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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내가 제일 잘 나가! 기찻길 옆 해리단길

[즐금]부산시 해운대 기찻길 옆, 전국 '~리단'길의 최고봉
지역 편의시설과 공존하는 카페와 식당 공존해 눈길

입력 2019-10-11 07:00   수정 2019-10-11 10:41
신문게재 2019-10-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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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단의 강점은 동네 편의 시설과의 공존이다. 세탁소와 핸드메이드 쥬얼리 숍이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 (사진촬영=이희승 기자)

 

“해리단 길이요? 전 남포동 살아서 잘….”

의외로 부산 토박이도 모르는 곳이다. 최근 해운대 옆 기찻길 옆에 자리한 해리단 길은 전국의 ‘~리단’이라 이름 붙은 곳 중 가장 잘나가는 곳이다. 개성있고 소소한 재미를 갖춘 경리단길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로 시들어 가는 것과 반대로 특색있는 골목길이 ‘#리단길’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찍이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를 통해 이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해운대 바닷가의 반대편, 이제는 기차마저 끊긴 해운대역 뒷편 골목은 ‘해리단’이름을 달고 전국으로 비상 중이다.


◇평균나이 32세. 젊은 사장들의 낭만이 살아있는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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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을 카페오 꾸민 ‘모리’의 2층. (사진촬영=이희승 기자)

 

주말에 몰린 관광객들에게 치여서일까. 월요일 낮 1시의 해리단길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월, 화 이틀을 쉬는 가게들이 대부분으로 ‘수요일에 만나요’란 안내문이 가게 곳곳에 붙어있다. 지난 금요일 해리단길의 원조격인 카페 모리의 주인장은 “주말에는 워낙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일에 쉬는 가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모리는 일본에서 디저트 기술을 배워온 사장이 직접 커피와 파운드 케이크 등을 구워 파는 곳이다. 한 입 크기의 레몬 케이크는 오전에 당일 판매량이 다 팔릴 정도로 레몬 껍질을 씹는 듯한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다락방을 뜻하는 ‘모리’라는 일어에서 카페 이름을 따온 것도 높이가 높은 구조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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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쬐는 햇빛에 정확히 시간을 알려주는 해리단길의 바닥 벽화. (사진촬영=이희승기자)

 

조용하고 여백의 미를 살린 공간은 이용시간이 1시간 정도로 제한돼 있다. 포장의 경우 가격이 싸지만 먹고 갈 경우엔 가격이 비싸진다. 야박하게 여겨지는 이곳의 룰은 카페에 잠시 앉아 있노라면 의문점이 풀린다. 죽치고 앉아있기 보다는 여기서 느낀 힐링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싶은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해리단길은 이제 철길도 끊겨 폐쇄된 해운대 옆 사잇길로 들어와야 한다.

 

입구부터 해운대의 ‘해’를 딴 그림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한자로는 바다 ‘해’지만 스쳐 지나가는 주차금지 기둥에 해시계를 그려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부터는 카메라를 준비해야 한다. 골목 곳곳에 영산대학교 시각 디자인학부의 학생들이 그린 기발한 벽화가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심슨과 그의 아내 마지는 애교수준. 건물과 건물 사이의 늘어진 전깃줄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로, 기름때가 덕지덕지 꼈을 법한 환풍구는 그 구멍의 결에 맞춰 생선구이의 칼자국으로 변신해 웃음을 더한다.


◇전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해리단’길, 앞으로의 숙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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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건물 사이의 늘어진 전깃줄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되었다. 우측은 평범한 가정집의 환풍구에 구멍의 결에 맞춰 생선구이와 칼자국을 그려넣은 벽화.(사진촬영=이희승 기자)


해리단길 조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약 3년 전이다. 근처 부동산의 말을 빌리자면 “해운대 바닷가의 고층 빌딩이 조성되면서 이미 이곳은 재개발 붐이 불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곳”이었다. 투자의 열풍으로 낙후된 골목과 비어있던 가게 주인들이 손에 쥐고 풀지 않는 금싸라기 땅이었다는 것.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개발의 더딤에 지친 지역주민과 젊은 예술가들이 만나 잠시나마 숨통을 트는 일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해운대구청은 저렴한 임대료로 젊은이들의 투자를 유치해 상권을 보장하고 개발만을 원했던 건물주들은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서로 반발자국씩 양보하면서 윈윈하는 전략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해리단길의 중심에 위치한 우일맨션은 바로 그 변화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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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고양이인줄 알고 다들 놀란다. 이곳은 일본식 말차 전문점. (사진촬영=이희승기자)

건물의 구석이나 뒷편의 공간에 작고 오밀조밀한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며 트렌드 세터들 사이의 필수코스로 각종 SNS를 점령하고 있다. 

 

해리단 입구에 있는 퓨전 한식 전문점 거북이 주방을 시작으로 골목집, 카페BEE, 하라네코, 이로이로까지 소품 샵과 떡볶이집, 파스타 전문점까지 서울 중심 상권보다 더 세련된 가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곳에는 단 돈 1만원에 흑백사진으로 추억을 남겨주는 사진관, 금손 한의원까지 동네의 정취를 살린 가게들이 공존해 따스함을 더한다. 

 

가게 이름을 주소 끝자리인 ‘1호’를 따 ‘이로이로’라고 지은 젊은 사장은 “아직 오픈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드는 손님의 규모를 보면 확실히 대세인 것을 느낀다”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리단’길과 차별하기 위해 주변 가게들과도 자주 모여 협업과 대화를 나누는 편”이라고 말했다. 


길에서 만난 조혜윤(36)씨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와 우연히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근처에서 여중, 여고를 나왔다. 이렇게 발전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거의 제 또래의 사장들이라 말을 나눠보면 ‘동네 지킴이’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졌다. 임대료에 휩쓸리지 않고 이 분위기를 유지해 나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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