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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좋은 창작자로 돌아올게요" 가수로 남고픈 윤종신의 다짐

입력 2019-09-29 11:28   수정 2019-09-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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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콘서트 이방인 포스터 (사진제공=미스틱스토리)

“난 아니라고 타고 난 게 없다고 가진 게 없는 나라고 매일 부르던 노래/너무 부족하다고 매일 메꾸려 했던/그 팔에 흐르던 땀은 증발하지 않아” (윤종신 ‘슬로우 스타터’)

윤종신은 기가 막힌 가창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는 자신이 심사위원이던 Mnet ‘슈퍼스타K2’의 우승자 허각처럼 탁월한 고음을 자랑하지도 못하고 존박처럼 부드러운 미성도 갖지 못했다.

 

1990년 공일오비 객원싱어로 데뷔했을 때도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 멤버들에게 늘 열등감을 가졌다고 한다. 특히 팀의 프로듀서 역할을 한 정석원의 작곡실력을 부러워했다. 윤종신은 시간이 흘러 어느 토크쇼에서 이같은 마음을 고백하며 열등감을 떨치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탁월한 가창력도, 히트곡을 척척 만들어내는 능력도 없다. 스스로 닮았다고 주장하는 배우 정우성처럼 깎아놓은 듯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다. 그러나 윤종신에게는 꾸준함이 있었다. 30년동안 한 우물을 판 그의 꾸준함은 자신의 노래 ‘슬로우 스타터’처럼 증발하지 않는 땀으로 청중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10년동안 진행해온 ‘월간 윤종신’은 소금기 어린 땀의 결정체다.



28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윤종신의 콘서트 ‘이방인’은 그 땀의 열기를 재차 확인하는 자리다. 이번 콘서트는 11월, 30년 만에 휴가를 떠나는 윤종신의 마지막 서울 콘서트다. 그는 이번 공연 뒤 내달 5일 부산KBS홀에서 열리는 동명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모든 대외활동을 마무리한다. 이미 MBC ‘라디오스타’를 비롯, 출연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마쳤다.

셋 리스트는 대부분 2000년 이후 발표된 곡, 특히 ‘월간 윤종신’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본 곡들로 채워졌다. 30년만의 휴가인 만큼 전성기 때 큰 사랑을 받았던 곡들로 관객과 교감할 법도 했지만 윤종신의 셋 리스트는 분명했다. 

 

그는 과거보다 현재를, 머무르기보다 떠남을 택했다. 윤종신은 “공연을 준비하며 고민이 컸다. 페스티벌 분위기로 진행할까 고민했지만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노래, 남기고 싶은 노래 위주로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숱한 히트곡을 배제하고 자신의 마음이 담긴 노래들을 택했다. ‘지친하루’, ‘떠나’, ‘워커홀릭’, ‘출국’, ‘늦바람’, ‘도착’, ‘이방인’까지...셋 리스트 곳곳에 고심의 흔적이 담겼다.

사랑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지질함 또한 윤종신에게 빼놓을 수 없는 정서다. 윤종신은 ‘이별하긴 하겠지’와 ‘못나고 못난’을 들려줄 때 “이 곡은 ‘지질’의 끝판왕”이라며 “‘지질’의 엑기스를 짜고 가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멀리 떠나는 마당에 ‘지질’한 곡들을 들려드렸다”며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윤종신 음악의 한 축을 잡아주는 정서”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이별하면 지질해지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 정서가 함축돼 2017년 월간 윤종신을 통해 발표한 ‘좋니’는 그 해 코인노래방에서 숱한 젊은 청춘들의 눈물을 담아냈다. 공일오비 객원싱어나 ‘환생’, ‘팥빙수’로 기억되던 윤종신은 40대 후반에도 이별의 정서를 담은 곡으로 청춘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역시 포기하지 않고 매 달, 한 곡 한 곡씩 발표해 내기 위해 작업실에서 땀을 흘린 꾸준함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분명 윤종신에게는 노래하는 재능보다 말하는 능력과 웃음을 안기는 능력이 더 클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목표하는 바를 향해 쉬지 않고 걸어 나갔다. 행여 욕심을 내 돌부리에 넘어질지 모르는 기나긴 여정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발길을 옮겼다.

몇 년 전 자신의 곳간에 찬 열정이 소진됐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 다시금 음악여행을 떠난다. 한참 커나가는 아이들, 직접 운영하는 기획사, 어느덧 방송가의 기성세대로 자리잡은 이들에게 기득권을 내려놓고 떠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윤종신은 단호했다. ‘월간 윤종신’을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라도 안하면 지쳐 쓰러질 것 같다”는 초심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는 “나이듦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선택”이라며 “잘 버티고 돌아와 재미있는 50대로 늙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그는 “좋은 창작자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본 공연의 마무리 곡으로 자신의 음악 인생 중 가장 아끼는 곡이라며 ‘버드맨’을 선택했다. 자신을 입담 좋은 아재로 여기는 젊은이들이나 ‘팥빙수’의 가수로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게 그가 하고픈 말일지 모른다.

“나 이게 전부예요 내가 제일 잘하는 그거/시간이 흘러서 이제야 그럴듯한데 덜 익은 그때가 좋대/(중략) 날지만 높은 건 아냐 어디든 뭐든 좋을 뿐/결국 난 사랑받고 싶어 내려앉을 거예요/그땐 쇠잔한 날개를 쓰다듬어줘요 그대”(윤종신 ‘버드맨’)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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