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이희승의 무비가즘] 난민 중 가장 무섭다는 '문화난민', 당신은?

입력 2018-07-22 15:35

이희승_무비가즘_2018_7_22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 ‘볼 만한’ 영화가 없는 게 아니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식구’는 개봉 2주만에 전국 개봉관 4개를 유지(?) 중이다. 개봉 첫 주에도 이른 오전 시간이나 심야시간대등 극장에서 제대로 볼 수 있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상영 중’이라는 제목 옆 세 글자가 이렇게 무색할 수가 없다.

 

22일 기준 5000명이 채 보지 못한 ‘식구’는 장애를 가진 순박한 부부와 총명한 어린 딸 앞에 갑자기 식구라고 나타난 한 남자(윤박)의 이야기다. 신정근과 장소연이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연기력과 점차 배우가 되려는 윤박의 욕심은 ‘식구’의 소재가 가진 서늘함과 함께 공포감을 자아낸다.  

 

영화 식구
영화 ‘식구’(사진제공=스톰픽처스코리아)
가족에게 버림받은 남자가 사회적으로 소외됐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에 호의란 이름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과정은 불쾌하고 화가 난다. ‘왜 저렇게 밖에 못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악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부유한 사람보다 사회적으로는 소외됐어도 자신의 삶에 떳떳한 가난한 자들의 구분은 이미 모호하다.

누구든 짓밟아야 살 수 있는 사회다. 다수의 선택 혹은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약자와 강자가 나뉘는 시대다.

아마도 감독은 바로 그 점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식구’가 주는 안락함과 불편함을 전달하려 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허스토리’의 부진은 가히 충격적이다. 기자들 조차 영화를 보고 ‘이런 일이 있었나?’라고 되물었을 정도로 정치, 사회적으로 묵인됐던 소재와 이슈였다.

관부재판은 일본을 상대로 한 위안부 소송에서 유일하게 승소해 한 줄기 희망이 됐던 실화다. 그 소재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하고 배역에 상관없이 기꺼이 영화를 함께한 배우들 그리고 실제로 사재를 털어 재판을 지원한 사람이 지금도 생존해 있다.

지난 6월 27일 개봉 이후 누적 관람객수는 33만명 수준. 업계에서 ‘퐁당퐁당’이라고 부르는 상영 배치가 한몫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아픈 역사를 당당히 말한 이들의 용기는 사회 각지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미투 운동’의 시초였다.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사진제공=NEW)

 

소재의 무거움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채워졌다. 생애 최초로 모든 촬영 회차(34회)에 참가하며 유쾌한 여장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김희애를 필두로 배우들은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열정을 불살랐다.

영화는 그 시대를 반추하는 예술이다. 혹자는 말한다. 힘들고 팍팍한 현실을 잊기 위해 보는 게 영화인데 ‘누가 심각한 걸 보겠냐?’고.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힘든 시대’를 견뎌야 한다. 마블이나 디즈니 영화를 보고 현실을 잊는 건 고작 2시간이다. 자본의 논리로 볼 만한 영화를 놓쳐야 하는 지금이야 말로 문화난민의 시대가 따로 없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