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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깊은 내면에서 퍼올린 감정을 담은 날카로운 말들의 항연…연극 ‘사랑의 끝’

2016년 국립극단 '빛의 제국' 이후 3년만에 호흡 맞추는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과 배우 문소리·지현준의 연극 '사랑의 끝'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파스칼 랑베르의 모놀로그극, 깊은 내면에서 끌어올린 감정을 담은 말들의 향연, 마사초의 ‘낙원에서의 추방’과 프라고나르의 ‘그네’
가 상징하는 사랑의 순간들

입력 2019-09-07 20:00   수정 2019-09-07 16:31

연극 '사랑의 끝'
연극 ‘사랑의 끝’의 지현준(왼쪽부터),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 문소리(연합)

 

“헤어짐을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사랑의 끝’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건 흔치않은 경험이죠. 그 동안의 콘텐츠에서는 이별 전후의 짧은 순간만을 목격했다면 연극 ‘사랑의 끝’은 실황으로 헤어짐을 보게 될 겁니다.”

6일 서울 성동구 소재의 우란문화재단 우란 2경에서 진행된 연극 ‘사랑의 끝’(9월 27일까지 우란2경) 프레스콜에서 아르튀르 노지시엘(Arthur Nauzyciel) 연출은 “두 사람이 정말 헤어져 갈등하는 순간을 보게 될 것”이라며 “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느낌”이라고 소개했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파스칼 랑베르(Pascal Rambert) 연극 ‘사랑의 끝’은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과 문소리, 지현준이 2016년 ‘빛의 제국’ 이후 3년만에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다.



냉혹하고 날선 헤어짐의 순간, 남녀의 입장을 독백과 침묵으로 조율하는 모놀로그(독백) 극으로 각자가 서로를, 자신을, 사랑을 쏟아내듯 이야기한다. 전반부는 남자의 독백과 여자의 침묵, 후반부는 여자의 독백과 남자의 침묵으로 구성해 ‘사랑의 끝’을 맞은 남녀의 심리와 그 너머에 자리 잡은 감정의 본질을 파고든다.

노지시엘 연출은 “연극이 시작되면 그가 등장해 ‘이제 끝이야’라고 말한다. 관계의 끝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단어를 사용한다”며 “이후 그녀의 대답이 이어진다”고 극의 형식에 대해 설명했다. 

 

연극 사랑의 끝
연극 ‘사랑의 끝’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연합)
“이 형태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는 데 상황들이 벌어지고 일어나는 방식임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공연 자체가 우리 내면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죠.“



이어 노지시엘 연출은 “배우들이 신체적으로도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굉장히 유니크하고 강한 방식이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라며 “문소리, 지현준 두 배우가 이 작품에 얼마나 개연돼 있고 용감하게 행하는지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지시엘 연출 “가족의 확장”, 문소리 “내 삶의 중요한 모먼트”, 지현준 “날 비추는 거울”

1막과 2막의 전반부 그리고 장면전환까지를 하이라이트 시연한 후 가진 질의응답에서 노지시엘 연출은 ‘사랑의 끝’이라는 작품에 대해 “좋은 친구인 원작자 파스칼 랑베르(Pascal Rambert)와 두 배우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의미 깊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간 저는 여러 나라에서, 다른 나라·언어·배우들과 작품을 올렸습니다. 한국에서는 (‘빛의 제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같은 배우들과 작업 중이죠. 예술가로서 다른 나라에서 같은 배우들과 작업하는 건 귀중한 경험입니다. 파스칼과 저는 극작가·연출과 배우로 함께 했던 친구죠. 그런 파스칼과 두 배우(문소리·지현준) 사이에서 연출로서 이같은 연극의 발달 과정을 함께 해서 기쁩니다.”

그 과정을 “가족의 확장”이라고 표현한 노지시엘 연출과의 작업에 대해 문소리는 “굉장한 도전이 되는,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고 생각해도 내 삶에 중요한 모먼트가 아닐까라는 섣부른 추측을 해볼 만큼 의미 있는 나날”이라고 표현했고 지현준은 “오랜만에 연극 냄새나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지현준은 “(노지시엘 연출과 문소리) 두분은 저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특별한 분들”이라며 “연극으로 소통하는 값진 일을 두분과 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말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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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랑의 끝’ 연습과정(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연출님과 저희가 극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눈 이야기는 ‘감정을 준비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우선시 하지는 말자. 그것들은 절로 따라올 것이다’였어요. 가장 중요한 건 말, 언어였죠.”

이렇게 전한 문소리는 “나의 생각, 과정, 삶 등을 보여주는 것이 저 사람에게 던지는 말이라 여기며 연습했다”며 “그 과정을 겪으면서 감정은 그냥 따라왔다”고 전했다.

“이별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잖아요. 말과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산산조각 나 없어져 버려요. 인생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표현이 어려운데 그냥 일어나는 일이에요. 최대한 말을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죠.”

이어 문소리는 “대본작업 후 열흘 동안 한국말로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했다”며 “각 단어마다 프랑스에서 어떤 경우에 어떤 맥락으로 어떤 사람들이 쓰는지를 노지시엘 연출이 일일이 설명하고 그에 적확한 한국어 단어와 표현을 찾느라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다 같이 만들어낸 말들이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가 박혀 있는 상황이에요. 그 작업을 하면서 도대체 말이라는 게 뭔지, 인간 그 자체와 뭐가 다른지 고민하게 됐죠. 생각이 먼저인가 말이 먼저인가, 감정이 있어서 말을 하는 건지 혹은 말을 해서 감정이 생기는 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더불어 “연극에서 왜 말이 중요한지, 왜 연극은 말로 이뤄어져 있는지 등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극이었다”고 말을 보탰다. 문소리의 말에 지현준 역시 “연극을 할 때마다 맨몸이라는 게 느껴진다”며 “무대에 아무 것도 없이 두 사람(문소리·지현준)의 몸뚱이만 서서 쏟아지는 말을 주고받는다. 관객 역시 맨몸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연극 사랑의 끝
연극 ‘사랑의 끝’ 지현준(연합)
“말이 어떻게 파생돼서 연극이 만들어지는지로 이어져 있어요. 사랑의 끝 지점에서 한 어떤 말이 또 다른 말을 이끌어내죠. 각자의 입장에서 쏟아내는 깊은 말이 또 다른 말을 하게하고 마음을 어떻게 흘러가게 하는지를 탐험 중입니다.”


◇말이 말을 부르는 ‘파스칼 로직’

“하나의 말이 다음 주제로 이어지는 과정이 쌓이는 작업을 노지시엘 연출은 ‘로직’이라고 표현했어요. 파스칼 대본의 로직을 이해하고 따라가면서 감정을 마음껏 쓸 수 있었고 생각이 뻗어가는 과정을 겪었죠.”

문소리의 말에 노지시엘 연출은 ‘파스칼 로직’에 대해 “연극에는 관례들이 있다. 감정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 배설한다”며 “관객으로선 그걸 보고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관례이고 관습”이라고 부연했다.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삶은 무엇인지, 삶에서 우리는 무엇이지를 깊게 고찰해보면 말을 내뱉기 때문에 감정이 생긴다는 걸 깨닫게 되실 거예요. 누군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죠. 하지만 내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고 말하면 바로 눈물이 흐릅니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죠. 언어와 감정에는 굉장히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이어 노지시엘 연출은 “우리 삶에선 늘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무대 위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의문을 제기하며 “말을 정말 잘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면 우리 안에서 뭔가가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람 자체가 언어로 구성된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이텐티티, 신분, 생각 등 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계가 말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어에 속한 단어들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죠. ‘사랑의 끝’에서 그런 것들을 재구축하며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곤 “실제로 헤어짐에 대해 생각한다고 단박에 ‘우린 끝났어, 안녕 갈게’ 하진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까지 알맞은 단어를 찾느라 오랜 시간이 걸려 표현된다”며 “누군가 ‘우리 사이는 끝났어’라고 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듯 상대방이 그 말에 대답하는 데도 적지 않은 과정을 밟는다”고 말을 보탰다.

연극 사랑의 끝
연극 ‘사랑의 끝’ 문소리와 마사초의 그림 ‘낙원에서의 추방’(연합)
“두 배우는 감정에 단어를 덧붙이는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어요. 말이 어떻게 구성되고 해체되는지를 기반으로 말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죠.”


◇마사초의 ‘낙원에서의 추방’과 프라고나르의 ‘그네’

“프라고나르의 그네(L‘escapolette)는 영혼의 느낌 혹은 기억으로서 뒤에서 비춰지고 있어요. 지현준 배우가 주로 얘기하는데 과거와 연관이 있죠. 오브제로 자리 잡고 있는 마사초의 ‘낙원에서의 추방’(Expulsion from Paradise)은 기억이 아닌 현실입니다.”

무대에 배치된 두 개의 그림에 대해 노지시엘 연출은 “두 그림은 두 사람의 사랑에서 중요한 순간을 상징하고 있다. 사랑의 시작을 함께 했고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것도 그림”이라며 “특히 ‘낙원에서의 추방’은 사랑이 만들어내는 허상에서 쫓겨나옴으로서 현실로 들어오게 되는 두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왜 헤어지는지 보다는 헤어짐의 제스처, 헤어짐의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두 사람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각각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보는 사람들도 두 사람이 사랑과 삶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어 “굉장히 오래 지속된 관계 혹은 결혼생활도 오해에서 쌓여져 왔을 수도 있다”며 “극 중에 분홍색 자수가 놓인 의자가 나온다. 남자가 ‘그 의자는 내가 가질거야’라고 말하는데 여자는 ‘그 의자에 네가 왜 흥분하지는 모르겠다’고 답한다”고 예를 들었다.

“10년 동안 남자는 여자가 그 자수 의자를 좋아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어요. 여러 관계들이 이런 상황들을 내포하고 있을 거예요. 사랑에 대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를 낱낱이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하죠. 그런 것들을 ‘사랑의 끝’은 파워풀한 방식으로 재건축하고 있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퍼올린 감정들의 향연

연극
연극 ‘사랑의 끝’ 연습과정(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한 시간 동안 말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연습이 끝나고 가면서는 힘들면서도 굉장하 행복해요. 현실에서 이렇게 다 쏟아내고 퍼붓는 경험이 쉽지는 않잖아요. 어떨 땐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연습부터 무대에 오르는 과정까지의 작업이 저에게 굉장히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줬고 즐겁기 때문이죠.“

이렇게 전한 문소리는 “침묵하는 배우도 많은 걸 하고 있다”며 “말로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지현준은 “1시간여를 엄청나게 좁고 나선형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빠른 속도로 운전하는 느낌”이라며 “굉장히 무섭지만 흥분되기도 하는 경험”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노지시엘 연출은 “감정을 겪는다는 건 신체적 경험과도 같다”며 “진실되게 내뱉을 것을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말을 보탰다.

“척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에 진짜 의미를 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굉장히 힘든 과정이죠.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두 사람은 더 사랑하게 되기도, 헤어지게 되기도 할 거예요. 어쩌면 솔로인 사람들은 왜 그런지를 알게 될지도 모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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