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가전, 스마트폰 등 전자업계의 실적이 하락세다. 반도체 착시현상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전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TV 시장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LCD 디스플레이 패널에 이어 TV까지 중국에 역전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불똥이 국내 디스플레이·패널 업계로 튀면 ‘비빌 언덕’은 그만큼 줄어든다. 중국이 반도체에서 디스플레이로 선회할 가능성은 ‘만약’의 수준을 능가한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위기도 가시화됐다고 봐야 한다. 뻔히 보이지만 위험을 간과하는 ‘회색 코뿔소’로 비유될 만하다. 중국이 LCD 생산능력에서 우리를 넘어선 것은 대규모 집중 투자를 통해서였다. 작년 디스플레이 수출액이 전년 대비 8.4% 감소한 것은 이 분야에서의 타격 영향이다. 국내 업체도 광저우 8.5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하고 구미와 파주 6세대 공장의 생산성 향상과 안정화에 나서고는 있다. 하지만 중국의 집중 투자 등 추격에 대비하지 않으면 또 뒤처진다. 중국발 악몽은 OLED에서 온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반도체 호황에서 익히 보고 있듯이 실적에 따라 울고 웃는 쪽은 삼성만이 아닌 우리 경제 전체다. 특정 산업의 성적표에 경제가 길을 잃는 것은 우리 산업 구조의 취약성이다. 그나마 스마트폰, 전기차용 배터리 등 국내 주력 산업 분야가 줄줄이 후퇴하면서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 조선, 기계처럼 추월당하기는 시간문제인 분야가 수두룩하다.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인도에 이어 멕시코에 밀려 세계 7위로 주저앉았다. 바이오, 사물인터넷 등 조금 앞선다고 여겨지는 신산업 분야라고 해서 장담할 수 없다. 수출 경쟁력 회복과 산업 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할 절박함이 묻어난다.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올해는 특히 한국과 중국 제조업체들이 대규모 설비 투자에 나서 수주 사이클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여기에서도 불확실성이 높아져 사업 재편 필요성이 제기된다.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LCD보다는 OLED로 승부수를 띄워야 할 처지다. LCD 시장처럼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아야 한다. 예견된 회색 코뿔소가 어슬렁거리고 예측하지 못한 블랙 스완이 언제 날아들지 모른다. 한국 경제의 상황이 꼭 그러한데 트렌드를 못 읽고 제조업을 살리자는 원론만 무성하다. ‘폐업’ 중인 국회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무역전쟁의 불똥이 아니더라도 디스플레이·패널 업계는 다가올 위기 앞에 있다.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