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북한 핵실험장 폐기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침묵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전격 발표한 핵실험 중단 메시지에 미국 현지언론에서는 섣부른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시 트위터에서 “북한과 세계에 아주 좋은 뉴스이며 큰 진전!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미 백악관은 ‘사적으로는’ 북한의 핵실험 중단 선언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어쩌면 ‘덫(trap)’을 놓은 것일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고 시카고 트리뷴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같은 날, 그외 현지언론에서도 경계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미 일간 USA투데이는 “김정은이 최신의 ‘핵무기 제안’으로 트럼프를 시험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위원장이 마침내 침묵을 깨고 한·미 정상과의 회담에서 협상 테이블에 가져올 내용을 공개했으나, 그가 어렵게 손에 넣은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보도했다.
그 대신에 김 위원장이 핵무장국가의 대표로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등하게 마주 앉을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미국이 북한체제의 철저한 보장과 함께 한반도에 주둔한 3만여 명의 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면 핵무기 개발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나온 북한의 선언은 이전보다는 더 유연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와 동시에 북한은 ‘현재 핵보유국’임을 강조했으며, 행간의 메시지는 미국이 이점을 ‘인정’해야 하고, 김 위원장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로 매체는 분석했다.
외교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의 수석 에디터 앙키트 판다는 BBC 기고문에서 ‘북한이 왜 지금 시점에 핵실험을 중단했는지’를 조명했다.
판다 에디터는 “북한의 선언은 ‘북한,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 중단’이라는 과장된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을 쏟아지게 할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의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전후사정은 우리의 기대치를 낮출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는 우선 북한이 핵실험 중단 이유를 “핵무기 설계의 완성”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검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음에도 이 주장이 ‘명백히’ 과장된 것이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까지 각각 6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후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지만, 현재 핵보유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북한의 경우, 6차례의 핵실험으로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자국의 기술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욱 세밀하게 북한의 핵능력을 고려한다면 지난 2016년 9월과 2017년 9월에 각각 실시한 5번째와 6번째 핵실험이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 북한 국영매체에 따르면 2016년 9월의 실험은 소형 핵 장치를 사용했다. 즉, 단거리·중거리·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2017년 9월의 핵실험으로, 당시 북한은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핵무기 능력을 나타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핵·ICBM 시험 중단을 협상카드의 하나로 삼지 않고 회담에 앞서 미리 중단 선언을 한 것일까.
판다 에디터는 “그 대답은 간단하다”라며 “김 위원장의 아버지(김정일)나 할아버지(김일성)도 획득할 수 없었던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체가 상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단한 진전’이라고 칭찬했으나, 김 위원장의 궁극적인 목적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뉴욕타임스(NYT) 등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그동안 적대적인 북한 정권이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로 평가했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