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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리뷰]한국판 '라라랜드'를 보는듯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특유의 멜로 DNA가 녹아든 레트로 감성 눈길
김고은X정해인의 케미스트리 남달라

입력 2019-08-20 21:04

유열음악앨범

프로그램을 제목으로 한 만큼 사랑의 매개체는 이제 ‘보이기도 하는 라디오’다. ‘레트로 감성멜로’라는 수식어는 거짓이 아니다. 그렇기에 라디오를 듣는 게 아닌, 보는 매체로 인식한다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자칫 고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에 걸쳐 이어지는 연인의 헤어짐과 만남을 보노라면 흡사 한국판 ‘라라랜드’를 만난 것 듯하다. 시선을 사로잡는 현란한 뮤지컬 장면은 없지만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관통하는 OST는 리디오 신청곡을 눈으로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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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1994년, 제과점을 운영하는 미수(김고은)는 시급 1200원짜리 아르바이트생으로 현우(정해인)을 들인다.

 

삐딱하게 교복을 입고 등장했지만 사실은 대학생인 미수와 동갑인 미스터리한 남자다. 영화의 중후반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의 숨겨진 과거는 20대 초반에 만나 중반에 스쳐 지나가고 30대에 불 타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현우의 트라우마는 당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현재 ‘학교폭력’이란 이름으로 대두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훑는다.



이처럼 ‘유열의 음악앨범’은 말랑한 제목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추억의 PC통신 천리안을 등장시켜 향수를 자극하다가도 IMF의 삭막함, 무분별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를 손글씨의 따듯한 폰트로 승화시켰다.

극중 미수는 엄마를 잃었고 현우 역시 이렇다 할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닮은 듯 다른 현실로 인생을 살아간다. 다만 미수에게는 그를 지켜주는 어른과 남자가 등장하지만 현우에게는 챙겨야 할 친구와 남보다 못한 친척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짧은 순간 강한 끌림을 느끼고 긴 세월 동안 이어지는 운명에 기꺼이 온 몸을 맡긴다.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는 내내 따듯함을 느끼는 건 세대는 틀려도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충분히 활용하기 때문이다. 4050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젊은 시절의 찬란함일테고 2030 관객들에겐 현재진형형이거나 꿈 꿔온 감정일테니 말이다.


[This is Moment] 2005년 미수의 사무실에서 마주친 현우의 흐릿한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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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정지우 감독을 수식하는 ‘멜로장인’의 면모가 이 영화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해피엔드’ ‘사랑니’ ‘은교’ 등 어긋난 감정의 잔혹함과 뜨거운 욕망을 탁월하게 다뤄온 그의 연출력은 ‘유열의 음악앨범’을 통해 성숙미를 뽐낸다. 강렬함은 덜하지만 잔향이 깊은 향수를 영혼으로 느끼는 듯 관객들을 한껏 취하게 만들기 때문.

여기에 정지우 감독과 ‘4등’을 통해 인연을 맺었고 이제는 충무로 대세가 된 박해준의 연기력은 그동안 스테레오 타입으로 등장하던 ‘돈 많고 잘생기고 이해심까지 많은 남자’의 존재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일찌감치 눈치채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직진하는 모습은 느물거리지만 밉지않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사실 사랑이라는 탈을 쓴 용서과 관용에 대한 영화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 같은 감정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로라고 건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비루함을 한껏 채운다. 영화 속에서 헤어진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자 연결고리인 은자(김국희)는 “믿는다”는 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보듬는다. 가족도 연인도 해주지 않은 말을 조연이지만 주연급 활약을 한 배우에게 은근슬쩍 흘리는 것 또한 정지우 감독스럽다.

의외로 인생의 주인공인 듯한 존재들이 한없이 상처일 때가 있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 위로를 주는 라디오란 매체가 지닌 긍정적인 힘을 강력히 피력한다. 무엇보다 정해인은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대세배우임을 입증했다. 잔잔해서 더 각인되는 영화가 있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기꺼이 그 상위리스트에 오를 만한 만듦새를 갖췄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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