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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쇄국의 상징, ‘감성 미술관’을 꿈꾸며 문열다…석파정 서울미술관

[혼자보기 아까운 히든콘]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내 자리 잡은 서울미술관, 새 전시공간 문 열어, ‘아드만 애니메이션-두 번째 외출’ '거인: Walking Man'(去人), '다색조선: 폴 자쿨레' 등 전시 중
김환기의 ‘10만개의 점’, 권영배 도예 명장 달항아리, 최불암의 내레이션,

입력 2019-01-28 07:00
신문게재 2019-01-2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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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신관(사진제공=서울미술관)

 

“돈 많은 유한마담들의 놀이터가 아닌 누구나 보고 느끼고 만지고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감정이 아닌 감성이 있는 미술관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최근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신관 M2를 개관한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설립자 안병광 회장은 ‘감성 미술관’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아드만 애니메이션-두 번째 외출’(2월 28일까지)이 진행 중인 본관을 거쳐 석파정 안으로 들어서면 통유리로 꾸린 신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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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신관 지하 1층에서 진행 중인 ‘거인’전 중 김환기의 ‘10만개의 점’(사진=허미선 기자)

석파정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빗장을 닫아 걸었던 흥선대원권의 별서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에 따라 왕에게 진상되고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바쳐지던 공간이었다.

 

안 회장은 2012년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문을 연 지 7년만에 그 공간 내 400여평의 땅을 더 매입해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신관을 지었다. 

 

안동 병산서원에서 공수된 400년 된 모과나무를 비롯해 350년된 산수유, 300년 이상 된 선비나무 등을 심기도 했다.  


“이 땅 자체가 아픔과 비굴함을 준 자리입니다. 정치권력의 중심지로 선물을 가져다 바치고 아부, 부탁이 난무하던 비굴한 땅이죠. 이곳이 젊은 작가가 자신의 꿈과 끼를 발휘하고 대한민국의 감정적인 것들을 감성으로 풀어가는 장(場)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습니다.”

신관 지하 1층은 대형전시를 위한 전용공간으로 꾸렸다. 현재 그곳에서 진행 중인 ‘거인: Walking Man’(去人) 전은 안병광 회장이 직접 큐레이션한 전시로 서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김환기의 ‘10만개의 점’(1973)과 전통가마에서 구워낸 것 중 전세계에서 가장 큰 75㎝에 달하는 권영배 도예 명장의 달항아리 그리고 음악 등이 어우러진다. ‘10만개의 점’의 모티프가 된 김광섭의 시 ‘저녁에’는 ‘국민아버지’ 최불암의 목소리로 읊는다. 더불어 캔버스에 고령토를 발라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물감을 채워 넣은 정성화, ‘물방울 작가’ 김창열 등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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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신관 지하 1층에서 진행 중인 ‘거인’전(사진=허미선 기자)

안병광 회장은 ‘거인’전에 대해 “1973년 피카소가 죽고 김환기 화백이 가족, 이웃, 제자 등을 생각하면서 ‘10만개의 점’을 한점한점 찍어갔듯 앞으로 미술관이 100년, 200년 걸어갈 길을 전하기 위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1층에서는 프랑스 화가의 눈으로 본 조선 후기 풍경을 일본 전통의 채색 판화기법인 우키요에(浮世繪)로 그려낸 폴 자쿨레의 ‘다색조선’ 전이 진행 중이다. ‘신랑’과 ‘신부’, ‘투계’, ‘양치기 청년들’, ‘무희’, ‘소금장수’, ‘옛 책’, ‘세 명의 한국인’ 등 한국을 주제로 한 폴 자쿨레의 대표작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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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신관 1층에서 진행 중인 ‘다색조선: 폴 자쿨레’전(사진=허미선 기자)

 

김은숙 작가, 이병헌·김태리 등 주연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재조명 받고 있는 구한말의 풍경들이 서양인의 이목구비를 한 얼굴, 다소 간의 오해로 표현된 풍속, 일본인 어머니와 살았던 폴 자쿨레가 경험했던 일본의 정서들이 스민 표현 등이 독특한 괴리감을 자아낸다. 

 

류임상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2019년 전시 기조는 ‘생활의 발견’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설립 이념을 담는다”며 “3월 중순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 전시’전과 10월께 ‘보통의 거짓말’ 전이 진행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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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석파정 서울미술관 신관의 2층 공간(사진=허미선 기자)


‘안봐도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에 대해 “역설적으로 ‘안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전시를 봄으로서 무심코 지나쳤던 생활 속 예술의 순간들을 발견해 그 가치와 영향력을 경험하게 하고자 기획했다”고 전한 류 실장은 ‘보통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평소에 자기 합리화,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소소한 거짓말부터 대중매체, 정치 등 사회가 던지는 거짓말까지를 시각 예술로 구현한다”고 소개했다.

 

신작작가 발굴 프로젝트 ‘2019 보더리스 아티스트’(Borderless Artist)를 통해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틴, 일본의 오쿠야마 요시유키 등 3명의 신예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석파정 스탬프 투어, 1~12월 티켓(매월 무제한 방문 가능한 티켓) 등의 프로그램들을 신설했다.  

 

‘연애의 온도’ ‘비밀의 화원’ ‘사랑의 묘약’ ‘사임당, 그녀의 화원’ ‘이중섭은 죽었다’ ‘카페 소사이어티’ 등 3년 전부터 대중친화적인 전시들을 기획하면서 연간 14~15만명이 다녀가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젊은 관람객들이 80%에 이르는 문턱 낮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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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휴식공간에 내걸린 이중섭의 ‘황소’(사진=허미선 기자)

 

최근엔 애지중지하던 소장작 이중섭 화가의 ‘황소’ 시리즈를 많은 이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휴식공간에 내걸기도 했다. 안병광 회장이 지난 2016년 ‘이중섭은 죽었다’展을 진행하면서 “내 청춘과 함께 했다”고 했던 그 작품들이다.

 

‘황소’는 가족이 모여 살기 위해 고단한 삶 속에서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절실한 마음이 담긴 작품으로 서울미술관을 짓는 원동력으로도 알려진다. ‘황소’의 휴식공간 배치는 “미술관을 찾는 누구나 이 그림을 보고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류임상 실장의 귀띔이다.


류임상 실장은 “쇄국정책으로 ‘닫힘’을 상징하는 이곳을 많은 사람들에게 열어 예술을 향유하는 터전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며 “너무 대중적이기만 하거나 어렵고 아카데믹한 주류에 편중되기 보다는 그 경계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의 예술적 순간들을 발견할 있는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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