이 갖춰진 뒤로 섀도보팅 폐지를 연기해달라는 상장사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보완책 마련을 소홀히 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전자투표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정부도 잘 알 것이다.

당장 기업들이 가장 골치아파하는 감사 선임 때의 3%룰을 후유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하거나 없앨 필요가 있다. 섀도보팅제를 다시 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부는 차제에 각각의 주식마다 다른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제 도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다 못해 일정 기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장기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테뉴어 보팅’이라도 검토할 때가 됐다.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 불러온 역효과를 수수방관해선 안될 것이다.

 

서영백 금융증권부장 lastautum@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브릿지경제 핫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