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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일의 연기, 정보석의 창조와 성숙 그리고 박정복·김도빈의 열정…연극 ‘레드’

러시아 출신의 색면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예술과 사유, 철학 그리고 삶에 대한 연극 '레드'
마크 로스코 강신일·정보석과 가상의 인물 조수 켄 박정복·김도빈이 꾸리는 2인극
연극 ‘네버 더 시너’, 영화 ‘글라디에이터’ 등의 존 로건, 씨그램 사건을 바탕으로 꾸린 작품

입력 2019-01-12 18:00   수정 2019-01-12 16:01

고뇌하는 로스코(강신일)와 그를 바라보는 켄(김도빈)
연극 ‘레드’의 마크 로스코 강신일(사진제공=신시컴퍼니)

 

“연기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레드’에 천착하고 생명에서 이미지를 창출하려 했던 로스코처럼 저에겐 그 레드가 연기입니다. 연기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도, 내 주변인도 모르는 내 안의 감춰진 것들을 찾아가고 끄집어 내는 데서 전 (레드를)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1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레드’(2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프레스콜에서 2011년 초연부터 다섯 번째 시즌까지 꾸준히 마크 로스코로 분하고 있는 강신일은 스스로의 레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5년 세 번째 시즌부터 조수 켄으로 함께 하고 있는 박정복, 올해 새로 합류한 김도빈은 “레드 하면 떠오르는 건 열정”이라고, 2015년 세 번째 시즌에서 함께 했다 올해 다시 마크 로스코로 돌아온 정보석은 “작품에서는 창조이고 성숙이며 그에 동반된 열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연극 ‘레드’는 러시아 출신의 색면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예술과 사유, 철학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다. 마크 로스코(강신일·정보석, 이하 가나다 순)와 가상의 인물 조수 켄(박정복·김도빈)이 꾸리는 2인극으로 한국에서는 2011년 초연돼 2013~2014년, 2015년, 2016년에 이어 다섯 번째 시즌을 맞는다. 

 

정보석(로스코) 단독 2
연극 ‘레드’ 마크 로스코 정보석(사진제공=신시컴퍼니)
연극 ‘네버 더 시너’, 영화 ‘글라디에이터’ ‘007 스카이폴’ ‘에비에이터’ ‘랭고’ ‘스타트렉’ ‘라스트 사무라이’ ‘스위니 토드’ 등의 작가 존 로건(John Logan)이 뉴욕 씨그램 빌딩 소재의 포시즌 레스토랑에서 벽화를 의뢰받고 40여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계약을 파기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꾸린 작품이다.


◇매 시즌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즐거운 작업

“8년 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하며 덥석 받았는데 책(대본)을 읽으면서, 연습 과정에서 로스코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물임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졌어요.”

총 5시즌 중 4번을 마크 로스코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강신일은 “초연에는 로스코라는 인물이 가졌던 예술세계, 철학, 사상 등의 깊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며 “우리 관객들에겐 워낙 생소한 분이라 쉽고 편안하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말을 바꾸는 테이블 작업을 길게 했다”고 덧붙였다.



“초연 당시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고민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초연에서 미처 파악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가면서 즐거운 작업이 됐죠. 이번 시즌은 절대 안하리가 맹세했었는데 ‘레드’가 저를 자꾸 끌어당기는 것 같고 로스코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해할 부분이 아직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어 강신일은 “어쩔 수 없이 소멸해 가는 세대에 속하면서 이번 시즌은 그런 연민이 좀 더 깊이 배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다섯 번째 시즌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기도 했다. 3번째 켄으로 분하는 박정복은 “처음 이해랑극장에서 (강신일) 선생님과 (강)필석 형이 하는 ‘레드’를 보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박정복(켄) 단독 2
연극 ‘레드’ 켄 박정복(사진제공=신시컴퍼니)

 

“출연 제안을 받은 이후 항상 재밌게 작업하고 있어요. 3번을 하면서 단 한번도 이 작업에 흥미를 잃거나 재미없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마크 로스코를 연기 중인 정보석은 “저 역시 (강신일) 형이 공연 하실 때부터 작품에 홀딱 반해 해보고 싶었다”며 “막상 하게 됐을 때는 제가 원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관객이 즐거운 작품이지 로스코 라는 인물을 감당하기에는 제가 너무 작고 초라했어요. 첫 공연이 너무 힘들어서 연극에 대한 트라우마 생겼을 정도였죠. 그래서 못 하다가 이번에 다시 출연 제의를 받고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막상 ‘하겠다’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이면 숨이 콱콱 막혀왔죠.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고 인물이에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때보다는 로스코가 뭘 고민했고 무엇을 담아내고자했는지를 좀 알 것 같다는 겁니다. 그 느낌으로 좀 숨통이 트여 무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도빈(켄) 단독 1
연극 ‘레드’ 켄 김도빈(사진제공=신시컴퍼니)
이번 시즌에 켄으로 새로 합류한 김도빈은 “대본을 읽고 완전 매료됐는데 선생님들 말씀대로 연습할수록 어려웠다”고 동의를 표했다.

“대본이 좋다고 배우가 연기하기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공연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고 더 행복하려 노력 중이죠.”


◇찰나의 반짝거리는 순간, 소멸하는 세대에 대한 공감

“오십이 넘어가면서 저에게 젊음은 지나가버린 꿈이 돼 버렸어요. 이제는 서서히 밀려나는 나이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 즈음 ‘레드’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전한 강신일은 “로스코가 했던 말을 상당 부분 인용했다는 대본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가진 철학의 깊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방대한 지식의 양 등을 느꼈다”며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에게서 한 가지를 봤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가치 등 앞에서 발버둥치는 로스코의 모습에 감히 저를 비교했죠. 나는 밀려나지 않을 거야, 나이를 먹어도 무대를 지킬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시즌을 거듭하면서 오만함이 사라지고 로스코가 얘기한 그림들에 집중했죠. 그림 속에서 반짝거리는 순간을 찾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요구되는데 그 순간은 너무나 찰나예요.”

이어 “연기에도 그런 부분이 있어서 매시즌 로스코의 말에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생긴다”고 덧붙인 강신일은 “로스코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자꾸 제 스스로를 로스코에 견줘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고뇌하는 로스코(정보석)와 그를 바라보는 켄(박정복)
연극 ‘레드’ 마크 로스코 정보석(오른쪽)과 켄 박정복(사진제공=신시컴퍼니)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세대에 들었지만 새롭게 일어나는 젊음의 가치, 열정을 막는 게 아니라 그에 뒤지지 않게 생각을 공유하고 같이 따라가려고 스스로를 다지고 다스리고 반성하면서 공부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처음 ‘레드’를 관람했다는 정보석 역시 “소멸하는 세대에 대한 공감”을 언급하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한참 제 세대에 대해 고민할 때였어요.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할지를 고민해야할 때였죠.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하려는 (로스코의) 마음이 저를 다잡게 했고 그 매력 때문에 두렵지만 다시 ‘레드’를 하게 됐죠.”


◇모든 것은 과정 위에 있다 “어우러짐을 만드는 작품이 되길”
 

고뇌하는 로스코(강신일)와 생각에 잠긴 켄(김도빈)
연극 ‘레드’ 마크 로스코 강신일(왼쪽)과 켄 김도빈(사진제공=신시컴퍼니)

 

“미술을 소재로 한 연극이지만 철학, 신학, 인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까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건방지게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움은 행위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로 족하다, 관객들이 말의 무게에 치여서는 안된다고.”

이렇게 전한 강신일은 “수없이 연습을 반복하면서 지극히 신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용을 몰라도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 관계만 보여줘도 신파이며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로스코가 얘기하잖아요. 아버지를 존중해야하지만 몰아내야한다고. 그리고 나중엔 켄을 인정하잖아요. 결국 신구세대 조화를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죠. 우리가 해야할 일이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만 앞선 선배들의 가치관이나 업적도 묵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곤 “이 연극이 음악같기를 바란다”며 “로스코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나온다. 주고받는 배우의 대사들이 하나의 합주나 이중주처럼 들리면 좋겠고 동작 하나하나가 발레나 한국무용을 보는 느낌으로 전해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밑칠하는 로스코(정보석)와 켄(박정복)
연극 ‘레드’(사진제공=신시컴퍼니)

 

“진지함이 진부함이 돼가는 요즘, 다분히 신파적인 요소를 가진 이 연극이 (진부함이 아닌) 신파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행동, 소리로 음악으로 느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시즌을 준비했어요.”

또 다른 로스코 정보석은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들이 꼭 필요하지 않나 싶다”며 “진지함을 진부하게 느끼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생각을 갖는다 해서 지나간 것이 사라져야하는 건 아니다”라고 동의를 표했다.

“세상은 늘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낸 새로움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야하지만 우리(지나간 세대)도 있어요. 뭔가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우리가 우리 모습으로 가진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연극 레드)이 있다는 게 좋습니다. 세대는 다르지만 로스코가 ‘적은 아니다. 갈등이나 전쟁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고 흘러가는 과정 중에 있죠. 자기 생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 생각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인정하는 어우러짐을 만드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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