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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라진 그 ‘이름들’의 가치

입력 2019-08-13 14:20   수정 2019-08-14 10:17
신문게재 2019-08-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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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이름은 한 사람 그 자체이며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전부이기도 하다. 혈연과 친분, 국적과 성별, 정체성, 이데올로기, 의지, 가치관, 성향, 성격, 명예, 자부심, 평판, 관계 등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켜켜이 응축돼 한 사람을 이루기 때문이다.

 

일제가 민족말살을 위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제했던 이유 역시 많은 것이 응축된 이름의 가치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해 동안 문화 콘텐츠들은 ‘이름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파고들었다. 군 뮤지컬 ‘신흥무관학교’가 그랬고 이병헌·김태리를 중심으로 이름없는 의병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그랬다.



최근 종영한 ‘녹두꽃’은 동학혁명의 주역 전봉준 중심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며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젊은 형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7일 개봉한 유해진·류준열·조우진 주연의 영화 ‘봉오동 전투’도 승리를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아닌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제 한몸을 던질 각오로 질주하는 이들의 뒤를 정신없이 따른다.

“나의 가난한 유서에 내 이름 석자는 없다. 피로 쓴 여섯 글자 대한독립만세!”(뮤지컬 ‘신흥무관학교’의 ‘가난한 유서’ 중)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켜서는 안되는 독립군들에게 이름은 ‘대한독립운동’의 자양분이었다. 독립운동의 ‘영웅’들 주변에는 기꺼이 제 이름을 내어주고 ‘동지’로 남은 이들로 즐비했다. 죽을 걸 알면서도 거친 계곡을 내달리던 청년도, 죽음을 무릅 쓰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독립군 포로도, 꽃을 피우기도 전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강제징용에 동원된 소년들도 그렇게 제 이름을 채 불리우지 못하고 스러져 갔다.



살아있는 이들은 어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 아닌 이름에 가리워진 할머니들은 “내가 왜 위안부예요. 내 이름은 OOO”이라고 또박 또박 읊는다. 이처럼 아픔과 억울함, 분노가 중첩되며 사라진 ‘이름들’이 제대로 채 불리기도 전 일본은 또다시 한국을 도발하고 나선다.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일본은 과거사 처리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무역전쟁’을 감행 중이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 DHC는 자사 유튜브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니까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보면 된다”거나 소녀상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작가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평화의 소녀상을 “더럽다” 비하하고는 “보지 말래도 볼 것”이라며 한국팬들을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그야 말로 ‘이름값’ 못하는 도발의 향연이다.

이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광복 74주년을 맞았다. 3·1 운동 및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2019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이들이 산적해 있다.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일본군 위안부에, 또 어떤 이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한일 무역갈등에, 그로 인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노 재팬’ 운동에 이렇게 토로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청산된 과거는 없다. 잘 살아남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들, 아직 시작도 못한 상황에서 “이제 그만해도 좋은가.” 저마다의 이름 값에 반문할 때다. 그들이 이름을 찾지 못하는 한, 역사와 진실을 기억해야 할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름값은 점점 더 묵직해져만 간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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