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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휩쓴 ‘미투’, 의료계선 유독 잠잠했던 이유는?

남성중심 도제교육 관례, 권력형 성폭력 노출 … 상명하복식 수직적 문화 개선돼야

입력 2018-06-18 19:02   수정 2018-06-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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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근무 문화가 남성중심의 도제식 교육이 관례인 데다 엄격한 상하관계로 이뤄져 다른 근무현장보다 권력형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유독 잠잠했던 곳이 의료계다. 도제식 교육 등으로 엄격한 상하 조직문화가 확립된 터라 성폭력을 당해도 쉽사리 외부에 알리기가 쉽지 않다. 얼굴이나 이름이라도 알려지는 날엔 다른 병원으로의 이직도 힘들어진다. 최근 일부 대학병원에서 성폭력 관련 폭로가 나오긴 했지만 실상을 알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초 A대학병원 교수가 20년 전 여성 인턴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B대학병원에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이 “동료 A교수가 의과대학생, 병원 직원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하고,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과도하게 처방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공개했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단체로 나서 동료 의사의 성폭력을 주장하고 나선 건 이례적이다.



지역 의료계에서는 지난해 성 희롱 의혹이 불거졌다. 간호사와 여성 환자 성희롱 의혹을 받은 대전의 한 대학병원 B교수가 파면된 일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B교수에게 수년간 성적 농담과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병원은 근무 문화가 남성중심의 도제식 교육이 관례인 데다 엄격한 상하 관계로 이뤄져 다른 근무현장보다 권력형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게다가 노동집약적 서비스산업 중 하나로 의사, 간호사, 행정직 등 다양한 직종이 근무하고 다양한 환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접해 여러 형태의 성폭력이 발생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와 함께 지난해 3~5월 각급 병원에 근무하는 조합원 2만 8663명을 설문조사한 ‘2017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약 2288명(8%)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중 77.4%는 ‘성폭력 피해 시 주변 아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등 참고 넘겼다(주변에 아는 사람에게 하소연 포함)’고 답했다. 병원 내 성폭력 피해자 중 대다수가 침묵한 채 사적인 고민 토로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성폭력 피해 경험자 228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해자가 환자인 경우가 71.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의사 14.1%, 환자 보호자 12.8%, 상급자 6.9% 순이었다.

의료계 성폭력은 주로 접촉하는 대상 중 가해자가 많다. 실제로 직종별로 보면 환자 접촉이 많은 물리치료사·간호사는 가해자 환자라는 응답이 각각 82.1%, 74.9%로 높았다. 반면 환자보다 내부자 접촉이 많은 방사선사는 가해자가 상급자라는 응답이 41.2%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모 대학병원 간호사 A씨는 “한 달에 한두 번꼴로 환자들에게 성적 농담이나 성희롱 등을 당한다”며 “윗 선에 이야기해도 ‘병원 이미지를 생각해서 참아라’, ‘간호사는 원래 그렇다’ 식의 반응만 돌아오는 게 현실”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꼭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업무 프로세스상 상대적으로 ‘을’로 볼 수 있는 제약회사, 의료기기, 홍보대행사 직원들도 권력형 성폭력에 자주 노출되는 실정이다.

의료계는 직원 교육, 캠페인, 신고시스템 확충 등으로 또다시 불어닥칠 지 모르는 미투 운동에 대비하고 있다. 서울 지역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아직 별다른 피해 사례가 접수되지 않았지만 관련 캠페인을 펼치고, 직원교육을 실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병원의 대부분의 업무가 병든 사람을 돌봐야 하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하기에 병원은 항상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엄격한 위계질서,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게 된다”며 “이같은 위계질서와 조직문화가 상호존중하고 소통·협력하는 조직문화 형성을 방해하고 결국 내부 개별 구성원의 인권이 짓밟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2005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등 법 환경이 변화하고 젠더 민주주의의가 강화됐지만 여전히 병원에서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다”며 “의료계에서는 전문의 자격 취득 가능 여부 등의 이해관계를 상급자가 틀어쥐고 있어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폭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권력에 기반한 성폭력 피해자들은 2·3차 피해를 당하거나 가해자로부터 협박을 받을 수 있어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보호장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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