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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 점안액 약가 인하…심평원 밀어붙이기에 제약사 반발

낭비 부추기는 대용량 처방관행 시정돼야 … 소비자 선택권·의사 처방권과 균형 이뤄야

입력 2018-09-07 16:42





tjpharm
제약사 의사 간 짬짜미로 대용량 인공눈물 처방이 관행화돼 의료비 부담, 보존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보건당국이 소량화를 유도하는 가격인하를 강행했지만 제약사들과 소통 부재로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일회용 인공눈물(점안액) 약가 인하를 놓고 제약회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부딪히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말 9월부터 일회용 점안제 307개 품목에 대해 약가를 최대 55% 인하하는 ‘약제 급여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를 고시했다. 이 고시는 일회용 점안제의 용량과 관계없이 농도(㎖당 함량)가 같은 제품이면 동일한 약가(0.1% 198원, 0.3% 396원)를 부여하는 내용으로 1일부터 적용키로 예고됐었다.

하지만 인공눈물을 만드는 21개 제약사가 이에 반발,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지난달 30일 고시 직후 준비기간 없이 가격 인하조치가 시행된 점을 참조해 해당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오는 9일까지 고시 집행이 유예돼 기존 약가를 적용받는다. 법원의 심리결과에 따라 정지기간이 9일 이후 연장될 수도 있다.

변경 고시된 약가를 적용하면 대용량 제품(0.5~0.9㎖)은 약 45%, 소용량 제품(0.3~0.4㎖)은 약 30% 정도 약가가 떨어진다. 제약사로서는 매출 손실이 엄청난 데다가 소용량을 만들려고 설비를 변경하려면 거액의 투자시설비가 들어 아예 인공눈물생산을 일시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송에 참여한 21개 제약사는 태준제약, DHP, 한림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휴온스, 휴메딕스, 휴온스메디케어, 삼천당제약, 씨엠지, 신신제약, 국제약품, 대우제약, 바이넥스, 한국글로벌제약, 이니스트바이오, 셀트리온제약, 풍림무약, 대웅바이오, 영일제약, 일동제약 등이다.

이번 고시를 통해 약가를 동일하게 낮춰 제약회사들이 약가를 더 받기 위해 대용량 위주로 생산하는 행태를 막겠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일회용 점안액 약가인하 방침은 이미 지난 1월 사전 발표되면서 논란이 됐었다. 국회와 언론에서 용량이 많을수록 급여 상한금액을 높게 산정해 제약회사가 대용량 제품을 생산하도록 방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일괄적인 약가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의사와 제약회사가 서로 대용량 처방을 부추기는 짬짜미 관행을 국회와 언론이 지적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심평원은 고용량 제품의 감염 위험성도 근거로 내세웠다. 히알루론산 성분의 일회용 점안제는 보존제가 없어 장기간 재사용하면 세균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사용 금지를 위해 보관 용기 제공을 금지하고 ‘개봉한 후에는 1회만 즉시 사용하고, 남은 액과 용기는 바로 버린다’고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내렸다. 점안액의 재사용 방지를 위해선 소용량 제품을 사용하는 게 적합해 약가인하로 대용량 제품 생산을 줄이겠다는 논리다.

이번 점안액 가격 논란은 고시 직후 약가인하를 강행하는 심평원의 제약사 무시, 시장 길들이기로 야기됐다. 파트너를 인정하지 않고 협의 과정 없이 행정소송에 이르도록 방임해 신중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번 논란과 관련, 심평원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통화를 시도했으나 책임자가 불분명하고 계속 자리를 비워 답변을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제약회사들은 정부가 근본적인 약가제도의 개선없이 내린 극단적 조치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모 제약사의 관계자는 “정부가 용량에 비례해 약가를 산정함에도 유독 일회용 점안액에 대해서만 일괄적인 약가 적용을 하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용량 제품 생산을 유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노인들은 사용 중에 흘리기도 하고 기존 사용설명서엔 안전을 위해 두 방울을 버리라는 내용도 있다”면서 “소용량은 안전하고 대용량은 위험하다는 주장은 소비자 사용행태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근거없는 기준이며 이번 조치가 재개되면 영업손실과 설비투자비용 과다 등으로 큰 피해가 불가피해 많은 기업이 사업을 접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 1월 정부의 약가인하 사전 발표와 2월에 시행된 제품명 ‘일회용’ 표기 및 휴대용 보관용기 제공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캡(뚜껑) 형태의 대용량 점안액 생산을 계속해왔다. 약가 제도의 문제점을 고려하더라도 약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 발표에 대한 특별한 대책없이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일회용 점안액을 생산하는 유니메드제약은 히알루론산 0.1%(0.4㎖) 제품의 가격을 최저 수준인 130원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이에 한 관계자는 “일본계 산텐과 같은 기업은 경제적으로 다량 생산할 수 있는 노하우와 원가구조를 갖고 있어 가능하겠지만 국내 기업이 130원의 약가를 맞춘다면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과의사들도 이번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한안과의사회는 “고용량 점안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환자의 특성 및 요구사항에 따라 처방이 필요한데 이는 의사 고유 권한인 처방권과 환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이번 제약회사와 심평원의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의료현장에서 환자들에게 전가될 전망이다.

심평원의 기습적·독단적인 약가 인하 발표로 현장의 약사와 유통업자는 제품회수 및 가격조정에 신경써야 하고, 의사와 환자는 선택권을 박탈당해 세심한 처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소비자의 사용 특성에 따라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늘어난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또 제약회사가 사업을 접거나 줄이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악의 경우 소비자는 히알루론산 제품 대신 보존제가 첨가되고 효능이 떨어지는 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나트륨(CMC, sodium carboxymethylcellulose) 성분의 일회용 점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획일적인 약가제도와 불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무리한 조치는 큰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점안액이 고가 정책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국산 점안액 제품은 10~20% 저렴한 가격경쟁력과 글로벌 수준의 GMP 시설을 확보해 외국기업의 협력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의약품 정보 제공업체 유비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히알루론산 1회용 점안제의 지난해 처방액은 1151억으로 4년 동안 약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준형 기자 zhenre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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