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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지방소멸, 잃어버린 고향의 경고

입력 2018-05-14 15:22
신문게재 2018-05-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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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대결적인 극단사회다. 철로처럼 평행선보다 더한, 갈수록 벌어지는 극단사회는 접점조차 상실했다. 대화가 없으니 이해가 없고, 공감이 없으니 조율은 없다. 모든 비교 잣대에서 격차는 확대된다. 가진 도시와 잃어버린 농촌, 둘의 격차도 심각하다. 눈앞의 이해관계 탓에 대부분 기업·고용·임금격차 등에 함몰되는 사이 도·농 격차는 위험수위를 넘겼다. 화해와 조율마저 힘들다. 대통령 개헌안에 지방정부 명명과 자치분권 확대까지 담겼다. 그래도 일시적인 단발이슈일 뿐 실질적인 해소요구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되면 좋지만 안 돼도 큰 지장 없는, 후순위 과제로 전락한다.

명백한 오해이자 대단한 착각이다. 도·농격차는 곧 생활문제다. 당장 직접적이지 않다고 소홀하면 돌고 돌아 뒷덜미를 낚아챌 파급력이 큰 불씨다. 멀리 날아가 잘 안 보이지만, 순식간에 되돌아올 날선 부메랑과 같다. 모두가 갖고 싶되 아무나 못 가지는 한정자원의 배분갈등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어서다. 단적인 예가 서울거주의 고달픔이다. 서울은 신세계다. 고도성장 때만 해도 그나마 사회이동이 가능한 멋진 신세계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무리 고단하게 일해도 월급은 고만고만한데 치솟는 집값·교육비는 천정부지라 차 떼고 포 떼면 텅 빈 지갑뿐이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유지도 어려워졌다.

멋진 신세계의 환상은 그럼에도 반복된다. 아니 정확히는 냉엄한 현실인식이 서울카드를 부추긴다. 서울이 아니면 희망이 없어서다. 욕망이 높을수록, 공부를 잘할수록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향한다. 품어 봄직한 교육·취업기회는 서울만 제공해서다. 하지만 살수록 서울거주의 비용압박은 살인적이다. 취업해도 결혼·출산은 힘들다. 낳아 본들 본인신세와 도찐개찐이면 불행을 물려줄 예비부모란 없다. 가진 자의 거대도시 서울은 무자녀의 맞벌이조차 강력히 거부한다. 탐욕적 집값명세서를 내밀며 밖으로 쫓아낸다. 한국인 절반이 서울포함 수도권에 살되 서울인구는 줄고 경기인구만 느는 이유다.

일극독점은 다수소멸을 뜻한다. 도시는 너무 많아 휘둘리고 지방은 너무 없어 한적하다. 인구블랙홀의 영향범위 밖에선 소멸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사람도 돈도 떠나 한계취락으로 떨어진 농촌공간은 수두룩하다. 출산은 중단됐고 사망은 급증하니 지방소멸은 시간문제다. 일부시골은 유령마을로 기록된다. 멈춰선 순환경제는 빠르게 2차적 인구유출로 연결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살기 힘든 공간이란 인식이 퍼지면 귀향·귀촌조차 없다. 인적 끊긴 곳까지 굳이 찾을 수요는 없다.

지방소멸의 전염속도는 가파르다. 인구 댐 없이 출향행렬이 계속되면 고향은 사라진다. 희망은 있다. 단 지금의 접근방식으론 곤란하다. 돈 뿌려 뭘 짓는다고 자생적 순환경제는 마련되지 않는다. 도·농격차의 불균형만 낳은 40년 국토균형발전론의 실패교훈이다. 예전방식은 어림없다. 다른 방식과 접근이 관건이다. 잊힌 채 버려진 고향자원의 재검토가 절실하다. 약점을 사업거리로 삼는 환골탈태 접근이다. 지방엔 고유의 역사·문화·지리적 특장점이 있다. 모두 차별화된 사업모델의 후보다. 고정관념은 혁신실험으로 극복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재생의지와 새로운 방식의 결합이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넘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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