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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막 퍼주는 청년 사장… 은평구 2030 맘 꽉 잡았죠"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대림시장 '숙주청년' 박철오 대표

입력 2018-05-21 07:00
신문게재 2018-05-21 12면

취업준비에 지친 많은 청년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전체 창업자 중 20~30대의 비중은 지난 2007~2011년 51.3%에서 2015년 이후 63.9%로 증가했다.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대림시장에서 ‘숙주청년’을 창업한 박철오(33)씨도 이런 통계 범주의 청년사업가다. 또 청년들이 창업아이템 1위로 꼽는 ‘먹거리’ 사업을 운영한다. 숙주청년은 소화 기능에 좋은 숙주를 메인 재료로 삼아 스테이크, 비빔면, 쌀국수 등의 음식을 만든다.

겉으로만 보면 박씨는 여느 평범함 청년사업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박씨에게는 다른 창업가들과 확연하게 점이 있다. 도전, 열정 같은 의식이 아니다. 다소 엉뚱하지만 “손님에게 음식을 더 주고 싶어서”가 창업의 시작이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보다 자신이 ‘어떤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느냐’가 그의 경영철학이다. 유명 프랜차이즈 점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숙주청년 박 사장을 만났다.


◇ ‘밥 차리는 오빠’에서 ‘스테이크 잘 굽는 젊은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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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림시장청년상회네)

 

숙주청년이 요리를 시작한 계기는 여동생이다. 박씨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대신 여동생의 식사를 챙겨주다가 요리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식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요리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모자랐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요리의 꿈을 접었다.

박씨가 본격적인 ‘요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서다. 박씨는 남들 공부에 매진한다는 고등학교 3학년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현장에 뛰어들었다.

대학도 식품영양학과로 진학했다. 심지어 군대도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그는 “제대 후에도 술집 주방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며 요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노력 끝에 박씨는 지난 2015년 입사 3년 만에 30세의 나이로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점장 자리를 꿰찼다. 박씨는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품질, 서비스, 깨끗함 등 세 가지를 운영 철학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답답함이 찾아왔다. 박씨는 “자주 찾아오는 고마운 단골손님들에게 음식을 조금 더 드리고 싶어도, 하다 못해 음료라도 한 캔 건네주고 싶어도 정해진 양을 지켜야 하는 프랜차이즈의 특성상 불가능했다”고 떠올렸다.

박씨의 답답함은 서비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 메모 애플리케이션에 가게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었다. 막상 아이디어를 실행하려 하니 난관에 부딪혔다. 물통에 가게 이름이 새겨진 스티커를 붙이는 것조차 여러 결재 과정을 거쳐야 해 번거로웠다고 했다.

그러던 중 발견한 ‘대림시장청년상회’ 공고는 박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나만의 가게를 차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숙주청년’의 계획을 세웠다. 프랜차이즈 점장은 좋은 경험이 됐다. 박씨는 “인력을 쓰는 방법, 재료를 구해오는 방법 등 실제적인 운영을 준비하는 동안 점장 시절에 배운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 가성비로 젊은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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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청년 박철오(33) 사장(오른쬭). (사진제공=대림시장청년상회네)

 

숙주청년이 은평구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계기는 인터넷 커뮤니티 ‘은평맘 톡톡’이다. ‘은평맘 톡톡’에서 숙주청년은 일명 ‘핫한 가게’다. 박씨는 “손님 중 다수가 은평맘에서 보고 왔다고 하시기에 검색해봤더니 이미 많은 글들이 올라와있었다”고 말했다.

까다롭기로 알려진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숙주청년은 자연스럽게 은평구 각지에 알려졌다. 박씨는 “얼마 전 은평구 주최로 열린 ‘증산야시장’에서는 4일 연속 재료를 소진해 조기 마감해야 했다”면서 크게 웃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은 박씨가 생각했던 주 고객이 아니었다. 박씨는 “가게를 열기 위해 사전 조사를 했는데, 손님 대부분이 50~60대로 나타나 숙주를 주제로 쌀국수를 메인 메뉴로 내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은평맘’을 계기로 20~30대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스테이크의 인기가 늘었다. 그래서 메인 메뉴를 숙주 스테이크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여전히 서비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음식점은 이미 많다. 그래서 맛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다른 데서 경쟁력을 찾아야 했다. 서비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옷과 모자를 만든 이유도 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박씨는 “단정한 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하되, 손님들이 숙주청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글자를 크게 새겼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어떤 손님은 양을 더 많이 드리는 걸 좋아하지만 다른 손님은 식사하는 동안 넉살좋게 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손님을 유심히 관찰해 그것을 알아채고 기억해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진심을 전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 창업을 꿈꾸는 또 다른 청년들에게

박씨는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그는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지루하고 지겹고 힘들다는 이유로 창업이나 해볼까 하고 창업 전선에 나서는 청년들이 많다. 하지만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은 잘될 확률과 망할 확률이 반반”이라며 “망할 확률 50%를 딛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혜 기자 chesed7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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