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롯데갑질피해자-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길준 기자) |
민간 대기업의 갑질을 고발한다고 마련된 현장에 공정거래위원장까지 동원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너무 한쪽에만 지나치게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롯데를 시작으로 제2, 제3의 갑질 고발사태가 이어져 반 기업 정서를 확산시킬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3일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공정경제민생본부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롯데그룹의 갑질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협력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김영미 롯데피해자연합회장은 이날 “지금까지 공정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이제는 진정한 적폐 청산을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30대 대기업의 공정위 신고 건수가 463건인 데 반해 시정명령은 5건에 불과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공정위가 ‘갑질양성소’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 갑질 청산은 공정거래위원장의 몫이라며 몰아세웠다.
이에 김상조 위원장은 “여러 피해자들이 제시한 문제와 공정위에 접수된 건에 대해서는 모든 직원들이 잘 알고 있으며 열심히 검토·조사 중에 있다”면서 “법원의 판례 등 엄격한 요건이 있어 (요구사항이) 완벽하게 충족 안될 수도 있지만, 을(乙)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개개의 사정을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롯데그룹을 겨냥한 전방위적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거래구조와 관행의 선진화 △정부·국회 협업을 통한 법 제도 개선 △대기업의 자발적 상생협력 유도 등을 약속하며 피해자들을 달랬다. ‘롯데’라는 이름을 거명하진 않았으나 김 위원장의 이날 행사 참석 자체가 민간 기업에 대한 ‘편향된 공권력’ 행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민사적인 사항은 시장과 당사자가 나서 해결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공정위원장은 관련 정책을 다루고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포괄적인 개선책 마련에 집중해야 하는데, 대기업이 끼었다고 사인 간의 분쟁에 나타나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김 위원장의 ‘쇼맨십’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면서 “향후 자영업자들이 모든 문제를 대기업 탓으로 돌려 구제 받고자 하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기업들은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느껴 해외로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김 위원장이 대학교수였다면 상관 없지만 공직을 맡고 있는 만큼, 어느 수준까지만 개입하겠다는 기준을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정길준 기자 alf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