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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예쁘고 돈 많으면 살인도 용서되나요? 영화 '리지'

1892년 미국에서 실제 벌어진 도끼살인 사건 영화화
범인으로 몰린 부호의 딸, 감춰진 하녀와의 관계에 초점
클로에 세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나신 노출, 영화적 메시지 묵직

입력 2019-01-10 07:00
신문게재 2019-01-10 9면

리지
1800년대 미국 메사추세추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대부호 상속녀와 하녀의 매혹적인 드라마를 그려낸 영화 ‘리지’.(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영화와 뮤지컬, 오페라 등으로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1892년에 미국에서 실제 벌어진 도끼 살인 사건으로 대부호와 그의 새아내가 잔혹하게 살해돼 발견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둘째 딸 리지 보든. 때때로 발작을 일으키는 신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 영화 ‘리지’는 바로 그 당사자와 그 집에서 있었던 사건 그리고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실화를 충실히 따르는 영화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지는 범인으로 의심받지만 결국 무혐의 처리된다. 부자이자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아버지의 후광 아래 잘 배운 상류층 여자가 그런 ‘잔혹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는 판결이었다. 영화는 그 사실에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범인이 그녀였음을 확고하게 제시한다. 영화 속 카메라는 리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따라간다.

어린 시절 자매만 두고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상처, 새엄마와 삼촌의 냉랭함, 가부장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살아온 리지의 일상은 단조롭다. 가진 돈은 많지만 냉혈한인 아버지는 주변에 적이 많고 약한 자의 재산과 육체를 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점을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새엄마의 방관 속에서 리지 자매는 노처녀로 늙어간다. 그 와중에 우연히 집에 오게된 하녀 브리짓(크리스틴 스튜어트)은 리지의 외로움을 공유하고 둘 사이의 비밀은 점차 깊어만 간다.

국내 개봉에 앞서 박찬욱 감독의 ‘하녀’와 비교되는 지점도 있지만 ‘리지’의 결은 확연히 다르다. 남성에 의해 억압된 삶을 사는 여성이라는 점 말고는 ‘리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하고 우울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미국 내에서도 소규모 개봉을 할 만큼 연출력과 작품성에만 올인한 영화다. 주인집 딸과 하녀의 역할을 맡은 클로에 세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스타성과 마이너 영화에 대한 애정을 두루 겸비한 배우들로 ‘리지’에서 물 만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할리우드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던 두 사람의 진정성 느껴지는 연기궁합은 치명적인 매력이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리지
국내에서 ‘트와일라잇’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할리우드 셀럽들이 닮고 싶은 아이콘으로 불리는 클로에 세비니가 영화 ‘리지’로 만났다. (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특히 살인 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배우들의 나신이 내포하는 의미는 상당하다. 단순히 법망을 피하기 위한 의도를 넘어 과거를 버리고 새로 태어나려는 의지가 오롯이 와 닿는다. 카메라는 크기와 피부, 머리 색깔도 다른 두 여배우의 가슴과 둔부를 비추지만 에로틱하기 보다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할리우드에서 영민하기로 이름난 클로에 세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전형화된 캐릭터와 대규모 제작비의 영화 대신 ‘리지’를 선택할 정도로 이야기가 가진 주제도 남다르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회적인 관념과 유리천장에 갇힌 영화 속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강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를 되묻는다. 침묵에 따를 것인지, 용기내 도끼를 들 것인지는 단순히 행동의 문제가 아니다. 1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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