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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49득점?… '슛도사' 이충희는 현역 때 64득점

입력 2019-01-05 23:32   수정 2019-01-0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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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KBL 프로농구 서울SK-부산KT 경기에서 SK 김선형이 상대 수비를 제치고 슛하고 있다.(연합)

5일 열린 프로농구 부산 kt전에서 SK의 김선형이 49득점을 넣으며 역대 3위 득점 기록을 달성하면서 국내 프로농구 역대 최다 득점 기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김선형이 올린 49득점은 지난 1997년 3월 29일 기아의 ‘사마귀 슈터’ 김영만(현 창원 LG 코치)이 나래 전에서 기록한 49점과 함께 역대 국내 프로농구 동률 3위의 기록이다.

김선형은 한국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드로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시즌에도 SK의 간판스타로 시즌 우승을 이끌며 팬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김선형의 어깨는 초반부터 축 처질 수 밖에 없었다. 주전 선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9위까지 팀 순위가 떨어졌다. 무려 10연패의 수모까지 겪었다. 도저히 전 시즌 우승팀답지 않았다.

이날 김선형이 49득점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올린 것도 이를 악물고 뛸 수 밖에 없었던 팀 사정과 무관치 않았다. 전반 6득점에 머물렀던 김선형은 이대로 가면 또 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절박감에 온 몸을 던졌다. 3쿼터 17득점, 4쿼터 14득점을 쏟아부으며 팀을 패배 일보직전에서 살려냈다. 특히 연장전에서는 팀의 14득점 가운데 12점을 혼자 책임지며 91-90, 짜릿한 한 점 차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그가 기록한 49득점은 팀 전체 득점의 절반을 넘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나온 김선형은 눈물을 보이며 울먹였다. “그동안 팬들께 매우 미안했다. 눈물을 흘린 건 기쁨보다 미안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 동안의 말 못할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자신의 49득점 기록에 대해선 “NBA(미국 프로농구)에서는 한 선수가 50점, 60점을 넣더라. 나는 언제 쯤 그런 점수를 기록해볼까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기록할 줄은 몰랐다”라며 기뻐했다. 그는 “앞으로 프로농구에 이런 득점이 많이 나와 흥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만이 49득점을 기록한 것이 1997년이나 역대 3위 기록도 무려 22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럼 역대 1위 기록은 얼마나 될까?

기록 상 국내 선수 역대 최다 득점 기록 1위는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이 갖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 7일 울산 모비스로 뛸 당시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기록했던 70점이 최고 기록이다.

이어 2위 기록은 인천 전자랜드 문경은(현 SK 감독)이 원주 TG삼보전에서 넣은 66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선수의 기록이 같은 날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역대 1,2위 기록의 진정한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다.

당시 우지원과 문경은의 경이적인 기록은 팀은 물론 상대팀 선수들의 극단적인 밀어주기와 봐주기 덕분이었다. 당시 3점 슛 타이틀을 놓고 두 선수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동료들은 슛 기회를 두 선수에게 몰아주었다. 상대 팀 선수들도 타이트하게 수비하지 않고, 3점 슛 라인 밖에서 슛 쏘는 것을 거의 방치하다 시피 했다. 그렇게 70점, 66점이라는 기록이 만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두 선수와 소속팀은 당시 팬들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은 바 있다.

이충희는 ‘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 개인 최고 기록인 64득점을 비롯해 무려 12시즌이나 연속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의 ‘국민 수터’였다.

하지만 농구 팬들은 우지원이나 문경은 보다 훨씬 앞서 국내 농구계를 주름 잡았던 왕년의 슈터들이 이들에 비해 훨씬 높은 득점력을 가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대표적인 ‘국민슈터’가 바로 이충희 전 동부전자 감독이다.

이충희는 국내에 프로가 정식 출범하기 전에 큰 인기를 누렸던 ‘농구대잔치’에서 무려 12시즌이나 연속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접근 불가’ 득점왕이었다. 현역 시절 라이벌이었던 ‘컴퓨터 슈터’ 고 김현준이나 ‘농구 도사’ 허재도 득점에서 만큼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182cm의 크지 않은 신장이었지만, 상대 앞에서 몸을 뒤로 젖히며 포물선으로 쏘아 올리는 그의 슛은 아무리 장신 수비수라도 좀처럼 막알 낼 수 없었다. 

현대전자 시절이던 1987년 12월에는 농구대잔치에서 명지대를 상대로 무려 64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전 1984년에는 허재와 한기범, 김유액 3인방이 주축인 ‘현역 최강’ 중앙대를 맞아 60점을 퍼붓기도 했다. 이 밖에도 50점 이상의 득점 경기도 간간히 했을 정도로 슛에 관한 따를 자가 없었다. 그래서 별명도 ‘슛도사’였다. 

김민준 기자 sport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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