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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지하성애자' 봉준호 감독은 말한다 "나는 살의 무게에 눌린 아저씨일 뿐"이라고.

[Hot People] <196> 천만 관객 목전 '기생충' 봉준호 감독
자신이 말하는 영화,관객,그리고 일상
배우들에게는 '무한 찬사와 존경'을

입력 2019-06-25 07:00   수정 2019-06-24 16:36
신문게재 2019-06-2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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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두 달만에 잘렸(?)던 부잣집 과외아르바이트의 기억을 ‘기생충’에 녹여냈다는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의 기세가 무섭다. 개봉 25일 만에 900만 관객 돌파한 것도 모자라 23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직접 영화관을 찾아 ‘기생충’을 관람했다. 단순히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후광이라고 하기엔 대중적인 인기가 가히 신드롬급이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말하는 내 영화 ‘기생충’. 어쩔 수 없이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긴 여운, 정서적 뇌상…이상한 영화라는 평가



당연하지만 영화에 ‘기생충’은 나오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무수한 시간 몸 속에 기생해온 이 곤충은 봉준호 감독에 의해 ‘공존’이란 화두를 던진다. 가족 모두가 백수인 상태에서 반 지하에 사는 한 가족과 신흥재벌에 가까운 완벽한 집안이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희대의 비극은 모두가 알지만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냄새와 선’으로 빈부의 차이를 논한다.



“주변사람들의 반응이요? 의외로 울었다는 사람이 많아요. 여운이 길고 정서적인 뇌상을 입었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영화를 찍는 내내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침묵조항을 지켰고 시사회 후에도 스포일러가 잘 유지됐기에 가능한 일이죠.(웃음) 공통된 표현으로는 ‘이상하다’라는 단어가 반복되는데 그 마저도 기대했던 터라 참 기쁩니다.”

봉준호 감독과 마주 앉은 시점은 영화가 막 개봉한 지난달 30일 즈음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50대가 되니 시차적응에 몸이 버티질 못한다.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이 자리에 왔다. 아니면 못 깨어날까봐”라며 “수면부족인데 기분은 아주 좋은 그런 이상한 상태”라고 자신이 만든 이상한 영화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장르가 봉준호? “가장 바라던 평가”

그는 언제나처럼 관객들 사이에서 변장을 한 채 ‘기생충’을 몇번이고 볼 예정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완성작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봉준호는 그 반대다. 너무 간단하기에 차마 밝히진 못하지만 의외로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더라며 “좋은 피부와 수려한 외모가 아니어서인지 100% 성공률을 보인다. 카페에 가서 대본을 쓸 정도로 아무도 나인지를 모른다”고 미소 지었다. 자신이 의도했던 지점과 혹은 몰랐던 반응을 발견하는 그 순간의 희열이 너무도 좋다는 그는 소년마냥 달뜬 표정으로 말했다.

“칸 영화제 뒤풀이에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특유의 멕시코 악센트로 ‘기생충’에 대해 ‘모호한 영화’라고 하는데 그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현지에서 들은 ‘봉준호는 이제 하나의 장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는 오랜 시간 그런 말을 기다려왔다는 생각마저 들었고요. 제 메시지가 정확히 표현됐구나 싶은 기쁜 마음인거죠.”
 

기쁨 나누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선정된 뒤 포옹하고 있다.(연합)

 

◇과거의 분풀이? 장난기의 발동 ‘기생충’



한국영화사의 한획을 그은 기쁨은 감추지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과 시니컬함도 여전했다. 영화계의 알아주는 달변가다운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에게 ‘기생충’은 아픈 친구의 문병을 떠올리게 한다고. 아픈 친구를 보러 간 서글픔보다는 그 친구가 누워있는 게 짠해야 하는데 뭔가 우스꽝스러운 묘한 기분과 장난치고 싶은 욕구의 상충이란다. 영화의 촬영 내내 전작들의 욕구불만을 표출한 것도 감독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해서다.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서 사고를 치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내달리는 기우, 기정, 기택네 가족들은 전작 ‘옥자’의 분풀이랄까. 하도 세트장에 갇혀서 찍었더니 아예 로드무비를 찍고 싶었어요. 단순히 한 동네에서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아현동에서 출발해 성북동을 거쳐 자하문 터널, 후암동을 넘나드는 로드무비예요. 물도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동네로 흐르는데…그것마저도 구정물인 게 슬픈 거죠.”


◇무례하지만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그것’

봉준호 감독은 대학시절 중2짜리 남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매사에 소극적인 그에게 사실상 용돈과 생활비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아르바이트자리였다. 그 시절 ‘덜커덩’ 하며 육중한 문이 열리는 남의 집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기생충’에 녹아있다. 주 2회 20만원을 받았던 그 곳은 고급진 복층 빌라였다. 주눅이 든 채로 그곳을 드나들었던 과외선생은 비록 두 달만에 잘렸지만 30년 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 됐다.

“저와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그 첫 기억이 참 강렬해요. 시사회 후 냄새에 대한 반응이 가장 격렬한데 저 자체도 킁킁거리며 몸 냄새를 맡았죠.(웃음) 사실 그런 표현이 악한 건 아닌데 무례하니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너 냄새나’라는 건 가족들조차도 상처가 되는 말이니까요. 무엇보다 계층을 크로스해 할 말도 아니죠. 단지 감독으로서 타인의 사생활을 코앞에서 목도하는 그로테스크한 설정(박사장 부부는 쇼파위에 누워있고 기택네 가족은 테이블 밑에 있는 상황)을 표현한 건데 이선균씨가 차지게 연기를 잘했죠. 스윽 하는 말인데 아주 와닿게.”


◇외설적이고 불편하지만 물 만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봉준호감독
지하성애자,코카콜라영화등 다양한 관객들의 평가를 듣고는 ‘살의 무게를 못 견디는 아저씨’라고 스스로를 평가해 좌중을 폭소케해했던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관점에 따라 철저히 구분되는 영화다. 가난한 송강호네 가족들이 신흥부자인 이선균의 가족을 바라보는 식이지만 사실은 반대의 시점으로 찍으면 하나의 공포스릴러가 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나도 어쩔 수 없이 부자를 바라보는 입장으로 찍었지만 다음엔 부자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본다면 장르를 다르게 해서 풀어볼 만 하다”며 눈을 반짝인다. 


감독 역시 박 사장네 인물들은 거리감이 있었던 부류였단다. 태생적인 부자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능력으로 준재벌에 가까운 상황이 됐다. 세련됐지만 가부장적인 인물들이 뒤엉켜있다. 이들이 묘하게 지키고 넘나드는 ‘선’의 상황을 꽤 즐기면서 찍었다고 고백했다.

“배우들이야 ‘이 보다 더 잘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다들 잘해줬어요. 심지어 잠깐 나오는 박서준씨 조차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죠. 개인적으로는 모든 사건의 발단인 수석조차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집착의 절정인 수석은 사실 돌아가신 아버님이 2~3년 정도 모으셨기에 좀더 애착이 가긴 했어요. 인연이 있었던 수석협회에서 몇개 받아 제가 직접 골랐습니다. 무기로 쓰는 버전은 가볍게 만들고 원본은 홍경표 촬영감독이 가져갔지만요.”


◇지하에서 탄생한 ’플란다스의 개’ ’괴물’…‘지하성애자’ 거장?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넷플릭스 제작 ‘옥자’를 제외하고는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 대중적인 사랑 또한 제대로 누린 감독이기도 하다. 실질적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의 성적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개봉 당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지하성애자’라는 표현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요. 중·고·대학교를 잠실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거기 지하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로 꾸며놓은 경비아저씨들을 보며 ‘플란다스의 개’를 썼어요. 집에서 바라보는 한강에서 ‘괴물’의 초고를 떠올렸고요. ‘기생충’에도 지하실이 등장하니까 아무래도 ‘지하성애자’라는 말이 맞는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설국열차’ 이후 희망이 아니라 북극곰에게 먹혔을 것 같다는 후기는 정말이지 엔딩을 ‘기승전코카콜라’로 만들어버려요. 다시 찍는다면 꼭 사슴을 등장시키려고요.”


◇‘슬픔을 직시하라’…내 현실은 “살의 무게를 못 견디는 중년아저씨”

그는 무엇보다 ‘기생충’의 주제를 “슬픔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잔인한 현실을 강조했노라” 고백했다. 기우(최우식)가 아버지 기택(송강호)에게 쓴 편지에 ‘계단만 올라오시라’고 썼지만 그 집을 사려면 대한민국 평균 연봉을 다 모아도 547년이 걸린다는 현실을 간과하고 싶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그걸 인정하는 게 창작자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어요.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희망을 던지는 건 아니지 않나 싶었어요. 스스로를 가뒀던 근세의 칼은 사실 약자끼리 싸우는 무기여서 더 비극이었어요. 그걸 수직상승해서 박 사장을 찌른 건 송강호 배우의 몫이었는데 너무 잘 소화해줬어요. 적을 구분 짓기가 어려운 시대, 우리 사회의 세세한 맥락을 연기로 표현해 주셨죠. 거장의 무게요? 살의 무게를 못 견디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제에서도 턱시도가 찢어지려고 했어요. 살의 무게에 눌린 중년아저씨임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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