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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마농’, 수백년을 흘러 지금 우리의! “이것은 마농의 이야기”

입력 2018-03-28 18:36

마농
오페라 ‘마농’(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이것은 마농의 이야기!”



국립오페라단의 2018년을 열 첫 작품은 프랑스 오페라 ‘마농’(Manon Lescaut, 4월 5~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다. 18세기 프랑스 작가 아베 프레보(Abbe Prevost)의 자전적 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크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프랑스 대표 작곡가 쥘 마스네(Jules Massenet)의 대표작이다.

한국에 29년만에 공연되는 오페라 ‘마농’은 귀족 출신의 기사 데 그리외 백작(이즈마엘 요리드·국윤종)과 평민 출신의 소녀 마농(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손지혜)의 꿈처럼 짧고 뜨거웠던 삶을 담고 있다.

26일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연습동 공동연습실에서 열린 ‘마농’ 기자회견에 참석한 드라마 트루기 마정화는 “대본을 읽고 흥미로운 대사는 처음 그리고 마지막 데 그리외 품에서 죽기 직전 했던 ‘이것은 마농의 이야기’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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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농’의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마농은 이야기를 전하는 주체로서 존재합니다. ‘햄릿’은 죽기 직전 호레이쇼에게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줘’라고 하지만 ‘마농’은 초연 이래 2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인공 마농이 직접 이야기를 전하죠. 현대인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것이 자기 이야기입니다. 18세기 가진 것도, 영웅적 성취도 없이 세상 밖으로 나간 소녀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움직인 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쉽게 이해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마농의 이야기’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 “극과 긴말하게 공생하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의 항연”

“‘마농’은 프랑스 오페라 코미크에 속합니다. 오페라 코미크는 구체적이고 음악과 극이 긴밀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죠.”

‘마농’의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은 ‘마농’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함부르크 국립극장, 베를린 도이치 오퍼 지휘자를 거쳐 현재 미국 샌 안토니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그는 “음악적 효과는 드라마를 부각시키기도 하고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때로는 말과 내포된 것이 다를 때도 있는데 마스네는 그 위선을 잘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말로 소통하기 힘든 부분은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소통하기도 합니다. ‘마농’에서는 마스네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어요. 감정이 동력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장면 연결도 환성적이죠. 푸치니처럼 아리아 간 연결을 좋아하는 마스네는 박수로 (극이) 끊기는 걸 원치 않아요. 마스네의 ‘마농’은 베리스모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이탈리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쓴다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죠. 마스네의 음악에는 고음을 부르기 위해 잠깐 멈췄다 가는 건 없어요. 이탈리어와 달리 프랑스어는 잘 흘러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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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농’. 왼쪽부터 윤호근 예술감독, 드라마 트루기 마정화, 데 그리외 국윤종, 마농 손지혜, 뱅상 부사르 연출, 지휘 세바스티안 랑 레싱, 마농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 데 그리외 이즈마엘 요르디, 레스코 공병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마농’의 특장점에 대해 소개한 세바스티안은 “여러 스타일이 섞인 음악이다. 마스네는 ‘마농’을 통해 음악적 분위기를 잘 설정했다”며 “마농과 데 그리외는 가난하고 부자지만 구식 세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스네는 네오 바로크 음악으로 이를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코믹 캐릭터는 네오 바로크 음악을 과장해서 보여줍니다. 프랑스 혁명과 연관된 구시대를 잘 표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트럼본을 무겁게 활용했죠. 자유와 혁명, 사랑과 정치 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한데 어우러지며 강조되고 있습니다.”


◇신념까지 버리는 로맨티스트 데 그리외, 다양한 색채의 팔레트 같은 마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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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농’ 연습현장(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저에게 ‘마농’은 오페라가 아니라 노래극입니다. 노래 보다는 극이 우선되는 공연이죠. 저는 내내 무대 위에 있어 신체적인 힘과 에너지가 필요한 작품이죠.”

이렇게 말한 마농 역의 크리스티나 사파로이우는 “마농을 자연스럽고 가볍게 표현하고 싶다. 열여섯 소녀의 신선함을 인물 그 자체로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뱅상 연출과 작업하면서 마농을 위로 올렸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가 하고 있어요. 간절함, 욕망 등 다양한 색채의 팔레트 모두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농은 사치와 진정한 사랑 사이에서 망설이며 왔다갔다하다 안정을 선택하지만 뒤늦게야 사랑을 찾죠. 이 작품을 통해 고통, 유머 등 일상에서 겪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어 “오페라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피하고 싶다. 인물을 만들어내기 보다 경험하면서”라며 “(저와 마농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어서 감정이입이가능하다. 내면으로부터 인물을 살면서 진짜 마농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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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농’ 데 그리외의 국윤종과 마농 손지혜(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데 그리외는 로맨틱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죠. 신념까지 버립니다. 더 이상 더 로맨틱할 수는 없어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이즈마엘 요르디는 자신이 연기하는 데 그리외에 대해 “세명의 테너가 노래부르는 것과 같다”며 “레지에로(가볍고 날렵한 음색으로 고음과 저음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며 기교를 구사하는)·리릭(따뜻하고 우아하며 서정적인)·리릭 스핀토(날카롭게 찌르는 듯하고 중량감이 있는) 테너까지 불러야 하는 게 이 역할의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데 그리외 역의 국윤종은 “기억 속에서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에 대한 감각을 떠올려봤다”며 “믿음과 의심을 반복하며 자아가 형성되면서 그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깨져가는지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가족에 대한 신뢰, 사랑에 대한 믿음, 신에 다가가는 믿음 등이 생기고 깨지면서 성장합니다. 굉장히 서정적이고 로맨틱했던 테너(데 그리외)가 극적으로 변하면서 극을 이끌죠. 데 그리외는 갈등과 믿음, 배신 등을 겪는 순수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을 도드라지게, 불꽃놀이처럼 만들어가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뱅상 부사르 연출 “시대의 연결로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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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농’의 뱅상 부사르 연출(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18세기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 오도록 시대 간 다리를 놓는 것이 제 몫입니다.”

뱅상 부사르는 이렇게 연출 의도를 전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오페라발레 국립극장의 ‘마농’을 비롯해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등을 섭렵한 연출가다.

“오페라는 박물관에 전시하는 게 아니라 오늘날의 길거리, 술집 등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야기죠. 18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배경이나 무대를 그렇게 꾸미는 게 아닙니다. 자유와 갈망, 자신에 대한 정체성, 가족, 기존의 것들에서 탈피하고 싶어 하는 갈망 등은 어느 시대 젊은이나 같거든요.”

이어 그는 “(옛날 이야기지만) ‘마농’은 오늘날 무대를 올리고 지금 사람들과 일한다. 훌륭한 전통은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 감각으로 작업해야지 전통을 그대로 옮겨오자는 건 말이 안된다”며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전통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오페라식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연기와 리액션을 요구합니다. 데 그리외와 마농은 만난 지 3분만에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합니다. 멍청해서가 아니라 필터 없이 감정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푸치니가 ‘데 그리외의 행동을 설명할 유일한 이유는 젊은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예요.”

이어 부사르 연출은 “구식 시대를 상징하는 그의 아버지는 바로크 음악으로 표현되고 젊고 열려 있는 데 그리외를 위해서는 열정적 음악이 존재한다. 복잡한 음악으로 캐릭터의 복잡함을 표현한다”며 “여기서 마스네의 재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캐릭터의 마음, 감정을 음악적 언어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농’은 대부분 오페라가 활용하는 이탈라이어나 독일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진행된다. 이는 이탈리아어나 독일어에 익숙한 성악가들에게도 모험에 가깝다. 이에 이부사르 연출은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어는 연기와 대사 뿐 아니라 음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음악과 언어는 상호의존적이고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이 무대, 의상 그 이상의 것에 집중해주길 바랍니다. 무대 위 모든 것들이 오늘날의 ‘마농’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죠. 오래전의, 지리적으로 먼 곳의 작품이 아니라 지금의 관객들을 위해 작곡되고 만들어진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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