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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호사카 유지 <일본 뒤집기>

입력 2019-09-13 09:00   수정 2019-09-12 07:05

 

기자는 언론계에서 30년이 넘게 일하고 있다. 늦바람에 ‘독서’라는 좋은 취미를 갖게 되었고, 덕분에 꽤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은 후 독후감 형식으로 독서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정리해 오다, 문득 이런 정보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됐다. 특히 내용 가운데 공유했다가 나중에 글을 쓸 때나, 토론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글귀를 발췌 요약해 알려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주머니를 털어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사서 읽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 지식인이 내면에서 들여다본 한국과 일본은?

 

◇ 총평

 

이번 글은 일본 사람으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ほさかゆうじ, Hosaka Yuji) 교수의 신작 <일본 뒤집기>다. 저자는 1956년 생으로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나라를 깊고 폭 넓게 경험한 그의 최근 이슈들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매우 예리하다. 어찌 보면 모국에 대한 비판이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법도 한데, 그는 거침없이 일본을 비판한다. ‘친일’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 묶일 것을 우려한 바와 반대로, 그는 용감했다.  

 

◇ 베껴두면 유익할 내용들 

 

한일협정 후 달라진 일본의 '개인청구권' 입장

 

* 모호하게 개인 청구권 언급된 ‘한일 청구권 협정’ - 1965년 최종적으로 일본은 한국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경제협력 명분으로 지급하면서 “이것으로 양국의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내에서도 국민의 청구권 소멸 여부가 논란이 되었고, 1991년 일본 정부는 국회에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으며, 소멸된 것은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외교 보호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배상 문제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런데 아베 정부 들어 이런 내용은 금도시되었다. 

 

* 일본 법원의 말 바꾸기 -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가 이어졌다. 전범기업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판결’ 대신 ‘화해’라는 방법으로 한국인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사실상 인정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 법원은 “개인 청구권은 남아 있으나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이 있으므로 피해자들은 구제받을 수 없다”는 이해하기 힘든 논리를 내세워 발뺌을 했다. 자연스럽게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한국인 피해자들의 패소가 줄을 이었다.  

 

* 문제의 일본 국내법 제114조 - 일본 국내에서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킨 법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못하자, 일본이 국내법을 만들어 소멸시킨 것이다. 결국 한국인 피해자들은 무대를 한극으로 옯겨 소송을 제기할 수 밖에 없었고,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2018년 10월 원고 확정 판결로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 후쿠시마 수산물에 가장 엄격한 한국 - 한국은 2013년 8월에 후쿠시마 원존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된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의 8개 현 수산물을 전면 금수조치했다. 이에 일본에 WTO에 제소했고 1심에서 한국은 패소했다. 하지만 2019년 4월11일 2심에서는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의 방사능 수치가 샘플 상 기준치 이하라고 해도, 주변 바다가 요염되어 있어 수산물의 오염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한국이 승소했다. 한국은 일본 수산물에서 ‘세슘’이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세슘 이외 방사능 물질 16종의 검사를 추가 요구 하는 유일한 나라다. 

 

아베 이후의 '초극우' 포스트 아베가 더 걱정된다

 

* ‘포스트 아베’는 누구? -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계속 자리를 지키며 믿음을 주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공표한 인연으로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칭으로 국민적 친화도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가 친형제처럼 지낸다는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자민당 총무회장도 유력한 후보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자민당 리버럴파라 할 수 있는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총리가 된다면 한일 관계개선 추진이 용이하겠지만, 스바 관방장관이나 가토 가쓰노부 총무회장 같은 아베 측근들이 되면 ‘혐한(嫌韓) 정권’이 재창출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 아베를 돕는 ‘일본회의’ - ‘아름다운 일본 만들기’를 추진하다면서 자위대를 대신할 국방군 창설을 주도하고, 연합군이 강요한 헌법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만든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벼르는 사람들. 야스쿠니신사의 일본 총리 공식방문 실현을 지상의 목표로 삼고, 일본의 침략전쟁 부정을 외치는 극우파 단체다. 

 

* 손자병법 대로 사는 일본 - 일본인의 근성을 만든 본질적인 공식을 저자는 손자병법에서 찾는다. 먼저 상대를 상세히 연구하고,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선제공격한다. 특히 손자병법에선 침략을 ‘악(惡)’이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영토를 넓힐 수 있을까를 가르친다. 그들의 병법에서 ‘악’이란 ‘전쟁에서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형적인 군국주의 일본의 가치관이다.

 

* 배구 ‘시간차 공격’을 만든 일본 -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여자배구팀이 처음 시간차 공격이란 엄청난 속임수 공격을 선보였다. 뮌헨올림픽에선 개인 시간차 공격과 A퀵 B퀵 C퀵 등 적의 눈을 속이는 전혀 새로운 공격법들을 만들어 냈다.  서양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일본으로선 이런 신 비밀병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을 '아우의 나라'라고 우기고 가르치는 일본

 

* 일본 신(아마테라스)이 조선 신(수사노오)의 형? - 일본은 청일전쟁 승전 무렵부터 “조선의 신은 일본 시조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의 남동생 수사노오(素箋嗚尊)”라고 대대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사노오가 한국의 시조라고 학교 교육을 통해 선전했다.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는 수사노오가 난폭해 하늘 나라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추방당해 신라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고 역사 왜곡까지 일삼았다. 일본의 통치자는 아마테라스의 자손인 역대 일왕 뿐이라는 이른바 고쿠타이(國體)론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 사실상 일본의 국교 ‘국가신도(國家神道)’ -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서는 서양의 기독교에 해당하는 국가신도가 세를 떨친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평화’ 보다는 ‘침략’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일본이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 등은 국가신도의 경전인 ‘기기’와 ‘일본사기’에서 나온 것이다.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 메이지 초기에 국교를 무엇으로 할 지 논란이 있을 때, 일본 고대의 국가신도를 국교로 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신교의 자유를 보장한 메이지헌법 탓에 법적으로 국교화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본은 ‘칙령12호’라는 것을 통해 학교 종교교육을 금지시키고 사실상 국가신도를 모든 종교를 초월한 교육의 기초로 정했다. 신사참배도 그래서 의무화됐다.  

 

* 일본의 외교적 목표 ‘UN안보리’ - 한 때 일본의 가장 큰 외교 목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이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들이 지지했지만, 중국 러시아 등이 반대해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도 거부권 없는 이사국이면 찬성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이었다. 우리 입장은 안보리에 가더라도 ‘거부권 행사’라는 특권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 핫코오 이치우(八統宇) - 일본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역사서 ‘기기’ 속에 나오는 진무 일왕이 “나라 전체(六合)을 합하여 도읍을 열고 핫코오(팔통; 이메츠치=세계)를 덮고 우(한 집)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하는 데서 비롯됐다. 표면적으로는 ‘세계 한가족주의’ 평화사상처럼 치장되지만, 대동아전쟁 등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쪽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대동아전쟁의 목적도 각 민족을 해방하는 데 있고, 해방은 곧 황화(皇化)하는 일이며, 아시아에 황도 낙원을 출현시키는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황하’라는 말은 아시아 각 민족을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동화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결국 각 민족을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동화시킨다는 뜻이다.

 

근대사 파헤치기가 두려운 일본ᆢ인간이 된 일왕

 

* 메이지 이후 역사드라마 없는 일본 - 일본은 근현대사를 파헤치는 일 되도록 피해 외면한다. TV 드라마만 해도 메이지 유신 이후의 역사드라마는 거의 방영된 적 없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나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인물들은 한국 드라마에는 나오지만 정작 일본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들다. 일본 대중들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보기 시작하면 일왕제의 성립 기반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결국은 국론이 분열되어 국가가 위기에 빠질 뿐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 호적이 없는 일왕 - 일왕가에는 성이 없고 이름만 존재한다. 쇼와 일왕은 히로히토(裕仁), 헤이세이 일왕은 아키히토(明仁), 2019년 5월1일에 즉위한 현 일왕은 나루히토(德仁)다. 쇼와, 헤이세이 등은 연호를 뜻하지 성이 아니다. 일본의 성씨는 고대로부터 일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때문에 일왕가에 성 씨 자체가 없는 것이다. 대신 황실의 계보는 호적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황통보(皇統譜)에 의해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이것을 열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역대 수상뿐이다. 

 

* 백제 뿌리를 인정한 아키히토 일왕 -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만 68세 생일 때 “간무(桓武)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금기시되어 왔던 일왕가와 고대 한국과의 혈연관계를 언급한 것이다. 아버지 히로히토는 1946년 1월1일에 이른바 ‘인간선언’으로 불리는 ‘신일본 건설에 관한 조서’를 발표하면서 일왕이 신이 아님을 실토했다.

 

* 한국과 일본의 가정교육 차 - 일본인들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살기에, 반대로 남에게 간섭받는 것도 싫어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최고가 되어라”라고 가르친다.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배운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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