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브릿지 칼럼] 신의로 만드는 상생

입력 2019-02-21 15:11
신문게재 2019-02-22 19면

동국제강PHG_2574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영화 ‘꾼’은 배신과 협잡, 폭력이 난무한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부제는 신의(信義)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신의정신은 역사 속에 잘 기록돼 있다. 사육신으로 추앙받는 성상문의 목숨과 바꾼 신의는 흐트러진 마음을 올곧게 해준다.


신의는 라틴어로 ‘피델리타스’이다. 사전적 의미는 믿음과 의리를 아우른다. 기독교에서는 신(神)과의 믿음을 전적으로 일컫는다. 지난 13일 별세한 고(故)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대의와 개인 간의 신의를 끝까지 실행한 인물이다. 그와는 생전에 수차례 점심을 같이 했었다.



그는 국세청장의 임기를 두 번 역임했다. 조사국장 시절에는 국내 기업들의 구석구석을 가장 많이 알았다. 그래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업무 외 부동산을 엄청나게 사재기한 사실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국가를 위한 좋은 일에 사용하도록 하시지요.” 그렇게 해서 국내 최대의 A의료재단과 S의료원, 두 곳이 탄생하게 됐다. 공직자로서 기업들이 눈앞의 실익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막아낸 ‘공적인 신의’ 사례이다. 추경석 전 장관이 38년간의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에 동국제강의 송원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게 된 것은 전 동국제강 장상태 회장과의 개인적인 신의 때문이었다.

호형호제하던 두 사람은 외가쪽 친척관계의 인연과 동향 선후배 사이의 믿음 때문에 당시 재계 22위의 동국제강그룹에서 세상사를 이야기하며 지내게 됐다. 이후로 송원문화재단을 맡으며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매진했다. 더 나은 곳에서 넉넉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동국제강 임직원들의 멘토로 일관했다.

추경석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도 ‘나눔의 신의’를 평생 펼쳤다. 독립유공자의 장남(고 추규영 선생 장남)이었던 추경석 전 장관은 유족 보상금을 모아 1995년부터 기부를 시작했고, 수 십 년 동안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성금을 전달해왔던 이 시대의 선비였다.

기업 간의 신의를 잘 지켜온 기업도 있다. 일본의 JFE스틸은 2003년에 가와사키제철과 니혼강관(NKK)이 합병된 세계 8위권(조강생산 기준)의 글로벌 철강기업이다. 합병 당시 대표이사 사장은 2년마다 양사가 번갈아 맡기로 약속했다. 16년이 지났어도 이 약속은 잘 이행되고 있다.

IMF 당시에는 국내 철강기업들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현대하이스코(현 현대제철에 흡수)의 재무담당 중역이 도움을 청하자 가와사키제철은 수요자 보호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동국제강과도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제2대 주주가 됐다. 세아제강에도 JFE스틸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일정 지분의 주주가 됐다. 철강시장에서는 경쟁 관계이지만, JFE스틸은 철강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무차별하게 휘두르지 않았다. 노자의 ‘부쟁(不爭)의 원칙’을 상생으로 매듭진 것이다. 신의가 우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리에 눈이 어두우면 신의는 없다. 명분을 찾을 줄 아는 지혜와 기다림의 미학이 어우러져야 신의는 만들어진다. 김종필 증언록에는 “은인은 사라져도 은혜는 남는다.”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은혜는 신의를 지킬 때 이뤄진다. “나귀는 샌님만 섬긴다.”는 우리 속담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제가 지닌 지조는 지킨다는 뜻이다. 신의는 살맛 나는 사회를 만드는 으뜸이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