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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투병 중에도 ‘영화’라면 ‘맨발’로…‘청춘’ 신성일, 영화처럼 안녕을 고하다

[별별 Tallk]'한국의 알랭들롱' 신성일 별세, 차기작 '소확행', 2년 전 판권 사들인 김홍신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 각색 작업 중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부터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만추’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등 한국 영화사 그 자체

입력 2018-11-09 07:00   수정 2018-11-09 08:08
신문게재 2018-11-0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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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임스 딘(James Dean)’ ‘한국의 알랭 들롱(Alain Delon)’으로 불리며 한국 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배우 신성일이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폐암을 선고받았지만 투병 중에도 10월 열렸던 부산국제영화제, 10월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개최된 ‘한국영화 99주년, 100년의 문턱에서: 한국영화의 기원, 표상, 비전’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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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추'의 신성일(연합)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 “영화인으로서 따듯하고 애정이 넘치는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귀띔했던 신성일은 사진작가와 두 사위, 외손녀 등과 가족영화 ‘소확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이었던 이장호 감독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성일이 “2년 전 판권을 사들인 김홍신 작가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의 영화 시나리오 각색 작업에 한창”이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투병 중에도 영화작업에 열정을 보이던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의 역사를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호떡장사를 하다 오디션을 통해 신상옥 감독의 1960년작 ‘로맨스 빠빠’에 발탁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는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1974),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1977) 등을 거치며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뉴 스타 넘버원’ 신성일. 故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가명처럼 그는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해 승승장구했다. ‘맨발의 청춘’이 36만명의 관객을 만나며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전성기를 맞은 신성일은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이슈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맨발의 청춘’으로 인연을 맺은 배우 엄앵란과의 결혼은 당대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었다. ‘세기의 결혼’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대단했던 1964년 신성일·엄앵란의 결혼식은 초청장이 암거래되는가 하면 4000명을 훌쩍 넘기는 하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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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만 그의 주연 영화 51편이 개봉했고 그해 신성일은 지나친 다작으로 다른 사람 작품을 다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최악의 배우’ 상을 받기도 했다. 훗날 이 상에 대해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제일 귀한 상”이라고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혼 후 수많은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는가 하면 11대(1981), 15대(1996) 국회의원 선거 낙선으로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2000년 고향인 대구 동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지만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관련 옥외광고물업자 선정 관련 부정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년여간 복역했다. 

이미 40여년 전 합의한 아내 엄앵란과의 졸혼 고백, 2011년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의 특정 여배우 언급 등으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던 그의 마지막 길 역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3일 저녁 위독해져 응급실로 옮기면서 그의 별세 소식이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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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연합)

그의 조카 강석호 의원, 주변 지인 등의 말을 빌어 신빙성을 더한 그의 별세 소식은 사실처럼 보도되며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그의 가족들이 예약했다는 강남성모병원측의 귀띔도 오보 양산에 힘을 보탰다. 

결국 오보 6시간 남짓이 지난 후 그는 별세했다. 마지막까지 영화처럼 언론에 경고를 던지듯 한 차례 오보전쟁을 치른 신성일은 4일 새벽 파란만장한 생애에 안녕을 고했다. 영화계는 그의 문화 훈장 추서를 준비 중이며 그가 제작하려던 ‘소확행’은 이장호 감독이 바통을 이어 받아 계획대로 내년부터 촬영에 돌입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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