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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공감하면서도 빠져나오기, 무대 위 외줄타기…연극 ‘오이디푸스’ 코러스장 박은석

황정민,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가 ‘리차드 3세’에 이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
오이디푸스 황정민, 코러스장 박은석, 이오카스테 배해선, 테레시아스 정은혜, 크레온 최수형, 코린토스의 사자 남명렬, 신관 최정수 등 출연

입력 2019-02-09 20:14   수정 2019-02-09 20:19

박은석
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강시열 작가)

 

“코러스장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알겠는 그런 캐릭터예요. 객관적으로 나와 있어야 하면서도 인물들의 정서적인 부분들을 전달해야하죠.”

황정민,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가 ‘리차드 3세’에 이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연극 ‘오이디푸스’(2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코러스장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박은석은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제3자 입장에서 인물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조금이라도 과장하면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고 너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여도 안되고…지금은 분장, 의상 등 다양한 공연적인 스타일들이 도와주고 있어 신뢰하고 있지만 연습할 때는 감 잡기가 진짜 어려웠어요.”

그런 박은석에게 생각을 전환할 키워드를 던져준 이가 오이디푸스 역의 황정민이었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해 차마 볼 수 없는 아이들을 내어놓을 것”이라는 신탁을 안고 태어난 오이디푸스가 의지를 가지게 되는 순간에 이르는 과정을 따른다.

그 과정에는 박은석이 연기하는 코러스장을 비롯해 어머니이자 아내 이오카스테(배해선), 눈먼 예언가 테레시아스(정은혜), 외삼촌이자 처남 크레온(최수형), 진실을 전하는 코린토스의 사자(남명렬), 신관(최정수) 등이 함께 한다.  

 

박은석
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제공=샘컴퍼니)
“(황)정민 선배가 ‘제사장’이라는 되게 좋은 키워드를 주셨어요. 그래서 텍스트도, 작품 자체도 그렇게 쓰여져 있으니 ‘내가 해결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보자’ 했죠. 뮤지컬로 보자면 (노트르담 드 파리) 그랭구와르 같은 기능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인물로서 다가가면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공감하면서도 빠져나오기, 코러스장의 외줄타기

“오이디푸스를 비롯한 인물들의 생각, 감정들을 읊으며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또 다른 인물에 들어갔다 나오고를 반복하면서 상황을 설명하는가 하면 드라마 라인도 놓치면 안돼요. 게다가 큐나 행동들에 대한 신호를 코러스장이 주니 역할 자체가 공연 양식이기도 해요. 매순간 외줄을 타는 느낌이죠.”



이렇게 설명한 박은석은 코러스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이디푸스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물론 관객과의 ‘공감’ 그리고 인물 혹은 상황들에서 빠져나오기”라고 덧붙였다.

“인물이나 상황에 계속 몰입하거나 안에 들어가 역할을 하기보다 빠져나와야 해결이 되더라고요. 관객 시점에서 계속 생각하고 작품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스스로도 그런 생각들이 느껴져야 이 작품 안에 서 있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중점을 두고 노력하는 부분은 빠져나와 작품 보기예요.”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박은석은 “배우다 보니 이 배역을 해결해야한다는 자의식 때문에 저 자신이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다”며 “그럴 땐 다시 처음을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박은석
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강시열 작가)

 

“선배들도 그런 얘기들을 하시는데 작품을 읽었을 때 첫 느낌이 맞는 것 같아요. 처음 작품을 만났을 때 어땠는지를 계속 찾다보면 찾아지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무대 위에 설 힘을 얻죠.”

“오이디푸스 만세!”를 외치다가 오이디푸스를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 등 동선들과 감정들, 극 진행과 공연 양식으로서의 기능 수행까지 극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날을 세워야만 하는 역할이다.

“은석아 잘 부탁한다.” 이 한마디로 2011년의 ‘더 코러스-오이디푸스’로 인연을 맺어 ‘주홍글씨’ ‘외솔’ ‘왕세자 실종사건’ 등을 함께 했던 서재형 연출은 고민도 없이 이 어려운 역할을 박은석에게 맡겼다.


◇실생활에서도 오이디푸스 황정민 따라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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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강시열 작가)
“관객들은 오이디푸스를 봐야하지만 저도 그 오이디푸스가 느끼는 정서, 감정이 없으면 안돼요. 굉장히 격정적인 순간들, 큰 감정들이 많은데 아무 것도 없이 배회하거나 제3자로서만 얘기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공연양식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인 황정민 선배랑 같이 가야 하죠.”

이에 박은석이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은 ‘황정민 살피기’다. 그는 “정민 선배의 신체 리듬이나 컨디션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며 “실생활에서도 코러스처럼 정민 선배를 따라 다닌다”고 귀띔한다.

“온전히 정민 선배만 항상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신경을 계속 두고 있어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첫 공연 후 “코러스장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고 전하자 2005년 황정민이 ‘너는 내 운명’으로 제2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후 전한 수상소감을 패러디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며 웃었다. 그리곤 황정민과 ‘자책배틀(?)’을 벌였던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7일엔 공연을 하다가 한쪽 렌즈가 어설프게 빠져서 눈가에서 어른어른했어요. 시야는 왜곡돼 보이고 공연 자체도 예민한데 더 예민해져 버렸죠. 후반부에는 아무 것도 없이 너무 힘만 준 것 같아 속상했어요. 공연 끝나고 정민 선배한테 죄송하다고 했더니 오히려 ‘내가 너무 못한 것 같다’고 자책을 하시는 거예요. 선배는 땅을 보고 저는 천장을 보며 주거니 받거니 한참 자책을 했죠. 땅을 보는 선배를 보면서 자책하고 뒤돌아오면서 또 자책을 하면서도 웃음이 나고 ‘선배 멋있다’ 했어요.”


◇인간에 대한 연민 “저도 어쩔 수 없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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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 중 오이디푸스 황정민(오른쪽)과 이오카스테 배해선(사진제공=샘컴퍼니)

“오이디푸스를 보고 있으면 그 길을 안갔으면 좋겠다 싶어요. 맨 처음에 ‘결정과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내 발이 알아서 인도하겠지’라고 하죠. 인간 박은석으로서도, 코러스장으로서도 정해져 있으니 그 길로 가게 될텐데 안갔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오이디푸스’를 함께 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박은석은 “오이디푸스도 그렇고 이오카스테, 양치기, 테베시민들까지 신이 정해둔 운명의 굴레 안에서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고 말을 보탰다.

“사실 코러스장 입장에서 보면 오이디푸스도, 이오카스테도 죄가 없어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게 자신이 의도해서 한 일이 아니잖아요. 비극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는데도 결국 그 길로 가게 된 거죠. 이오카스테도 열심히 나라를 위하고 파국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던 왕비고 양치기는 버려진 아이가 안쓰러워 거둔 것뿐이잖아요.”

그리곤 “모든 인물들에 대해 연민 밖에 들지 않는다”며 “마치 프로메테우스처럼 코러스장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존재 같다”고 말을 보탰다.

“오이디푸스의 마음, 이오카스테의 비극 등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 인간에 대한 연민 등 여러 감정들이 들어요. 공연하면서 새로운 감정들이 들어오기도 하고…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안쓰럽고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구나 싶어요.”

 

박은석
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강시열 작가)

 

이어 “대단한 존재 같으면서도 가장 안쓰럽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인간”이라며 “그런데도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걸 보면서 2500년이나 전의 연극이 지금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코러스장을 연기하면서 ‘나 역시 인간이구나’를 느껴요. 후반부로 갈수록 오이디푸스의 고통을, 이오카스테의 비극을 보기가 힘들어지거든요. 그런 순간이 오면 인간적인 감정들이 더 커지고 깊어져 버리죠.”


◇누구나 지나왔을 삼거리 그리고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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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제공=샘컴퍼니)

 

“삼거리 같은 상황, 결정과 선택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요즘 저의 삼거리는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들이지만 이전에도 많은 삼거리를 지나왔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검도선수였고 군 제대 전까지는 국악기를 다루는 음악가이기도 했던 그는 “포키스와 델포이, 다우리아를 모두 다녀온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운동을 그만둘 때도 힘들었어요.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였죠. 음악을 그만둘 때는 스물다섯, 군 제대하고 나서였어요. 그때는 ‘난 이제 뭘 하지?’ 싶어 겁이 났죠. 항상 그 기로에 섰던 것 같아요.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박은석
연극 ‘오이디푸스’의 코러스장 박은석(사진=강시열 작가)
그리곤 “저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의지와 더불어 제 사람에 운명적인 것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며 “운명과 의지,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오이디푸스처럼 ‘내 발이 알아서 인도하겠지’ 해서 왔는데 배우를 하고 있어요. ‘나도 지나왔지, 그 삼거리’라는 대사 때문에 저도 처음 생각을 해봤는데 그런 순간들이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저 뿐 아니라 모두한테 그런 일이 있었을 거예요.”

제작발표회 당시 오이디푸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은 대사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떠났다”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했던 박은석은 최근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선택이 너무 좋다고 털어놓았다.

“나를 이 나라에서 내쫓아 달라, 빗장을 풀어 테베의 백성들에게 이 몰골을 다 보여주라는 부분이 요즘 굉장히 크게 다가와요. 제3자로 봤을 때는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몰래 떠나도 되고 크레온의 보호 아래 있어도 되는데 싶거든요. 하지만 끝까지 자기 의지로 가겠다고 어려운 선택을 하는 오이디푸스가 마음에 와 닿아요.”

이어 “스핑크스의 퀴즈처럼 지팡이를 짚고 세발이 돼서 떠나는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선택을 보면서 이상하게 위로를 받는다”고 말을 보탰다.

“우리도 오이디푸스 같은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질문하게 돼요. 운명이 정해져 있더라도,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내 의지로 결정해서 가느냐, 흘러가는 대로 가느냐는 천지 차이니까요. 그래서 그 순간들이 너무 좋아요. 저 역시 수동적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게 되거든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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