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브릿지 칼럼] 아이돌 팬이 홍길동인가

콘서트 앞두고 다시 불거진 SM 전 대표이사와의 H.O.T. 상표권 분쟁
멤버들의 노력과 감내 무시된 현행 계약서, 상표권 관련 조항은 연예인에게 전적으로 불리
사회적 효용을 상호 극대화하는 배려의 자세로 상표권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을 찾아주는 풍토 필요

입력 2019-07-08 14:21
신문게재 2019-07-09 23면

20190609010002247_1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조선시대에나 가능했던 서자 홍길동의 기구한 사연이 2019년에도 벌어지고 있다. ‘아이돌의 원조’ H.O.T.는 2001년 해체 후 17년 만인 2018년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재결합해 콘서트까지 개최했다. 그러나 이 콘서트에서는 ‘H.O.T.’가 아닌 ‘High Five Of Teenagers’라는 풀네임만 사용해야 했다. ‘H.O.T.’라는 상표-서비스권을 SM엔터테인먼트 당시 대표 김모 씨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희준·강타·장우혁·토니·이재원이 ‘H.O.T.’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면 김씨의 허락, 즉 사용료 지급이 필요하다.

콘서트 기획사는 김씨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H.O.T.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가격을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씨는 방송 프로그램 등 팬들을 위한 비영리 목적이라면 대가없이 사용하게 했으나 유료공연, 굿즈 판매 등 영리 목적이라면 사용료의 지급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면서 무단 사용한 멤버 장우혁을 콘서트 기획사와는 별도로 상표권 침해로 고소했다.

아이돌, 밴드 등의 이름을 둘러싼 분쟁은 신화, 비스트, 티아라 등도 겪었다. 신화는 2012년 상표권자인 기획사를 상대로 제기한 양도소송으로 2015년에야 어렵게 ‘신화’라는 이름을 돌려받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이름으로 변경해야 했다.

아이돌은 기획사들이 기획하는 단계에서 이름, 정체성을 정해 육성한다. 이에 아이돌에게 그만큼 자본과 노력을 투자한 기획사가 법률적·경제적으로 이름 소유권·사용권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육성 과정을 견뎌낸 멤버들의 지분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형평성과 윤리적 측면을 따진다면 멤버들에게도 일정 부분의 권리가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를 비롯해 실제 체결되는 전속계약서에 상표권 관련 조항은 연예인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게 규정돼 있다. 이는 기획사의 투자 및 육성 노력을 감안할 때 현행 관련 조항은 그다지 불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그러나 H.O.T. 사태는 분명 합리적이지 않다. 이를 거울삼아 이후로는 아이돌의 구성 단계부터 미리 소속사와 멤버 사이에 상표권 등 무형자산에 대해 공정하면서 명확한 계약을 체결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사용료 없이 무단사용하는 행위도 허용될 수 없지만 그룹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거나 그 가능성이 없는데도 권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가의 사용료를 요구하는 자세도 권리 남용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팬들의 가슴에 홍길동의 설움보다 더 크고 아픈 대못을 박는 것이다.

도메인 남용행위인 ‘사이버 스쿼팅’ 규제 같은 조항이 없는 이상 현행 법률의 잣대만으로 H.O.T. 분쟁은 H.O.T. 멤버들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양측이 한걸음 물러나서 원만히 분쟁을 해결한다면 추후 엔터테인먼트업계가 본받을 선례가 될 것이다. 법률에서 권리의 남용과 상표권의 활용 공백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기 전에 당사자들이 먼저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 사회적 효용을 상호 극대화하는 배려의 자세로 상표권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을 찾아주는 풍토가 필요하다. 굳이 “호형호부를 허하노라”는 작위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